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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섭 Nov 11. 2024

내 생애 가장 '짜릿한' 경험

이거 완전 럭키비키쟈나~!

(올해 초) 우리 병원 응급실에서는 환자 150-200명이 하루에 왔다가 갔다. 안에 있는 침대 자리는(30 bed) 순식간에 가득 찬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응급실 밖에는 여전히 엠뷸런스 여러 대가 빨간색 불빛을 반짝거리며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아프다는 비명 소리, 빨리 해달라고 재촉하는 소리, 그냥 집에 간다고 주사 빼달라는 소리, 병원 서비스가 왜 이러냐며 얼른 병원장 데려오라는 소리, 너 이름 뭐냐고 의료진이면 갑질해도 되냐며 '씨 x'이라고 욕하는 소리가 뒤섞인다.

응급실내 의료진과 관계 인력들

 한 명의 목소리가 커지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진다. 연쇄적으로 30명 환자와, 30명의 보호자. 16명의 의료진(의사, 간호사, 인턴)과, 12명의 관계 인력(응급 구조사, 간호 조무, 이송, 청소, 보안 요원, 원무과)까지 모두 88명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커진다. 마치 소리의 조합이 전혀 어우러지지 않는 합창단과 같다.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손에는 땀이 나고, 모니터를 보는 눈은 깜빡 일수도 없었다. 한쪽 귀로는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다른 쪽 귀로는 환자와 보호자의 말을 듣는다. 약을 타러 가기 위해 빨리 걸었고, 주사를 강제로 빼는 환자를 보고는 맹렬히 뛰어나갔다. 상태가 안 좋은 환자에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으면, 왜 나보다 늦게 왔는데 저 사람 먼저 하냐는 성난 소리에 간신히 붙잡았던 정신은 또다시 흩어졌다. 참다못한 내 정신은 혼미해진다. 누구보다 먼저 쓰러지고 싶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간호하고 있는 걸까. 나 조차도 내 간호에 자신이 없어지는 순간에 친구 C가 등장했다.


 "태섭아 오늘 진짜 짜릿한 날 아니냐? 이게 바로 젊음이지! 우리가 이렇게 화끈한 곳을 언제 또 경험할 수 있겠어. 어수선하고, 시끄럽고, 전쟁터 같은 공간이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가 열심히 질서를 만들고 지키고 있잖아. 생각해 보면 이거 엄청 짜릿한 거야!"


 처음에는 저 친구도 나처럼 정신이 나간 건가, 미친 소리를 다 한다고 생각했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서 오줌이라도 지렸나 '짜릿'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환자가 화를 내도 "저 환자분 좀 짜릿하네" 상태가 안 좋은 환자에게 달려갔다 올 때면 "와 방금 사람 하나 살렸다. 이렇게 짜릿할 수가!" 8시간 동안 물 하나 못 먹고 마칠 때가 되면 "야 이따가 마치고 맥주 한 잔 하면 온몸이 더 짜릿할 것 같지 않냐?"라고 말했다.


 C친구는 항상 부정적인 순간에도 긍정적인 부분을 꼭 발견했다. 이 친구의 '짜릿함'은 진짜였다! 인간 피카츄 그 자체였다!

 

 그 친구를 보고 있으면 나 또한 전기가 통하는 듯 점점 '짜릿'해졌다. 나의 멍청해진 뇌도 전기 충격을 받으면서 정신이 되돌아왔다. 그 ‘짜릿함’은 항상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져다줬다. 인간 피카츄 덕분에 그 힘들었던 응급실 생활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C 친구가 그만둔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부자가 되고 싶다며 사업을 하러 떠났다. 그런 사람은 자주 그리워진다. 말뿐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요즘도 정신없이 바빠질 때면 '아 피카츄가 내 몸에 백만 볼트를 쏴주는 것 같다. 오늘도 참 짜릿하구먼'하는 그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 친구가 보고 싶을 때면 내 팔을 살짝 꼬집어본다. 짜릿한 통증이 퍼지면 인간 피카츄가 옆에 와있는 것만 같다. 통증이란 게 반가울 때가 있을 줄이야.


출처 : 조선일보

 “완전 럭키비키잖아”…SNS 유행하는 ‘원영적 사고’ 뭐길래-조선일보


 얼마 전 '원영적 사고'라고 하는 "이거 완전 럭키비키쟈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가수 장원영의 초긍정적 사고에서 비롯된 인터넷 밈이자 유행어다. 단순 긍정적인 사고를 넘어 '짜릿하다'는 말처럼 원인, 과정, 결과 모두를 즐긴다.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건 무조건 피하려는 '해로운 긍정성 (toxic positivity)'과는 차이가 있다. *지나친 긍정은 해롭다? '해로운 긍정성'이란?


