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과연 오늘부터 수요일까지 어린이날이 될 것인가.
아침 출근길에 뽀로로 노래가 생각났다. 오늘부터 수요일까지 ‘그놈’과 국장님이 출장이시다.
나에게 일을 시킬 사람의 부재, 그리고 왔다 갔다 하며 내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눈길이 사라진 사흘.
나는 이 어린이날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조직의 생리는 구성원을 부품처럼 끼워 넣기 때문에 누군가의 부재에도 톱니바퀴는 대체로 잘 돌아간다.
다만 윤활유가 뿌려져도 약간 뻑뻑할지, 윤활유가 없어도 그럭저럭 굴러갈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결국 누군가는 갈리게 되어 있다. 그리고 갈리다 지쳐 팅겨져 나가면 다시 사람을 뽑으면 된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다.
공공의 세계에서 인력 채용은 쓸데없이 절차가 길다. 그래서 사람 하나 뽑을 때도 담당자는 피가 마른다.
왜냐하면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빈자리를 확인하고, 또 확인시키고. 채용계획을 세우고, 또 확인시키고.
채용공고를 내고, 또 확인시키고. 늘 무언가를 진행할 때마다 사전검열을 받는 느낌이다.
최근에 1년 넘게 근무했던 대리가 사직을 통보했는데 그게 벌써 2월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채용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오늘의 사조직이었다면 벌써 채용을 끝내고 갈릴 준비를 하도록 인수인계를 시켰을 것이다.
이런 식의 비효율이 참 많다.
내가 이 사흘을 어린이날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비효율 때문이다.
내 일은 추진계획을 세우고, 본청 검토를 받아 수정하고, 재검토를 받은 뒤 협력부서로 넘어가 또 검토와 재검토를 반복한 다음에야 비로소 진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엔 본청의 빨간펜 샘도 함께 출장이다.
그래서 나는 당장 검토를 받아야 할 일이 사라졌다.
덕분에 잠깐은 해방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다고 일이 앞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일단 무한 계획 수립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 계획이라는 것이 본청에서 한 번 까이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 그러니 이번 주 초의 나는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다.
아무도 내 뒤에 서서 모니터를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아무도 내 계획을 확정해주는 사람도 없다. 생각해보면 이건 어린이날이라기보다 잠깐의 집행유예에 가깝다. 혼나는 사람은 없고, 쪼는 사람도 없고, 당장 빨간펜으로 줄을 긋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수요일이 지나면 어른들이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면 내가 사흘 동안 쌓아놓은 계획서는 다시 검토를 받고, 다시 수정되고, 다시 까일 것이다. 그러니 이번 사흘은 완전한 자유가 아니다.
조용히 숨을 돌릴 수는 있지만 마음 놓고 쉴 수는 없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간을 어린이날이라 부르고 싶다. 누가 내 모니터를 들여다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잠깐 숨통이 트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짧은 평화가 진짜 휴식은 아니라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흘은 놀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아니라, 혼나지 않아서 잠깐 다행인 시간에 가깝다.
어린이날 같지만 사실은 어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
문제는 수요일이 지나면 다시 "으른의 날"이 시작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