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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태섭 Mar 13. 2018

다카하시 겐이치로

'책보다 더 재미있다' 금태섭의 <금씨책방> 11

독특한 작가들이 있다.

말하자면, 글을 잘 쓰는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나면 '아 나도 이렇게 훌륭한 소설을 써내는 재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글 자체가 매우 특이해서 실력이나 재주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이런 글은 이 작가만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그 중의 하나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로 꽤 널리 알려진 다카하시의 책은 보통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옛날 옛적에, 사람들은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부모가 지어주었다고 한다. 책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정말로 아주 옛날에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이름은, 표트르 베르호벤스키나 올리버 트위스트, 오시누미 쟈크와 같은 유명한 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한 것이었다. ...... 

그 후로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이름을 짓게 되었다. 그때의 일이라면 나도 조금은 기억하고 있다. 모두 자기의 이름을 짓느라 열심이었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은 관청에 가서 자신이 새롭게 생각해 낸 이름과 바꾸었다. 관청 앞에는 언제나 긴 줄이 있었다. 처음에 줄을 섰을 때 애인이었던 사이가 관청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이를 낳으려 구급차에 실려갈 정도로 긴 줄이었다. 관리들은 오래된 이름을 관청 뒤의 샛강에 마구 집어던졌다. 수백만 개가 넘는 오래된 이름들이 샛강 표면을 가득 메우고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사요나라, 갱들이여" 중에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뜻도 안 통할 것 같은 내용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렇지만 한번 책을 잡으면 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아 이건 폭력에 관한 이야기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책 내용 중에 폭력에 관한 부분이 전혀 없는데도 그렇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구금된 이후 10년간 극심한 실어증에 빠졌었고, "나는 이 컵이 좋아"라는 단순한 문장을 매일 쓰면서 언어능력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 전공투 시대를 거치면서 폭력에 관한 책을 쓰게 되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책 속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


난해하다면 난해한 작가이지만, 다카하시는 친절하게도 글쓰기에 관한 책도 하나 썼다.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라는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 두 권 중에 하나인데(나머지 하나는 제임스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 소설을 쓰는 방법을 마치 한편의 소설처럼 재미있게 쓰고 있다.(물론 이런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소설을 쓸 능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오래 전에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를 읽었는데, 찾아보니 책이 없어서 복간된 책을 새로 샀다. 그 김에 다카하시의 다른 작품인 "사요나라, 갱들이여"와 "존 레논 대 화성인"도 사서 읽었는데 역시 훌륭하다.

글 쓰기 책에서도 알 수 있지만, 다른 소설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다카하시가 소설가 이전에 '폭넓게 읽고 깊이 읽어내는' 훌륭한 독서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우 강추하는 작가. 뜻밖에 경마광이어서 산케이 신문에 20년째 경마 예상을 연재하는 등 경마 평론가로도 활동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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