T의 성향은 타고난 걸까 후천적으로 길러진 걸까
고1, 국어시간
선생님이 한 명씩 아빠에 대한 생각을 발표하게 시켰다
사춘기여서 그랬을까
아빠에 대한 마음을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아빠죠"
분위기가 싸해졌다.
인사도 잘 안 하던 반친구가 다가왔다
"너는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응? 난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한 건데 왜?
생각해 보면 그랬다.
내 생각을 솔직히 말하면 문제가 생겼다.
초등학교 때
한창 유행하던 원피스 애니메이션을 보던 중
피아노 학원을 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엄마 나 이거 보고 갈래. 지금 안 갈 거야!"
(어렸을 적 일이라 정확한 말은 잘 생각이 안 나지만)
무슨 소리냐며 엄마 손에 이끌려 학원에 도착했다.
학원에서 선생님이 물었다.
"서희야, 학원에서 누가 괴롭히는 얘가 있니?"
이게 무슨 소리지?
엄마는 내가 학원에서 괴롭힘 당하거나 하는 일이 있어서
가기 싫어하는 줄 알았나 보다.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하고 싶은 대로 말하면 안 되는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항상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른이 하라는 대로 해"말고
나는 엄마의 말 중에서 왜 해야 하는지 납득을 잘하지 못했다.
너는 누군가의 딸이고, 손녀고, 언니야. 남들은 나를 보고 우리 가족도 평가해
나는 나인데
왜 남들은 나를 안 보고 내 가족을 보는 거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평판을 신경 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거지?
궁금해서 물으면 따진다고 혼이 났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억울해서 눈물이 나면
그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눈물 닦고 감정 추스르고 와서 말해"
눈물이 안 나기를 기다려
(사실 한숨 자면 싹 리셋된다)
다시 가서 말하면
이미 끝난 이야기를 다시 한다고 엄마도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럼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언제 할 수 있는 거지?
아하! 안 울면 대화를 계속할 수 있겠구나!
감정을 외면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렇게 서운하고, 울고 싶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쓱 밀어 두고는
눈물을 말렸다.
울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드라마나 영화보다 그러면 다들 날 놀리잖아
안 울면 좋지 뭐.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는 항상 힘든 걸까?
조금만 틈이 생겨도 부정적인 감정들이 올라왔다.
거기에,
뉴스 속의 사건들을 가상의 이야기처럼 바라보기 시작했다.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
왜 사람들이 저렇게 슬퍼하고 경악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학교 상담실을 찾아갔다.
그렇게 시작한 상담은
갈 때마다 휴지 한통씩 다쓰며 펑펑 울었고
심리상담인데 이렇게 울기만 하는 거도 괜찮나?
뭔가 말을 해야 할 거 같은데... 하고 멋쩍어졌다.
상담 선생님은
마음 안에 있는 억눌렸던 감정들이 나오고 있어서 그래요.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상담의 일부분이에요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처음이었다.
운다고 놀림당하거나, 외면당하거나, 혼나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공감해 줬던 기억이.
만약 그 첫 상담에서
"울지 말고"라는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울지 않기 위해서 또 내 감정을 외면하고
속에서 곪아있었겠지.
문득 MBTI 관련 유튜브를 보다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MBTI, 진짜 내가 맞는 걸까?
평균적으로 T(사고형) 60% F(감정형) 40%가 나오는 편이다.
나는 사고형으로 태어나서 사고형이 강한 걸까
감정형으로 태어났지만 사고형으로 자라난 걸까
사람을 한 가지 요인만으로 결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나의 성장경험들이 사고형으로 날 이끌어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만약 다른 환경에서 내가 성장했다면
아빠에 대한 생각을 묻는 발표에서
내 표현은 어떻게 변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