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과 교주의 연합

23. 시작된 노곤의 위기

by NaeilRnC


마왕 발두르가 장작을 패고 있던 오후. 하늘은 흐렸고, 허리는 무거웠다.

발두르는 오늘도 “아이고야…” 하는 한숨과 함께 장작더미 위에 걸터앉았다. 그때였다.

마을 어귀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마왕님, 계십니까?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발두르는 고개를 바짝 들었다. 그 목소리를 잊을 리 없었다. 잠의 교주. 한때 노곤을 ‘신격화’하겠다며 노궁을 지어 올리고 식혜를 성수처럼 뿌리던 그 교주였다. 발두르는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 교주? 여기엔 무슨 일로?”


교주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엔 묘하게 계산된 느낌이 섞여 있었다.

구두닦이 시절부터 그에게 배어 있는 ‘고객 분석용 미소’였다.

“마왕님, 오랜만입니다. 허리는… 괜찮으십니까?”


발두르는 허리를 부여잡으며 툴툴거렸다.

“아직 안 괜찮아. 허리디스크는 마법으로도 안 낫는다더군.”


교주는 공감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은 장작더미에 널린 파스와 찜질팩에 고정되어 있었다.

“… 그러시겠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발두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중요한 이야긴가? 설마 또 노곤을 신격화하는 설교를 하러 온 건 아니겠지?”


교주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 말 한마디가… 오늘의 목적 자체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이제는 노곤 님을… 경배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마당의 바람마저 멈춘 듯 고요해졌다. 발두르는 장작을 내던지고 물었다.

“… 그게 무슨 소리요?”


교주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치 감춰둔 진실을 털어놓듯 말했다.

“노곤 님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닙니다. 그는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발두르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흘렸다.

“흥. 그런 건 진작 알았지. 내 본진이 그 인간의 하품 한 번에 날아갔으니.”


교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마왕님이 필요합니다.”

마왕 : “나? 나 같은 허리아저씨가?”

교주 : “허리 아픈 건 현실에서 이고, 힘이 없는 것도 현실에서 입니다.”


교주의 음성이 조금 낮아졌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발두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교주는 그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구두닦이 시절, 손님이 사러 온 신발을 보며 그 사람이 현재 무엇을 갈망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지금 발두르의 눈빛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힘’에 대한 갈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교주는 한 걸음 다가섰다.

“마왕님. 노곤 님의 힘은 현실에서 압도적입니다. 하지만 꿈속에서는 다릅니다.”


발두르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 꿈 속이라면… 나도 싸울 수 있다는 말인가?”

교주 : “그렇습니다. 감정과 공포는 꿈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리고 마왕님은 그 공포의 절대자셨죠.”


바람이 스쳤다. 발두르의 굽은 허리가 아주 조금 펴졌다.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단어가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귓가를 때렸다. 공포의 절대자.

그 말은 마치 천천히 발아하는 씨앗처럼 마도사의 마음속에서 잊힌 욕망을 되살렸다. 발두르는 낮게 웃었다.

“… 나도 다시… 예전의 나를 보고 싶은데.”


교주는 틈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저와 손을 잡으시죠. 노곤 님의 꿈속으로 들어가 그의 힘의 원천을 끊어내는 겁니다.”


교주의 눈빛은 복잡했다. 두려움과 야망, 그리고 오래 묵은 계산까지 섞여 있었다.

발두르는 오랜만에 허리를 곧게 펴며 말했다.

“좋다. 나도… 이대로 늙어 죽을 순 없지.”


둘의 손끝이 서로 닿는 순간, 그림자가 바닥에서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 움직임을 둘 중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두 패배자의 연합이 시작된다. 세계가 한 번쯤 뒤집힐 만한 사건의 서막.

그리고… 노곤에게 닥칠 첫 번째 진짜 위기의 시작이었다.



*이 글에 포함된 이미지는 AI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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