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_제주

추억이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다.

by 붙박이별
나는 여행을 사랑한다. 특히,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을 사랑한다. 그들과 함께 할 추억을 사랑한다. 추억이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함께다.




# 설레는 여행의 시작


2004년 1월, 우리 가족은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다. 내가 선생님이 된 기념으로 제주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아빠, 엄마는 신혼여행 가는 신혼부부처럼 정장과 구두를 신고 비행기를 타셨다. 여행용 캐리어도 없어서 검은색 이민 가방을 빌려서 들고 비행기를 탔다. 우리는 처음 비행기를 타서 수하물이라는 개념을 몰랐던 것이다.

스튜어디스는 이민 가방을 들고 탄 우리 가족을 보며 놀랐지만 투철한 직업 정신을 발휘하여 밝은 미소를 지었다. 고맙게도 제 몸집보다 훨씬 큰 가방을 번쩍 들어 짐칸에 넣어 주었다. 설레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 그 해, 우리는


날씨는 1월답지 않게 따뜻해서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였다. 그 이후 제주도를 여러 차례 왔지만 그렇게 따뜻했던 겨울은 두 번 다시없었다. 여행의 첫 목적지는 함덕 해수욕장이었다. '에매랄드빛 바다'라는 단어는 책에서만 봤지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느낌은 너무나 강렬해서 말없이 오랫동안 바다만 보고 있었다. 에매랄드빛 바다는 우리 가족에게 그렇게 각인되어 영원히 남았다.

당시에만 해도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여미지 식물원에 도착한 엄마는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여기가 천국이지.'라며 감탄하셨다.

2019년에 제주를 방문했을 때, 그리운 여미지 식물원을 다시 방문했다. 세월의 흔적만큼 퇴색해 버린 식물원의 모습이 마치 아빠와의 추억이 바래 버린 느낌이 들어 씁쓸했다. 우리는 식물원이 아니라 그 해, 우리 가족 모두 함께했던 순간이 가슴 시리게 그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추억이 있다면 우리는 함께다.


아빠와 동생은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고기반찬 없이는 식사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 특히, 아빠는 제주흑돼지를 꼭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마트에 도착했을 때 흑돼지는 이미 품절되고 없었다. 하는 수없이 그냥 돼지고기를 사 왔지만 아빠와 동생에게는 제주흑돼지라고 속였다. 엄마와 나의 비밀이 생긴 것이다. 아빠는 2011년 돌아가실 때까지 그때 먹은 고기가 제주흑돼지라고 알고 계셨다. 동생도 2~3년 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으니 엄마와 나는 꽤 괜찮은 비밀 친구였다. 지금도 우리는 제주흑돼지를 먹을 때마다 아빠를 소환한다.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꼭 사실대로 말해줘야겠다면서... 추억이 있다면 아빠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다.




# 추억이라는 타임머신


한라산에 눈이 쌓여있어서 윗세오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체력이 약한 엄마가 자꾸 뒤처졌다. 중간쯤 가자 우리는 엄마에게 그만 올라가기를 권했다. 그리고 무거운 가방을 3개나 맡겼다. 금방 내려오겠노라 장담하면서... 윗세오름에 오르자 작은 산장이 보였다. 아빠와 우리는 믹스커피와 초코파이를 사 먹었다. 눈 덮인 한라산에서 먹는 믹스커피의 맛이란 20년이 흐른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 맛을 함께하지 못한 엄마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가방을 3개, 아니 본인 것까지 4개를 짊어지고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엄마였다. 우리 가족은 눈 맞은 강아지처럼 좋아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무거운데 어떻게 올라왔어?"


"하도 안 오길래 조금씩 조금씩 올라왔더니 다 올라왔어."


우리는 윗세오름에서 완벽한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완벽한 추억을 만들었다.




추억은 타임머신이다. 초코파이, 믹스커피, 제주흑돼지, 한라산, 에매랄드빛 바다... 수많은 추억들이 우리를 그 시간으로 데려다준다. 추억이 있으면 우리는 함께다. 소중한 이들과 추억을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언젠가 함께 할 수 없는 시간이 오더라도 추억이라는 타임머신이 그리워하는 그 시간으로 당신을 데려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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