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여행 계획가_태안

그 길의 끝에 아주 흥미로운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by 붙박이별

# since 2008 엄마의 원픽, 가족여행의 성지 '태안'


동물, 식물 가릴 것 없이 모든 생물을 아들은 사랑했다. 엄마가 된 이후 나는 철저하게 아들 맞춤형 여행 계획가가 되었다. 그중 태안은 우리 가족의 놀거리, 먹거리, 볼거리를 모두 충족시켜 주는 여행지다. 해마다 봄, 가을 2회 이상은 방문했으며 코로나19로 캠핑 바람이 불던 때는 한 달에 한번 이상 태안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퇴직 후에 태안 바닷가에 귀농을 꿈꾸고 있으니 태안 사랑은 아들을 핑계로 한 엄마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하다.




# 수렵채집 DNA


인간은 약 280만 년 전 최초의 인류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채집, 수렵 생활을 해 왔으며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만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인간의 수렵과 채집 생활의 흔적과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서는 '인간이 걷지 않으면 당뇨와 같은 질병에 걸리는 것은 움직이도록 설계된 수렵채집 DNA의 영향이다'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 가족은 수렵채집 DNA가 좀 더 강하게 심어져 있는 것이 분명하다. 봄이면 냉이 캐기, 쑥 캐기. 여름에는 상추, 가지, 토마토 따기. 가을이면 밤 줍기, 배추 뽑기, 겨울에는 빙어 낚시 등 다양한 수렵채집 활동을 즐긴다. 조개 잡기는 겨울을 제외하고 우리 가족이 가장 즐기는 채집활동이다. 태안은 그중 조개 잡기의 메카다.




# 우연히 만난 신두리 해안사구


몽산포로 조개 잡으러 가는 길에 우연히 들리게 된 신두리 해안사구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첫인상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마치 사막 어딘가에 있는 듯한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사막 옆에는 수평선이 길게 이어진 바다가 펼쳐져 있어서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신두리 해안사구
모래가 바람에 의해 개펄과 해변에서 육지로 이동되어 사구가 형성되기에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 독특한 지형과 식생이 잘 보전되어 있고, 모래언덕의 바람 자국 등 사막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경관과 해당화 군락, 조류의 산란장소 등으로 경관적·생태학적 가치가 높으며, 규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 태안 군청 [신두리 해안사구] 소개 中

우연히 만난 표범장지뱀과 끝없이 이어진 데크 길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데크 길이 길게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간혹 신발에 모래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데크 길 덕분에 해변 기분을 느끼면서 산책로 같은 깔끔함까지 경험할 수 있다.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유모차나 노인분들이 걷기에도 무리가 없어서 가족여행 장소로 적합하다.

특히, 데크 길을 걷다 보면 표범장지뱀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도마뱀은 괌, 사이판 등을 가야지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사구를 한 바퀴 도는 데 10마리 이상 만났다. 생물에 관심이 많은 아들들은 신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아마도 초등 저학년 남자아이들이라면 정말 좋아할 장소임에 틀림없다.

해안 사구 주변으로 붉은 해당화 군락지가 펼쳐져 있는데 붉은 해당화가 초록 갯쇠보리 사이에 피어있는 모습이 예뻤다. 바닷바람을 따라 실려오는 꽃 향기가 바다의 비릿한 냄새와 대조적이면서도 조화로웠다.


사막에 있는 착각이 드는 신두리 해안사구


# 지나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두웅습지


"언니, 이 근처에 두웅습지가 있는데 가볼래?"


지리교사인 동생이 물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들은 적 있지만 두웅습지는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었다. 동생이 교과서에도 나오는데 모르냐며 반문했다. 배운 지 오래되었으니 모를 수도 있지 않나. 네비로 2분 거리에 있으니 일단 가보기로 했다. 길을 잘 못 들었나 싶을 만큼 외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두웅습지 탐방소가 나온다. 화장실이 금개구리 모양이라 꽤 인상적이었다.

탐방소에는 자원봉사 하시는 해설사분이 계시는데 시간대를 맞춰가면 아주 재미있는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시간대를 맞추지 못했는데도 해설사분이 중학생 아이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흔쾌히 해설을 해 주셨다. 자원봉사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빛나는 직업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두웅습지
두웅습지의 바닥에는 사구가 형성될 때 바람에 날려온 가는 모래가 쌓여 있었으나, 최근에 모래의 유입이 줄어든 대신, 주변부에서 유입된 점토 성분과 아기 마름과 같은 수생식물의 사체가 증가하면서 점토 성분의 미립질과 유기물이 표층을 덮고 있다.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두웅습지] 소개 中

두웅습지는 생각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있어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둘러보면 지리적, 생태학적 지식을 키울 수 있다. 그림책에서나 보던 개미귀신을 실제로 보니 이름과는 달리 매우 귀여운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뱀의 짝짓기 장면도 1열에서 직관할 수 있었다.



열정적인 설명을 들려주신 해설사 선생님과 우연히 만난 참개구리


그림책에서 보던 개미귀신과 짝짓기 중인 유혈목이 커플




# 새로운 시도, 낯선 길...

인생과 여행의 가장 큰 묘미는 계획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몽산포로 가는 길목에 들렀던 신두리 해안사구와 두웅습지가 우리 가족에게 강렬한 기억을 남겼던 것처럼. 그렇기에 인생과 여행의 다음 순간이 기대되는 것이 아닐까. 아들 맞춤형 여행 계획가로서 여행을 할 때는 일정에 있던 일, 정해진 길 말고 새로운 시도와 낯선 길을 가보길 권한다. 그 길의 끝에 아주 흥미로운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걸요.

- 빨강 머리 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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