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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Nov 30. 2020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해서는...

ㅡ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ㅡ

일의 가치
No labor, however, humble, is dishonoring.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불명예스러운 일이란 없다.


클리셰(Cliche): 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현대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식상한  장면이나 판에 박힌 대화, 상투적 줄거리, 전형적인 수법이나 표현을 뜻하는 데 사용됨.  

 

오늘의 긍정의 한 줄을 읽으니, 클리셰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식상한 이야기, 상투적 줄거리...






결혼을 앞두고 양가 집안에 인사를 하기로 한 연인. 먼저 예비 신랑집으로 인사를 간다. 예비신부네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예비신랑 부모님은 결혼을 반대하고 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할수록 연인의 사랑은 깊어만 간다.

아들의 청을 내치지 못하고 아들 부모님은 예비 며느리를 보기로 한다. 어렵게 어렵게 예비신랑네 집에 도착한 예비신부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이유는...

예비신랑집에서 일하고 있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다름 아닌 자신의 엄마인 것이다. 엄마 또한 얼굴이 백지장이 된 채로 얼음이 된다. 두 모녀는 애써 외면한다...






남의 집 도우미로 일하는 엄마를 보고 하얗게 질린 딸. 자신의 일이 부끄러워 아니, 혹시라도 딸에게 피해가 갈까 봐 딸을 모른 척하는 엄마... TV 드라마에 식상하게 나오는 클리셰였다. 요즘 말로는 '완전 뻔한' 장면 말이다.

남의 집일을 도와주는 도우미의 일자체가 창피한 일인가? 그 일을 하는 엄마가 창피한 것인가?


요즘은 어떤가?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이미 아니라는 말이다. 아마 그런 장면을 식상한 클리셰의 하나로 쓰는 작가가 있다면 분명 '조기종영'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은...

'일에 귀천이 없다'라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택시에서 한 노인이 내리면서 험한 소리를 하신다. 뭔가 택시기사와 말씨름이 있었던 모양이다.

"에라이, 그러니까 택시운전이나 해 먹지... 에잇!"




(365매일읽는긍정의한줄,린다피콘:책이있는풍경)




노인이 문을 쾅! 닫았길 망정이지, 택시기사님이 혹시라도 들었을까 맘이 영 좋지 않다. 노인 얼굴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하도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셔서...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40이 되면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데, 가슴이 철렁한다. 내 얼굴도 저리 되면 큰일이지...

물론 택시기사와 노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설령 노인을 화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면 그 일 자체를 논해야 할 것이다. 대뜸 '택시 운전이나 해 먹지'는 정말 아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함부로 무시하거나 우습게 보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 택시기사님은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해서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일 수도 있고, 투잡을 하면서 모친을 모시는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들일 수 있다.




(누군가 깔끔히 정돈해놓은 공원)



그림 그리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서 27살에 청소 일을 시작한 '김예지' 작가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면전에서  "내 자식은 이런 거 못 시켜. 자식 이런 거 시키면 나중에도 좋은 일 못 하지. 내 자식은 좋은 것만 시킬 거야", "좋은 회사 다니고 효도해야지"라며 혀를 끌끌 차는 어른들, 뭔가 무시하는 듯한 언행을 하는 또래 청년들의 시선이 제일 불편한 감정이이었다고 한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인데, '젊은 사람이 청소를? 왜?'라고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더 힘들었단다. 그러한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데, 경제적 여유와 시간상의 이유로...'등등의 말을 준비하게 됐다는 예지 작가의 말에 가슴이 먹먹하다.




(저자:김예지:21세기북스)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ㅡ김예지ㅡ






육체적으로 힘든 만큼 대가도 크기에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선택한 '청소'라는 일자체를 함부로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아무리 힘들고 하찮은 일이라도 일자체의 가치가 있다. 그 가치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누군가에게 큰 가치가 내게는 미약하다 하여 무시할 권리 또한 그 누구에게도 없다.


'젊은 사람이?'

'청소를?'

'왜?'

'미혼모야?'


에휴... 얼마나 창피한 질문인가.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편견 덩어리에 누군가 상처 받을 수 있음을 숙고해야 한다.


택시기사가 혹 무례하거나 비인격적인 언행을 했다면 그건 인성 문제이지 '택시운전'이란 일의 문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노인에게 말하고 싶다.

'저기요... 엄청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시는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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