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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수 Aug 19. 2024

퇴고

퇴고

"글을 지을 때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고 다듬음. 또는 그런 일."

퇴고를 예로 들때 두보를 빼놓을 수 없다.
두보가 퇴고를 통한 노력형이라면 이태백은 일필휘지 천재형으로 볼 수 있다.
두 사람 다 한시의 대가로 평가 받는다.

이태백은 두보와 함께 한시 문학의 양대 거성으로 꼽힌다.
두보가 몇 번의 퇴고를 거쳐서 완성된 시를 내놓는 반면 이태백은 천재적인 재능으로 마음 내킬 때 몇 줄 내려쓰면 그게 두보에 필적하는 명시였다고 한다.
때문에 별명은 두보의 별명인 시성(詩聖)과 대비되는 시선(詩仙).
그 둘을 묶어 보통 이두(李杜)라고 부르며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리는 건 바보짓이라고 이미 중국 고전문학계에서 논쟁을 끝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동격으로 대우받는다.

'노인과 바다'의 작가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라고 말했다.
그만큼 퇴고를 통해 글을 완성해야 함을 말한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유래

당나라(唐--) 시인(詩人) 가도(賈島)가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문득 좋은 시상(詩想)이 떠올라서 즉시 정리해 보았다. 제목은 「이응(李凝)의 유거(幽居)에 제(題)함」으로 정하고, 다음과 같이 초(草)를 잡았다. 「한거소린병(閑居少隣竝) 이웃이 드물어 한적한 집. 초경입황원(草徑入荒園) 풀이 자란 좁은 길은 거친 뜰로 이어져 있다.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새는 못 속의 나무에 깃들고,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 스님이 달 아래 문을 밀친다. 」 그런데, 결구(結句)를 밀다(推)로 해야 할지, 두드리다(敲)로 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궁리하며 가다가 자신(自身)을 향해 오는 고관(高官)의 행차(行次)와 부딪혔다. 그 고관(高官)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이며 부현지사(副縣知事)인 한유(韓愈)였다. 가도(賈島)는 먼저 길을 피하지 못한 까닭을 말하고 사괴했다. 역시 대문장자인 한유(韓愈)는 뜻밖에 만난 시인(詩人)의 말을 듣고 꾸짖는 것은 잊어버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윽고 말했다. 「내 생각엔 두드리다가 좋을 듯하네.」 이후 이들은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다고 한다. 이 고사(古事)로 인해 퇴(推)와 고(敲) 두 자 모두 문장을 다듬는다는 뜻이 전혀 없는데도 그러한 뜻을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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