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왜 그렇게 돈만 밝혀?
내가 돈을 버는, 상당히 분명하고 명확한 이유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다.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은 남자와 가장의 입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나는 가족을 보호하고 그들의 안녕을 위하는 모든 일에 내가 버는 돈들이 사용되는 것에 만족을 느끼고 한편으로 자부심도 느낀다.
돈을 버는 두 번째 이유는 인생의 시간을 사기 위함이다. 내겐 인생이 딱 하나 있다. 돈을 벌었다고 해서 두 개의 인생을 사거나 세 개를 가질 수는 없으나, 돈은 내 인생의 주어진 시간 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생각의 비밀-김승호" 중에서
3년 만에 중환자실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기들을 만났다.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은 경사가 있었기에 다 같이 모일 수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났지만 힘든 시기를 함께한 입사 동기여서 그런지 어색하지가 않았다. 한참 동안을 신규 때 추억 이야기를 하면서 놀았다. 그 좋은 분위기에서 P가 갑자기 본인 자랑 타임을 가졌다. 얼마 전에 샀다며 가방 자랑, 유럽 여행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 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유럽 가야 해. 진짜 장난 아니었어."
"어릴 때 이런 가방도 들어보지 나이 들면 이런 거 어울리지도 않아. 그리고 유럽 가잖아? 이런 거 훨씬 싸. 무조건 사 와야 해. 사진 보여 줄까?"
P는 하루라도 어릴 때 해야 한다며 계속 어필했다. 나한테까지도 얼른 해외여행 가서 여자친구 가방 사주라고 했다.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이 다른 거니까. 내가 관심 없어하는 표정이 기분 나빴는지 비난의 화살이 날아왔다.
"오빠는 근데 그렇게 돈이 좋아? 아직 차도 하나 안 샀어? 왜 그렇게 돈만 밝혀. 많이 모아서 뭐 하게."
P는 월급만 있어도 충분히 먹고, 즐길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사냐고 말했다. 추억 이야기 할 때 까지가 좋았다. 가방 자랑, 여행 자랑 할 때까지도 그러려니 들어줄 만했다. 근데 갑자기 내가 돈을 너무 밝힌다며 말했다. 쓸 때 써야지 짠돌이처럼 아끼기만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다.
'세상에 돈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너도 그 돈 덕분에 놀고, 먹고, 사치 부리는 거야'라며 말을 퍼붓고 싶었다. 근데 거기서 내가 백날 떠든다고 해도 알아먹을 거 같지도 않았다. (그럴 애였으면 진작에 자랑조차 안 했겠지) 지금 이야기해 봤자 서로 에너지만 낭비하는 꼴이다. "뭐 돈 많으면 시간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좋잖아"라며 가볍게 넘겼다.
솔직히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돈 쓰는 걸 엄청 좋아했다. "힘들게 일했는데 이 정도는 써줘야지"라는 말을 하며 사치에 대한 자기 합리화를 했다. 비싼 거 먹고, 비싼 명품 사고, 비싼 월세를 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벌고, 내가 쓴다는데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간혹 열심히 돈 아끼고, 모으는 동기들을 보면 참 궁상맞게도 산다고 생각했다. (글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나도 그랬었구나) 왜냐하면 같은 나이대 비교해도 많은 연봉을 받고 있기에 쓰지 못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기 좋고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진 식당 앞 음식 샘플 같았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가짜인. 냄새도 맛도 없는 실리콘 모형.
열심히 돈을 쓴 덕분인지(?) 간호사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신규 생활도 잘 버텨냈고, 근무도 점점 익숙해졌다. 선배들도 이제는 퇴사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나를 인정해 줬다. 후배들도 계속 들어오니 일은 갈수록 편해졌다. 병원에서 간호사를 퇴사를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금처럼만 일하면 월급은 꼬박꼬박 잘 들어온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돈을 열심히 쓰기만 했다.
3년 차가 되고 나는 중환자실에서 응급실로 부서 이동을 했다. 당시에 코로나가 심해져서 중환자실 인력을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응급실의 새로운 선배들은 내가 살짝만 실수해도 "김.태.섭 선생님. 그것도 몰라요? 3년 차 되는 동안 도대체 뭐 배우고 온 거예요?"라며 혼냈고, 후배들은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분명 같은 병원인데 체계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신규 생활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다. '이 힘든걸 다시 시작하라고?' 나는 그때 이 병원에서 간호사들을 굳이 퇴사시키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못 버티고 알아서 나가는 사람들만 해도 넘쳐났기 때문이다. 출, 퇴근할 때마다 퇴사 고민을 수 백번은 했다. 그럼에도 월급 때문에 나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버티면서 고민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직장은 언제든 그만두고 싶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만두고 살아가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은퇴 준비도 힘든 부모님에게 기댈 수는 없었다. 월급 말고 다른 걸로도 돈 벌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했다. 그 이후로 돈을 밝히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내가 어두워서 못 본 돈에 빛을 밝혔다.
