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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Mar 13. 2018

살라자르에 관한 알쓸신잡

'책보다 더 재미있다' 금태섭의 <금씨책방> 12 - 대심문관의 비망록

재미있는 책을 들면 물론 밤을 새워서라도 서둘러 읽게 되지만, 아주 좋은 책을 발견하면 오히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쉬엄쉬엄 보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포르투갈 소설인 <대심문관의 비망록>(안토니오 로부 안투네스 지음, 배수아 옮김, 봄날의책)이 바로 그런 책인 것인데.

그러다보니 의심할 바 없이 나의 '올해의 소설' 후보에 오를 이 우아하고도 밀도 높은 책을 읽으면서도 책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 상황이나 인물을 틈틈이 찾아보게 되는데, 그러다가 발견한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에 관한 기괴한 사실 한 가지.

1889년에 태어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는 1936년부터 1968년까지 자그마치 32년간 포르투갈의 정권을 잡은 인물이다. 스페인의 프랑코나 우리의 박정희와 비슷한 위상을 가진 사람인데, 그러다보니 한때의 박정희와 비슷하게 살라자르는 포르투갈에서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하면서 동시에 "포르투갈 역사상 최악의 인물"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1968년에 그는 머리를 다쳐서 뇌출혈로 의식을 상실하는 큰 부상을 당한다(공식적으로는 의자에서 떨어졌다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해먹에서 잠을 자다가 굴러떨어졌다고도 하고 목욕탕에 빠졌다는 설도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아무리 막강한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으니 계속 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새로 수상이 뽑히고 그는 모든 권력을 상실하게 되는데, 예상을 깨고 살라자르는 얼마 후 의식을 찾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살라자르가 의식을 되찾자 그의 측근들은 그가 '충격을 받을까봐' 살라자르가 권력을 잃은 사실을 숨기고 마치 계속 수상직에 있는 것처럼 꾸몄다고 한다.


가짜 신문을 만들어서 보게 하고, 역시 가짜 서류를 만들어서 결재를 하게 했다는 것이다.


살라자르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자신이 계속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가짜 명령서에 서명을 하다가 1970년에 세상을 떠난다.


이런 일을 벌인 살라자르의 측근들이 과연 그가 충격을 받을까봐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인지 혹은 30년 넘게 절대자로 군림했던 상사에 대한 두려움에서 그런 것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참 세상에는 기괴한 일이 많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2년 가까이 가짜 서류를 만들어서 결재를 올리던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루라도 빨리 살라자르가 죽어 없어지기만을 기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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