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느낌83

머리가 아프다.

by NaeilRnC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일요일 밤이면 늘 잠을 잘 못 잤다.
그리고 어제도 잠을 못 잤다. 요즘 평일에는 멜라토닌을 먹고 잠을 청하는 게 거의 일상이 되다 보니, 가끔은 멜라토닌을 먹지 않는 주말 밤이라 더 잠이 안 오는 건가 싶기도 하다. 몸이 약에 길들여진 건가, 생활 리듬이 망가진 건가, 별별 생각을 다 해봤다. 그런데 아니다.


어제는 오늘 때문에 스트레스가 발동해서 못 잔 거다. 이건 수면의 문제가 아니라 예감의 문제였다.

아직 오지도 않은 월요일이 머리맡에 먼저 와 앉아 있었고, 나는 불을 끈 채 그 그림자부터 보고 있었던 셈이다. 몸은 침대에 누워 있는데 머리는 이미 사무실에 출근해 있었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오늘 때문에, 어제의 밤이 먼저 망가진 것이다.


내 주된 업무는 성격이 다른 다섯 개의 사업이다. 그중 하나는 원래 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하는 업무의 9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빡세고 바쁜 일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그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머지 일들도 전혀 녹록하지 않다. 최소한 2월에는 추진이 진행됐어야 할 일들이 미뤄지고, 연기되고, 내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지금은 전부 내 어깨 위에 올라타 있다.


말이 다섯 개지, 체감은 다섯 배다. 하나하나의 사업이 독립된 업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 엉켜 있다. 하나를 만지면 다른 하나의 일정이 밀리고, 다른 하나를 붙잡으면 이미 늦어진 셋째 일이 머리 위에서 신호를 보낸다. 일정은 뒤엉키고, 책임은 쌓이고, 설명해야 할 말은 점점 길어진다.


일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옮겨붙는다. 장작더미에 불이 붙듯, 한 군데에서 시작된 압박이 다른 군데로 번져간다. 그런데 오늘 아침 또 하나의 일이 떨어졌다. 이쯤 되면 생각이 없나 싶을 만큼, 참 일관성 있게 일을 던진다. 어제, 이럴 것 같아서 잠을 못 잤는데 결국 떨어질 일은 떨어진다.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중력의 법칙을 깨달았지만, 나는 만가지 일이 한 사람에게로 떨어지는 뭣같은 법칙인 만유일력(萬有一力)을 사무실 안에서 깨달았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다. 몇 번은 타이밍이 나빴던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반복되면 우연이 아니라 구조다. 일은 늘 비슷한 방식으로 떨어진다.


이미 손에 들고 있는 게 많을 때, 막 하나의 방향을 겨우 잡았을 때, 오늘은 조금 숨을 돌릴 수 있겠다고 착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떨어진다. 그래서 더 머리가 아프다. 몸이 힘든 건 버틸 수 있다. 몸의 피로는 누우면 좀 가라앉는다. 그런데 머리의 피로는 눕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불을 끄고 누우면 더 선명해진다.


끝내지 못한 문장, 미뤄진 일정, 다음 주에 설명해야 할 말, 누군가가 또 던질 것 같은 일, 그걸 내가 또 받게 될 것 같은 예감. 이런 것들이 침대까지 따라온다. 눈은 감았는데 머릿속에서는 결재선이 돌아다니고, 일정표가 넘어가고, 설명서 문장이 수정되고, 누군가의 말투가 다시 재생된다. 잠을 자는 게 아니라, 누운 채로 다음 날의 실패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오늘 때문에 어제 잠을 못 자고, 그렇게 잠을 못 잔 상태로 오늘을 버티고, 버티다 보면 내일의 일이 또 어제의 불안이 된다. 이쯤 되면 하루가 하루가 아니다. 월요일은 월요일에만 오는 게 아니다.

일요일 밤에 한 번 오고, 월요일 아침에 다시 오고, 월요일 점심쯤엔 이미 화요일의 불안이 미리 와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진짜 견디기 힘든 건 업무량 그 자체보다도, 끝날 것 같지 않은 감각이다. 하나를 끝내면 하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하나를 붙잡고 있는 사이 다른 하나가 떨어진다. 그리고 그 떨어지는 타이밍은 늘 절묘하다. 내가 가장 피곤할 때, 내가 가장 정신없을 때, 내가 막 다른 일의 방향을 잡아보려 할 때, 내가 오늘은 그래도 하나쯤 덜어냈다고 착각할 때. 바로 그때다.


그래서 요즘은 일요일 밤이 싫다. 월요일이 와서가 아니라, 월요일이 오기 전에 이미 월요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월요일이 싫었다. 지금은 일요일 밤이 싫다. 월요일 자체보다, 월요일을 미리 당겨서 느끼게 만드는 이 감각이 더 싫다. 아직 쉬는 시간인데 이미 쉬는 게 끝난 것 같은 기분. 아직 출근도 안 했는데 이미 하루치 긴장을 먼저 쓴 느낌. 사람을 진짜 지치게 만드는 건 업무보다도, 쉬는 시간에 쉬지 못하게 만드는 예감인지도 모른다.


잠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스트레스는 먼저 출근한다. 그리고 더 짜증나는 건, 이 모든 걸 겪고도 겉으로는 멀쩡한 척해야 한다는 점이다. 출근하면 “주말 잘 쉬셨어요?” 같은 말을 듣고, 나는 적당히 웃으며 “네”라고 답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쉰 게 아니다. 어제 밤 내내 오늘을 미리 살았고, 오늘 하루 종일 내일을 미리 걱정할 것이다. 그러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이건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다. 수면 부족도 아니고, 일정 과부하도 아니다. 끝나지 않는다는 감각, 정리할 틈 없이 계속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일들, 그리고 그걸 다음 날의 내가 또 어떻게든 받아내야 한다는 예감.


사람을 제일 먼저 망가뜨리는 건 엄청난 사건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계속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일지도 모른다. 하나쯤 마무리했다고 생각하면 다른 하나가 생기고, 다른 하나를 붙잡으면 이번엔 또 새로운 하나가 끼어든다.

그러다 보면 사람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이 떨어질 자리를 비워두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오늘의 부제는 딱 하나다. 머리가 아프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일이 많아서 머리가 아픈 게 아니다.

끝날 것 같지 않아서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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