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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Mar 03. 2024

말 못 하는 속사정

'정말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말하기로 했다.

# 미용실 가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미용실 가는 것을 즐긴다. 예뻐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이므로.

 하지만 예외도 있다. 바로 나. 나는 미용실 가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아니 싫어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미용실을 가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 일 년에 한두 번만 방문한다. 그마저도 길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정도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라는 말처럼 (알아주는 똥손이지만) 앞머리를 자르거나 간단한 드라이는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위안을 해본다.

  



# 미용실 단골손님


  처음 나 혼자 미용실을 간 것은 중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머리를 감고 갔지만 뜨거운 햇볕 때문에 두피에 땀이 차올랐다.

 땀난 머리를 만져야 하는 미용사님께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생 아이가 가질만한 마음은 아니었는데 난 그때도 남을 무던히 의식했던 거 같다.

"머리 자르러 왔는데요."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를 용케 알아들으신 미용실 원장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귀밑 3cm 똑 단발' 머리를 해 주셨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웃으면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집에 오는 내내 울었다. 물어보지도 않고 머리를 자른 미용실 원장님이 너무 원망스러웠고, 맘에 안 든다고 한마디 말도 못 한 내가 한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단정하게 머리를 잘한다며 만족해하셨다. 그 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그곳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 귀밑 1cm 몽실언니, '모범학생'으로 뽑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규율이 매우 엄격했다. 입학을 해보니 머리는 '귀밑 1cm 똑 단발'이 규정이었다. 학교에서 첫 복장 검사가 있던 전 날, 미용실 원장님은 나의 전속 미용사답게 얄짤없이 귀밑 1cm 똑 단발을 해주셨다. 묻지도 않고 '알아서' 해주시는 고마운 원장님이었다. 혹시 학창 시절 귀밑 1cm 머리를 해 보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몽실언니'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 '몽실이'를 생각하면 딱 맞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소녀에게 몽실이 머리는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하지만 나 같은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선생님께 지적받는 일이었기 때문에 촌스런 몽실이 머리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규정에 알맞으니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적어도 학교를 가기 전까진...

  다음날, 반 친구들의 머리는 놀랍게도 어제와 변함이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전교에 '귀밑 1cm 몽실이는 나 혼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용의 복장 '모범 학생'으로 선정되어 그날 아침 내내 12 학급 전 교실을 돌면서 모델을 섰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나를 책상 위에 올라가게 하고는 모든 학생들이 보도록 했다.

"이렇게 머리를 자르고 오는 거다. 얼마나 단정하고 예쁘냐?!"

  그날의 수치스러웠던 기억은 이제 추억으로 남았지만 그때의 성실하고 안타까울 만큼 규칙을 잘 지키던 그 아이는 여전히 내 안에 살고 있다.

 



# 할 말하는 센 언니가 되고 싶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미용사분들은 대부분 좋은 분들이었다. 손님의 말에 귀 기울였으며 성심성의껏 머리를 만져주셨으니까.

 생각해 보면 내가 미용실 가기를 즐기지 않는 것은 결국 나 때문이다.

 원하는 스타일을 말하는 것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아무 말 못 하고 만족스러운 척 돌아서는 나를 스스로 납득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찾은 대안은 스스로 머리를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그게 무슨 대안이냐고. 원하는 제대로 정확하게 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맞다. 나도 원하는 바다. 할 말하는 센 언니가 되고 싶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편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대부분 내가 참는 쪽을 선택해 왔다. 그마저 힘들 때는 대안으로 회피를 선택했다.

 할 말하는 센 언니가 되지 못한 나에게 실망하고 때론 다그치고 연습도 해봤다. 그런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30년 전의 내가 여전히 내 안에 살고 있듯이.

 센 언니가 되고 싶은 것도 '나'지만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것도 '나'다. 원하는 모습으로만 살 수 없다는 당연한 삶의 진리를 숙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은 생겼다. 나이 듦의 순기능이라고나 할까. 얼마나 다행인가? 내 모습이 싫다고 울며불며 떼쓰지 않고 둥글든 찌그러졌든 감당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출처 : Pixabay




 세상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아름다움을 주고, 슬픔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슬픔을 준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는 순간,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주위로 끌어당긴다. 원하는 것을 말하는 순간, 원하는 그것을 자신에게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 류시화 작가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中 -

  이제 '할 말 못 하는 나'도 미워하지 말고 그럭저럭 잘 지내보려 한다. '못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대신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말하기로 했다. 그러면 세상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내어놓는 행운이 다가올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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