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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Nov 14. 2020

 악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수수방관 때문이지!

365매일읽는 긍정의 한줄ㅡ

수수방관
Throughout history, it has been the inaction of those who could have acted, the indifference of those who should have known better,
the silence of the voice of justice when it matter most,
 that has made it possible for evil to triumph.

역사상 악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행동할 수 있었던 이들이 행동하지 않고, 알 만한 사람들이 모른 척 외면하고, 가장 필요한 때 정의의 목소리가 침묵했기 때문이다.
-하일레 셀라시에 Haile Selassie-


수수방관이라, 그러니까 '소매에 손을 넣고 팔짱을 끼고는 곁에서 보고만 있다'는 뜻이다. 마땅히 관여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해야 함은 알고 있으나 혹여 피해를 입을 까봐 모른 척할 수 도 있다.

암튼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다.


캐릭터상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면 나서지 않지만, 나와 관련이 있다면 거의 수수방관하지 않는다.

혹여 내가 욕을 먹거나 다소 피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그리하는 편이다.

그러한 나의 캐릭터는 착해빠진 집사님과의 결혼 후 그 색깔이 점점 더 강해진다.






결혼 전에는 그냥 착한 사람이려니 했는데, 함께 살아보니 착해도 너무 착해서 같이 사는 사람이

불편한 적이 꽤 있다.

집사님은 설렁탕을 좋아한다. 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먹고 싶을 때 한번씩 먹는 정도다.

썩 좋아하지 않으니, 깍두기랑 먹음 좀 더 잘 먹게 된다. 설렁탕이 반 이나 남았는데 깍두기를 다 먹었다.

어릴 때 아빠생각이 난다. 우렁찬 목소리로 깍두기를 더 시키시는 아빠의 모습이...




(가을꽃)



집사님도 당연히 아빠처럼 할 줄 알았다.

그렇게 할 줄 알고 기다린다.

깍두기를 아껴 먹는다. 집사님은 전혀 시킬 생각이 없다.

슬슬 입이 삐죽거려진다.

옆 테이블에서 남자가 깍두기를 척척 시키는데, 그게 다 부럽다. 아빠 생각이 더 난다.

살살 집사님을 쳐다본다. 옆 테이블 남자처럼 깍두기 좀 시켜 보라는 눈빛을 찌리릿 보내면서...

집사님은 내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런데... 내 눈을 피한다. 나는 더 강렬하게 째린다.

집사님이 슬슬 눈치를 본다.

그래도 안 시킨다.






"깍두기 다 먹었는데?"

"그, 그, 그래?"

"보면 몰라? 다 먹었잖아."


집사님은 바쁘게 일하고 있는 직원을 못 부르는 게다.

처음 몇 번은 그러려니 하고 먹었다.

나는 뭐든 삼세판이다.


''저 아저씨처럼 깍두기 달라고 왜 말을 못 하슈? 공짜로 먹는 것도 아닌데...

오늘은 좀 해보셔!"


집사님이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내 설렁탕 그릇을 들여다본다.

그러니 시킬 줄 알았다. 그런데...





"음... 얼마 안 남았네."

"뭐라셔? 이게 얼마 안 남아?

저기요~~~ 여기 깍두기 좀 더 주실 수 있어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결국 내가 시켰다.

집에 오는 길에 잔소리를 열 바가지는 퍼붓는다.

집사님은 늘 그런 일로 내 구박을 받아야 했다.


'안 그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설렁탕을 당신이 좋아하니 어쩌다 먹어주는 건데,

깍두기 한번 더 달라는 말을 못 하냐, 내가 맛없게 먹는 게 낫냐, 식당 직원이 안 귀찮은 게 낫냐...'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 집사님은 변해간다. 내 설렁탕 그릇을 들여다보며,


"깍두기 더 달라고 할까?"

"아니, 다 먹었쑤"

"뭘, 좀 남았는데."

"아냐, 더 시킬 정도는 아냐."


뿌듯하다~



(365매일읽는긍정의한줄,린다피콘:책이있는풍경)



집사님 인생철학은 '손해 보는 듯 살자'이다.

내 인생철학은 '피해도 주지 말고, 손해도 보지 말자.'이다.


착한 사람이랑 살다 보니 수수방관하지 않는 나의 캐릭터는 점점 더 강해진다.

강해진 나머지 '쌈닭'이 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쌈닭'이야기는 이렇다.


