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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Feb 26. 2021

(핑퐁 50화) 햇빛과 나물, 묵나물!

8단계의 정성 묵나물 볶음... 맛의 깊이가 다르다.

"오늘 정월 보름이니 일찍 들어와라"

"약속 있는데? 늦을 것 같아."


한참 뺀질뺀질 나 다닐 때 어느 보름날이다. 일찍 들어와 오곡밥에 나물도 먹고 부럼도 깨야한다는 엄마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늦는다고 까불었다. 오곡밥이 싫다며 흰쌀밥을 내놓으라고 입을 삐죽거리고 나물에는 손도 안 대면 엄마는 이러신다.

"흰 밥 없어! 언니도 동생도 잘만 먹는데 꼭 유난을 떨어요!"

그리고는 진짜 굶기신다. 에휴 무서버!


부럼은 어떤가? 껍질을 까기도 귀찮은데 굳이 부럼을 깨서 어금니로 꽉 깨물어야 한 해 동안 종기나 부스럼을 예방하고 이도 튼튼해진다고 한다. 그런다해도 억지로 하면서 꿍시렁 거린다. 그땐 그랬다.


1년 중 명절만큼 의미를 부여하는 날 정월 보름이다.

정월 보름의 삼종세트는 '오곡밥', '묵나물', '부럼'인데 철없을 땐 삼종세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나 입이 간사한지 아니면 철이 조금씩 들면서 입맛도 철이 든 건지 언젠가부터 오곡밥을 먹기 시작하고 나물 맛도 알게 된다. 여전히 견과류는 잘 챙겨 먹지 않지만 말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침부터 정신없이 바빴던 시절 정월 보름에 엄마의 오곡밥과 나물을 기다린다.

"엄마, 오늘 오곡밥 해놓을 거쥥? 나물두~~~"

그렇게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엄마는 찰진 오곡밥에 갖가지 묵은 나물을 해 놓으셨다.

양심도 없이 어떻게 한 거냐고 묻지도 않고 먹었다. 왜? 그렇게 힘든 줄 알리가 없었으니까...





엄마는...

신장이 약해지셔서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삼 남매가 모두 바쁘니 할 수 없이 요양병원신세를 지게 되었. 그 이후로 엄마의 오곡밥과 묵은 나물은 먹어 볼 수가 없었다.


먹을 복이 많은 건지 그 이후로도 해마다 오곡밥과 나물을 먹었다. 여전히 바쁜 내게 맛이라도 보라며 해마다 오곡밥과 나물을 해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지만 그 정성과 노고를 알리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알았다.

엄마가 해 주신 묵은 나물과 엄마를 대신해준 고마운 분들의 묵은 나물이 얼마나 정성을 들인 것인지를...

내가 해보고야 알았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그동안 얼마나 무심했는지 죄송할 따름이다.




정월보름 삼종세트중 오곡은 쉽게 구할 수 있다. 부럼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묵나물이다.

묵나물(묵은 나물): 뜯어 두었다가 이듬에 봄에 먹는 산나물


묵나물은 조리하는 과정이 무척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묵나물을 먹는 이유는 잘 말려만 두면 철을 가리지 않고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마치 겨울 내내 먹을 김장을 해 놓는 것처럼 채소가 귀한 겨울을 나기 위해 미리 말려두는 것이다.


햇볕에 말리는 동안 비타민 D가 생성되고 수분이 빠지면서 무기질과 식이섬유 등 영양분이 배가된다.

맛 또한 생나물과는 다르게 구수하니 맛의 깊이가 다르다. 햇볕과 나물이 만나니 별천지의 맛이 난다.


'그래 도전!'

야심 차게 마트로 간다. 나물 코너에 가니 친절하게도 불린 나물을 팔고 있다. 조리 과정을 보니 불리는 게 첫 관문이요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인데 천군 마마를 얻은 기분이다. 처음 해보니 자신이 없어 소심하게 한 줌씩만 산다. 그야말로 둘이 딱 한 끼 먹을 것만 해볼 생각이다.