먼저 재테크 공부를 시작했다. 주식, 코인을 해봤지만 나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부동산 공부를 하게 됐다. 부동산은 어렵지만 재밌었다. 실제로 눈앞에 보여서 좋았다. '와 내가 이 멋진 곳에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해도 설렜다. 공부를 하다 보니 돈을 모으기 위해 자연스럽게 사치를 안 했다. 가성비 있게 살고, 돈을 아꼈다. 월급의 80%는 무조건 저축했다. 목돈이 모였고 그동안 공부 하고 발로 뛰어다닌 것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사실 어렵게 돈을 모으고, 투자를 하면서 힘이 많이 들었다. 정확한 목표가 없으니 지칠 때도 있었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정말 부자가 되고 싶은 걸까?' 그리고 책을 보면서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 병원에서 일하며 느낀 건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험마다 다르고, 질병마다 다르겠지만 수술하고, 중환자실에 일주일만 입원해도 천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 나온다.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지 않으면 중환자실에서만 1-2달 정도, 많게는 1년도 넘게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 (정산할 때 보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아찔한 금액이 나온다) 응급실도 (상급종합병원 기준) 비교적 저렴하지만 간단한 초기 진료, 피검사, 영상검사를 하면 1시간 만에 20만 원 정도가 나온다. 우리나라가 보험도, 사회보장 제도도 비교적 잘 되어 있다. 하지만 나라에서 모든 비용을 감당해주지는 않는다. 건강보험공단의 제정도 날이 갈수록 약해져서 정부에서는 보험 제도를 지금도 손보고 있다. 세금을 더 내거나, 많이 지원해주지 않는 형태로 *정부, 비급여·실손보험 개혁 논의 시작…"연말까지 구체 방안 마련"
돈이 없으면 내가 아플 때는 둘째 치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도 지켜주지 못한다. 몸이 아파서 응급실에 119 타고 오지만 돈이 없다고 검사와 치료를 안 받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중환자실에는 돈이 없어서 더 이상 치료를 거부한 가족들이 있었다. 내가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면 정말 서럽다. 돈이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하면 훨씬 더 괴롭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둘째, 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싶다. 힘들다고 말하지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20분 만에 준비하고, 정신없이 뛰어나가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하기 싫지만 직장 선배의 업무를 피하지 못하고 "네 괜찮아요"라고 말하고 돕는다. 본인 말이 100% 다 맞다며 우기는 선배에게도 "네 그렇죠"라며 비위를 맞춰 준다. 하루종일 짜증 내고, 소리 지르는 선배 옆에서 귀가 아파도 일이 끝나지 않으면 자리를 떠날 수 없다. 부서장이 "이 보고서 다음 주까지 해오세요"라고 말하면 쉬는 날에도 업무를 해야 한다.
나는 일하기 싫은 날에는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 업무는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에만 하고 싶다. 듣기 싫으면 엉덩이를 떼고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 쉬는 날에는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한 달 중에서 월급날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삶이 싫다. 내가 자고 있더라도 돈이 들어오면 좋겠다. 그래서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해서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싶다.
"오빠 돈이 좋아? 왜 그렇게 돈만 밝혀? 부자 돼서 뭐 하게"라고 말했던 P도 사실 돈이 싫은 게 아니다. 누구나 돈 없이는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려면 꾸준하게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아등바등 살기 싫다는 자기 합리화로 노력을 회피한다. 월급 받고 사는 게 안정적이라며 현실에만 계속 머물고 싶어 한다.
그런데 과연 월급 받는 삶이 안정적인 게 맞을까. 그 안정적이라는 것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물론 추구하는 삶이 다를 수 있지만, 월급뿐인 안정은 언젠가 불안정해지는 날이 온다. 내가 변하지 않더라도 상황이 바뀐다. 사실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좋다. 남은 에너지로 더 노력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없을 때, 부모님이 아프지 않을 때, 내 체력과 열정이 뛰어날 때 새로운 걸 공부하고 도전해야 한다. 꾸준하게 돈에 빛을 밝히며 숨어있던 자신만의 자산을 찾아야 한다. 안정적인 월급이 끊기더라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내 시간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다. 그게 진정으로 안정적인 삶이 완성되는 순간이지 않을까.
자산에서 얻은 자유가 내 인생을 나에게 선물해 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끝까지 보호해 줄 수 있고, 나 스스로 독립된 인격체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돈의 속성' 김승호 회장
-"생각의 비밀-김승호"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