역시 결혼 초 어느 날, 대형마트에 갔을 때 일이다. 마트 안의 엘리베이터가 상당히 커서 큰 카트가 네대 정도는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마트에서 카트를 움직일 땐 항상 조심스럽다. 혹여 다른 사람 발꿈치를 건드리게 될 까 봐 조심 또 조심스레 카트를 끈다. 카트를 끄는 일은 늘 집사님이 한다. 그런데 집사님이 카트를 밀다 다른 아주머니 발뒤꿈치를 건드린 모양이다.





아주머니 리엑션이 주연급이다.


"어머머, 아야야, 어떠케 어떠케 너무 아파, 발 어떻게 된거 아냐?"


아주머니 일행은 5명? 정도였다. 친구인지 동네 이웃인지 같이 온 모양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동행한 여자들이 더 난리다.

"어? 다쳤어? 어디 어디? 어쩜좋아! 괜찮아? 어떻게!!!"


누가 보면 차에 친줄 알 정도다. 정말 눈뜨고 못볼 난리다.

착한 집사님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죄, 죄송합니다... "

몇번을 반복한다.

모두 지하 3층에서 탔고 7층을 눌렀으니 잠깐의 시간이 흐른다.

하도 호들갑들이니 함께 동승한 백발의 노부부께서도 불편하신 게다.

"어흠,,, 거 죄송하다는데..."

부모님이 강림하신 줄 너무 감사했고, 어쩌면 그 말씀에 용기를 냈는 지도!





"저기요, 많이 다치셨어요? 죄송하다자나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

"어머머, 댁이 왜 나서요."


복잡한 터라 집사님과 내가 함께 타지 않아서 부부인 줄 모른 게다.

"아니, 여러 번 죄송하다니 하는 소리예요. 살짝 스친 것 같은데요."

"진짜 웃긴다. 오지랖이시네요!"


목적지는 7층인데, 내가 5층을 후다닥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기 직전이다.

"저기, 아줌마! 저랑 같이 좀 내리시죠! 얘기 좀 합시다."

"어머머, 내가 왜 내려요? 웃기는 여자야, 아니 뭐 쌈닭이야?"

''맞아요. 쌈닭! 나 저분 와이프예요. 보자 보자 하니까, 얼른 내려 쌈닭 맛 좀 보세요!"


5층에서 선 엘리베이터문이 열리자, 집사님은 후다닥 내 손을 잡고 내린다.

문이 닫히며 여자들 소리가 들린다.

'야! 빨리 눌러 문 닫히게!'






극성스러운 막가파 아줌마들이 떼로 쇼핑을 왔는데, 얼굴은 하얗고 '나 착하다'라고 쓰여 있는 아저씨가 카트로 한 여자의 발꿈치를 스친다. 그렇게 죄송할 일도 아닌데 연신 죄송하다 하니 재밌어 죽는다. 백발 노부부가 눈살을 찌푸리며 자제를 시키는 데도 막무가내다.


어느 정도여야 수수방관을 하지!

그런 일을 볼 때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레퍼토리다.


"암튼, 인간은 교육을 받아야 해. 교육을 못 받은 인간들은 저렇게 꼭 표를 낸 다니까!"


내가 말하는 교육이란 절대 '가방끈'이 아니다. 학교에서 20년을 넘게 지내다 보니 대부분 만나는 사람들이 거의 교수들이다. 많이 배웠다는 교수들중에도 간혹 '도대체 교육을 받은 사람인가' 할 정도의 사람도 더러 있다.


'인성 교육'말이다.

대학 대학 해서 대학 나오면 뭐하나, 초졸보다도 더 못한 인성을 가졌는데...






"내가 먼저 그분 발을 건드렸으니, 내 잘못이지."

"아우 됐어, 말 시키지 마. 누가 보면 차에 친 줄 알겠어."

"잊어버려, 당신 맘만 안 좋잖아."

"당신이 강호동 만해봐, 그 여자들이 그랬겠나! 아주 사람 겉만 보고 순둥이 같이 생겼으니 그 생쑈지!

앞으로 누구든 당신 건드리기만 해봐 확!"


그 날 이후로 난 집사님이 비슷한 상황이 될라치면, 설레발을 친다.

내가 생각해도 웃긴다 ㅋㅋㅋ

착한 남자랑 살면서 내가 처음 들어본, 쌈닭이라는 말.


가끔은 물의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자신의 방관을 합리화하기보다는,

쌈닭 소리를 들을 지언 정 외면하지 않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그 날의 일을 나는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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