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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테리 May 27. 2021

국물은 필요 없습니다만...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위 문장에서 국물은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아주 사소한 어떤 하나라도 내어줄 수 없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랑 없인 살아도 국물 없인 못 살 만큼 전혀 사소하지 않은, 오히려 중차대한 존재가 바로 국물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겨울이 가치 있는 건, 오뎅 국물 때문이라고. 인정한다. 추운 날 빨갛게 질린 두 손 사이에 오뎅 국물이 가득 담긴 종이컵 하나 있으면 군용 핫팩 부럽지 않다. 옹기종기 분식 트럭에 모여 어묵에 간장 발라가며 먹다 보면 뭔가 아날로그적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비단 오뎅 국물뿐인가? 생일엔 미역국을 먹고 설날엔 떡국을 먹고 만만하게 한 끼 때울 땐 라면을 먹고 칼칼한 게 당길 땐 짬뽕을 먹는다. 우리가 먹는 많은 종류의 음식들은 국물이 기본 옵션으로 장착되어 있다. 그 국물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 벌이는 사투도 꽤나 인상적이다. 국물 맛을 내려고 무려 한우 사골 뼈를 24시간 이상 우리기도 하고 온갖 해물과 채소를 면포에 고이 담아 끓여 육수를 뽑아내기도 한다.


서론이 조금 길었다. 이쯤 해서 김 빠지는 소리를 하자면 나는 국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식습관이 다르고 자기만의 룰이 있듯이 국물에 관한 나의 룰은  반드시 건더기가 딸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면을 먹을 땐 밥까지 말아먹는 게 국 룰이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밥을 말지 않을 땐  국물 따윈 버린다.


국밥부 장관은 국밥은 국물까지 다 먹는 것이 국 룰이라고 강조했지만 국 룰보다 중요한 것이 내 룰이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도 따로 국을 먹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식탁에서 나의 신조는 국 먹을 시간 있으면  그 시간에 고기를 더 먹자!! 였다 내게 있어 국물은 밥을 말거나 볶기 위해 존재하는 조력자일 뿐이다.  국물에 무슨 염분이 많고 살이 찌고 등의 이유가 아니다. 그냥 국물의 아무것도 씹힘이 없는 그 나약한 식감이 별로다.  


누군가는 김밥을 먹을 때 오이를 거른다. 누군가는 물에 빠진 고기는 먹지 않는다. 또 누군가는 고수에서 걸레 맛이 난다고 질색을 한다. 난 그 어떤 것도 거르지 않지만 매번 국물뿐인 국물을 거른다. 치킨 먹을 때 닭다리와 장어 먹을 때 꼬리는 어떻게 해서든 사수하지만 국물 앞에서는 한없이 타인에게 관대해진다. (언젠가 짬뽕을 시키면 국물만 먹는 여자와 연애를 한 적이 있었는데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평생 베필을 만난 건가 했다.)


하지만, 내가 국물을 안 먹는다고 해서 국물이 존재감을 잃는것은 아니다. 설렁탕에 사골국물이 없으면 설렁탕이 아니고 콩국수에 콩국물이 없으면 콩국수가 아닌 게 되어 버리는 거니까. 국물이 맛의 근간이요, 뿌리가 되는 것임은 두말 않고 인정이다.


국물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인성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모든 것을 다 갖춰도 인성이 쓰레기면  결국 쓰레기가 되는 것처럼  국물이 진국이어야 음식 전체가 산다. 그래서 난 국물만은 따로 먹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국물을 제일 리스펙 한다.  


코로나로 인해 배달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나는 오늘도 배달요청사항에 다음과 같이 썼다가 유난 떠는 것  같아 이내 지우고 만다.  


“국물은 필요 없습니다만,  그래도 국물에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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