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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붙박이별 Feb 27. 2024

'습관적 미소 짓기'라는 불치병

페르소나에 감추어진 '나'를 드러낼 시간

persona
-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특히 그의 실제 성격과는  다른 한 개인의 모습
-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서 각각의 요구에 맞추어 특정 행동이나 태도를 취하는 것
- 사회정체감이자 타인에게 보이는 이상적 심상
- 즉, 사회적 가면

 



# 나의 페르소나


 사람은 태어나서 사회에 속하게 되는 순간부터 페르소나를 갖고 살아간다. 개인이 갖는 페르소나는 가정과 사회교육을 통해 더 단단하고 다양해진다. 다행스럽게도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꽤 그럴듯한 페르소나를 갖게 되었다. 다정하고 예의 바르며 책임감이 강한 사람,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뛰어난 사람, 그중 단연 최고의 페르소나는 '항상 웃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당연히 '미소'는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습관적 미소 짓기'는 삶을 살아가는데 여러모로 유용했다. 어렸을 때는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었고 선생님들께는 예의 바른 아이로 통했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윗사람이나 동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학생들에게는 매우 친절한 선생님으로 비쳤다. 한 때 '미소'는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좋은 것이라 생각되면 그 행동은 강화가 된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거울을 보며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 연습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순간 습관이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 OO(나) 선생님이 제일 에너지가 넘쳐요." - 동료교사
"우리 며느리는 뭐든지 완벽하게 잘 해낸다." - 시어머니
"너는 원래 친절한 사람이잖아" - 20년 지기 친구




# 페르소나에 갇히다


 얼마 전 선배 교사가 말도 안 되는 일로 언성을 높인 적이 있다.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칼날 같은 말을 몸으로 다 받아냈다. 다음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기, 내가 어제 갑자기 화나는 일이 있어서 그랬어. 이해하지? 자기가 다 받아주니까 그랬나 봐. 미안."

 

 "괜찮아요. 그러실 수도 있죠."하고 나는 습관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절대 참지 말고 할 말 하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결국 난 나답게(?) 참는 쪽을 선택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오랜 세월 함께한 페르소나는 종종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개인적 자아와 페르소나경계가 모호해진다거나 페르소나에 비해 개인적 자아가 너무 보잘것없이 느껴지는 것 등이다.

 나는 '항상 웃고 긍정적인' 사회적 가면과는 달리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다. 심할 때는 30분마다 잠을 깰 정도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남편, 엄마, 동생 정도가 전부다. 물론, 불안도를 낮추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타고난 기질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와 페르소나 사이에 생긴 간극은 세월이 흘러도 좁혀지지 않았다.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습관적으로 지은 미소가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마흔 무렵이었다.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도, 완벽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원래 친절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결국, 간극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때가 한계였던 것이다.

출처 : Pixabay




# 페르소나 속에 감추어진 '나'를 드러낼 시간


 언제까지나 페르소나 속에 갇혀 살 수는 없다. 그건 내가 아니니까.

 페르소나 속에 감추어진 '나'를 드러낼 시간이 된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 타인을 위해 '습관적으로 미소 짓기'는 그만둘 것이다. 물론, 페르소나를 버리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회 속에 살아가는 한 그것은 숙명이니까.



 

 단지 나는 좀 더 '나'답게 살기로 했을 뿐이다.

 불안이 높고 부정적인 면도 있는 모난 모습의 '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임을 알고 있다. 앞으로의 시간들은 '나'로서 찬란히 빛나기를,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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