 '원영적 사고'는 부정적 현실을 무작정 회피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명확히 상황을 인지한 후에 부정적인 것들조차 긍정적인 결과에 이르는 과정 혹은 원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전혀 힘들지 않다며 애써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것은 맞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긍정적인 것들이 많이 남아있어' 혹은 '이 힘든 일도 결국 행복한 결과에 이르는 과정일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원인을 인정하고 그 조차 '짜릿하게' 즐기는 형태다.


예시)

< 응급실에서 환자가 왜 본인부터 빨리 안 해주냐고 욕을 한다 >

해로운 긍정성 : 환자가 욕을 했지만 괜찮아. 나는 상처받지 않았고 지금 행복해.

원영적 사고 (완전 릭키비키자냐~!) : 나에게 욕을 해서 기분이 좀 나빴어. 그래도 내가 설득을 잘했는지 지금은 조용히 기다려주시네. 앞으로 이렇게 환자에게 말하면 욕먹을 일이 없겠구나! 이거 완전 럭키비키자냐~!    


< 직장 선배가 다이어트를 한다고 밥을 쫄쫄 굶고 왔다. 매우 예민한지 살짝만 스쳐도 짜증을 부린다 >

해로운 긍정성 : 선배가 짜증을 부렸지만 괜찮아. 내 기분은 그래도 아주 평온해. 조금만 더 버티고 집에 가면 더 행복하게 느껴질 거야.  

원영적 사고 (완전 릭키비키자냐~!) : 나 말고 다른 후배들까지 두려움에 떨고 있어. 저렇게 기분이 태도가 되는 행동을 하면 선배가 되어도 후배들한테 인정을 못 받네. 무서웠지만 덕분에 선배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이거 완전 럭키비키자냐~!


 '원영적 사고'는 어떻게 보면 정신 승리와 유사한 부분도 있다. 그녀의 팬들은 이러한 부분 때문에 조금은 우려스럽다며 걱정을 했다. 장원영은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신승리의 경우 명백히 사실이 아닌 것도 모두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해석해 버리고 끝내는 경향이 있다면, 원영적 사고는 정신승리를 넘어 '진정한 승리'에 이르는 데에 의의가 있다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일상 어디에서나 진정한 승리를 차지하는 원영적 그녀. 내 친구 C처럼 '짜릿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짜릿한 생각들은 행복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고난을 지탱하는 것은 기쁜 일을 발견하는 마음이다. <류시화 시인의 책-"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을 보면 이를 말하는 뇌신경과학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긍정적인 감정은 좌뇌에서 간단히 처리되는 반면에 부정적인 감정은 우뇌에서 훨씬 많은 분석과 사고 과정을 거친다고 뇌신경학자들은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감정보다 불쾌한 감정과 사건을 묘사할 때 더 논리적이고 강한 말들을 사용한다. 그렇게 발달한 우뇌는 부정적인 것을 발견하는 일이 습관이 된다. 그래서 부정적인 것들이 자꾸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뇌가 이렇게 발달한 건 DNA 측면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더 잘 느끼게 해주는 DNA를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고대 우리의 조상은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는 환경에서 '저기에서 사냥하다가 누가 죽었다더라'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면 그다음에는 본인이 죽었다. 따라서 부정적인 사실을 잘 기억했던 DNA만 무리 속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런 DNA가 현재 우리 인간에게까지 전달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더 잘 기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사냥을 하다가 죽을 일이 거의 없다. 장원영처럼, 내 친구 C처럼 부정적인 경험을 '짜릿한' 경험으로 바꾼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 죽지 않는다. (정신적 건강이 중요해진 지금은 오히려 살 확률이 더 높아졌다) 우리들의 DNA가 자꾸 부정적인 것을 떠올리더라도 이제는 선택권이 있다는 말이다. 물론 오랫동안 전달된 습관을 한 순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의식하고 계속 생각해 보면 좋다. 고대 조상의 DNA를 따라 부정적인 것만 계속 떠올릴지, 그 속에서 긍정적인 것들을 발견하고 '짜릿하게' 살아갈지. 언제나 습관을 바꾸는 건 본인에게 달려있다.



<류시화 시인의 책-"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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