(정월보름에는 9가지 나물을 먹는다는데 9가지는 에휴 ㅠㅠㅠ)


불린 나물을 사지 않았으면 정월 보름 묵나물은 내년이나 먹을 뻔했다.

자그마치 8단계를 거쳐야 묵나물이 완성되더라.


1단계: 최소한 3~4시간은 물에 불려야 한다. (마트에서 불린 나물을 사서 패스! 휴~~~)

2단계: 불린 나물을 잘 씻어서 1시간 정도 삶는다.

3단계: 삶은 물에 나물을 그대로 담가 둔 채로 또 1시간 정도 뜸을 들여야 한다.

4단계: 나물을 볶을 때 쓸 멸치육수를 낸다.

5단계: 뜸을 들인 나물의 물기를 짜내고 먹기 좋은 정도로 잘 썬다.

6단계: 양념에 조물조물 버무려 간이 배도록 기다린다.

7단계: 들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멸치 육수를 부어 더 볶는다.

8단계: 깨소금 솔솔~


꺅~~~ 저걸 하겠다고?

안 하면?

사놓은 나물은 어쩔꼬?

한 숨이 절로 나온다.

엄마~~~~


휘리릭이 그립다ㅠㅠㅠ

하루 종일 해야 할 듯 ㅠㅠㅠ



ㅡ이작가야's 정월 보름 오곡밥, 묵나물 볶음ㅡ

Yummy!

요리준비!

묵나물볶음 재료 (각각 200g-한 줌 반 정도)
불린 고구마 줄기, 불린 취나물, 불린 가지나물, 불린 호박나물
무침 양념
들기름 2큰술, 국간장 2큰술, 멸치액젓 1작은술, 다진 마늘 1큰술, 맛술 1큰술, 다진 파
볶음 재료
들기름 2큰술, 육수 100ml
-----------------
무나물, 도라지나물 볶음
무반개 (200g)
도라지 (200g)
다진 파, 다진 마늘, 국간장 1큰술, 소금 1작은술



Yummy!

요리시작!

불린 나물을 삶고(센불로 삶다가 끓으면 중약불)

 삶은물1시간을 뜸을 들인 후 양념에 재움.

(이하 묵나물의 조리과정은 모두 같음)



양념에 배인 나물을 달군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멸치 육수를 붓고 졸이듯 볶아줌. (불ㅡ중약불)

(바로 먹을 거여서 바짝 졸였지만 두고 먹으려면 촉촉하게 볶아야 한다고 함!)


고구마줄기 볶음!


취나물 볶음!




가지나물 볶음!



호박나물볶음!



생채 할 때보다 좀 더 굵게 무를 썰어 달군 팬에 다진 파를 볶다가 무를 볶아줌.



국간장, 소금, 깨를 넣고 졸이듯 볶음(이때 육수 조금 추가)



무나물 볶음 완성!




도라지나물은 볶을 수 있게 조리된 나물을 마트에서 구입!

달군 팬에 다진 마늘을 볶다가 도라지를 넣고 국간장 1큰술, 소금 작은 1큰술로 간을 함.

깨소금도 솔솔!



마트에서 구입한 오곡에 들기름 또르르~

압력밥솥으로 오곡밥 완성.

할머니가 좋아하실 진밥이 됨 ㅠ



마지막에 모든 나물은 소금으로 부족한 간을 함.




휴~~~

맛은 들기름으로 달달 볶으니 맛이 없을 수가!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묵나물볶음~~~

자그마치 8단계를 거쳐야 완성되는 맛이라니...


마치 세월 따라 깊어가는 우리네 인생같다.

불리고

삶고

뜸 들이고

무치고...

볶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새...

묵나물로 치자면  단계를 향하고 는가!


맛있는 8단계까지 잘 살아보자.

묵나물처럼 구수한 맛이 나게...

깊이 있게...


정월 보름이 지나고 5일 후면 엄마의 생신이다.

엄마가 더욱 그리운 정월 보름이다.

음식은 추억이다...



ps: 코로나로 가족끼리  모임도 힘들지만

마음만은 풍성한 정월보름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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