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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Mar 05. 2024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센 언니가 될 거라는 믿음

# 설렘으로 시작하는 한 그저 그런 하루는 없다


3월이 시작되었다. 이번 3월은 우리 가족에게 조금 특별하다. 아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으며 나는 6년간 짊어졌던 부장교사라는 직함에서 부장을 떼고 교사로 돌아왔다. 모든 시작은 설렘과 걱정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설렘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개학 첫 날, 다짐이 무색하게도 아들은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고 울상을 하며 집으로 들어왔고, 나는 끝나지 않은 부장교사의 업무와 현재 맡은 업무까지 합쳐져 눈코 뜰새 없는 하루를 보냈다. 그렇다고 우리의 오늘이 별로였던 것은 아니다.

 아들은 하굣길에 친구어머니의 차를 얻어 타고 오는 행운을 얻었고, 나는 6년 만의 칼퇴 덕분에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아들이 말했다.

" 엄마, 내일은 꼭 친구를 사귀어 볼 거예요."

 인생의 매 순간이 시작이 아닌 때가 있을까? 내일의 시작에 아들은 또 설렘을 선택했다. 기특한 녀석이다. 엄마도 가만있을 수 없으니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도 내일 칼퇴해서 맛있는 부대찌개 끓여줄게."

 나도 설렘을 선택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모레, 결국 바라던 대로 아들은 절친이 생길 것이고, 나도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를 외치며 제일 먼저 퇴근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설렘으로 시작하는 한 그저 그런 하루는 없다.




# 나는 '인간 초밥'이 되기를 거부했다.


 교사들의 업무는 학기가 시작하기 전 결정된다. 이렇다 보니 학기 중 신청하거나 확정이 된 다양한 공모사업 및 자잘한 보고 공문들은 주인이 없다. 경매에 붙인 '주인 없는 일'들은 유찰을 거듭하다가 결국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심지어 일에 펑크를 절대 내지 않는 책임감 강한 사람'에게 낙찰된다. 나는 두 가지 조건뿐만 아니라 '남에게 부탁을 잘하지 않는 사람'에 '가장 나이 어린 부장'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으니 일을 맡기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조건을 가진 사람은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인간 초밥'이 되었다. 업무 위에 새로운 업무를 착착 쌓아갔다. 나중에는 건망증이 생겼다. 노화의 현상인 줄 알았지만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서 생긴 뇌의 오류였다.

 부장교사의 꽃이라는 교무기획부장을 맡고나서부터는 이 모든 무게를 견디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못하겠다는 말에 '일 년만 더'를 외치며 붙잡으시는 교장선생님을 거절하지 못한 채 6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모든 것이 힘에 부쳤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동료교사에게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사는 내 모습을 견디는 일이었다. 난 원래 투덜이가 아니었는데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이 슬펐다.

 이대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된 순간, 결국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그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걸까? 결국 모두의 원망 어린 눈빛을 받으며 부장교사라는 이름표를 뗄 수 있었다.

 3월 개학 첫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꿀잠을 자고 풀세팅한 예쁜 모습으로 출근을 했다. 새로운 설렘이 시작되었다.



#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센 언니가 될 거라는 믿음, 어제보다 더 나답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설렘


 한번 용기를 내니 이상하게 뱃속 깊은 곳부터 자꾸만 용기가 솟는다. 대학원도 다니고 싶고, 새로운 운동도 시작하고 싶고, 멈췄던 캠핑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졌다. 글이 너무 쓰고 싶어 작년 12월에 브런치작가도 신청해서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봄이 되니 내 마음에도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한다. 이게 몇 년 만인지...

 사실 부장교사에서 교사가 되었다고 학교생활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나는 여전히 새벽 6시 20분이면 왕복 80km의 출근길에 오른다. 수업을 하고 업무를 보고 퇴근을 한다. 그런데 뭐가 달라진 걸까?



 나는 나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센 언니가 될 거라는 믿음이. 그래서 어제보다 더 나답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이 나를 변화시킬 것이다. 앞으로의 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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