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름 선배님 존경합니다
글쓰기란 철저히 혼자가 되는 일이라는 것. 그렇다면 나도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두고 봐야 알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혼자 있는 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무턱대고 책을 쓰기 시작한 나는 작가들을 열심히 흉내 내며 방에 제대로 틀어박혔다. 사람 대신 내 생각과 감정을 붙들고 대화하는 방법을 익혀나갔다. 부모님은 거실에 두고 나는 방에서 생활하며 온종일 읽고 썼다. 읽고 쓰다가 고개를 드니 한 달이 지나 있었고, 또 고개를 드니 세 달이 지나 있었다. 가족을 제외한 사람을 이렇게 오래 만나지 않고 지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나는 괜찮았다. 예상대로, 좋았다. 혼자 있는 것도 좋고, 혼자 있는 시간에 하는 일도 점점 좋아졌다. 글을 쓰는 일은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방에 홀로 앉아 나는 문장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다 고치고 바라보다 고쳤다. 고치면 고칠수록 문장은 나아진다는 걸 배워갔다.
그렇다고 영원히 고치고만 있을 수 없기에 적당한 때 만족해야 한다는 것도 배워갔다. 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거북목을 한 채 문장을 고치 다 보면 글쓰기는 재능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좋았다. 그보다는 누가 누가 오래 참나의 문제였다. 누가 한 번 더 고칠 것이냐, 누가 이 지루한 고행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냐, 누가 혼자 있는 고독을 끝내 견뎌낼 것이냐의 문제.
작가가 되기 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 작가가 되기는 비교적 쉬워도 작가로 남기는 매우 어렵다는 말이었다. 작가가 되기도 이토록 어려워 눈물이 나는 마당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글을 쓰고 고치면서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긴 퇴고의 과정을 거쳐 겨우 건져낸 문장 하나, 문장 둘, 문장 셋. 하루 종일 앉아 이런 문장을 수 개에서, 수십 개, 수백 개 건져내는 작업이 작가에게 의미를 주어야만, 그래서 내일도 오늘처럼 문장을 쓰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야만, 그 사람은 작가로 남는다. 이런 사람만 작가로 남는다.
- 황보름 작가의 "단순 생활자" 중에서
얼마 전 여자친구랑 대학로에 뮤지컬 연극을 보러 갔다. 내가 좋아하는 황보름 작가님의 책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연극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책에서 상상하던 인물들이 현실로 튀어나왔다. 보는 내내 너무 신기하고,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특히 "글을 쓴다는 건" 노래가 나올 때는 가슴이 북받쳐 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냐하면 꾸준하게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황보름 작가가 말하길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은 세명의 독자 (어머니, 언니, 언니 친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소설을 쓰고 누구 한 명이라도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A4용지에 프핀터를 해서 그 세 사람에게 보냈다. 그때만 해도 “이거 소설 같냐”라며 본인조차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최초의 독자였던 세 명이 "이거 너무 재밌다", "너 소설 진짜 잘 읽힌다"라며 용기를 주었고, 덕분에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할 수 있었다. *[브런치북] 휴남동 서점
처음 연재 했을 때는 좋아요, 댓글도 적었다. 그렇지만 큰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단지 한 명이라도 더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꾸준하게 글을 썼다. 두세 명의 독자분들이 결말까지 읽어 주었고, 댓글도 달아 준 게 가장 기뻤다고 한다.
꾸준하게 글을 쓴 결과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은 2021년 '밀리의 서재 X 브런치 전자책 출판 프로젝트' 수상 후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최근 한국 베스트셀러 흥행을 넘어 2024년 일본 서점 대상 1위까지 했다. 나아가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다. 얼마 전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연극도 혜화 대학로에서 공연 중이다.
공연 소식을 듣자마자 <휴남동 서점>의 열렬한 독자로써 기쁘게 연극을 보고 왔다. 그리고 황보름 작가님 브런치와 인스타에 댓글을 달았다. 그 이후 작가님도 연극을 보고 왔다며 글을 올렸다. 자신이 쓴 소설의 캐릭터가 꿈처럼 느껴졌고, '글을 쓴다는 건' 부분에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함께 공감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황보름 작가님의 에세이 "단순 생활자"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위 구절에서도 언급했지만, 특히 "글을 쓰는 삶"에 대한 내용이 좋았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이 책을 통해 응원과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브런치북] 단순 생활자
나는 얼마 전부터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올리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글을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 봐주지 않으면 내 일기만 쓰는 것 같고, 내 바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지도 궁금하다. 이런 생각에 글 하나를 완성하는 것도 참 어렵다. 힘들게 완성한 글도 지웠다가, 다시 쓴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걸 반복한다.*태섭의 브런치스토리
또한 ‘글을 쓴다는 건’ 철저히 혼자가 되는 일이다. 혼자 방에 틀어 박히고, 혼자 카페에 앉아 생각한다. 어디서나 혼자서 고립되어 고개를 숙이고 글을 쓴다. 그래서 더욱 외롭고,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혼자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봐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에선가 함께 글을 적어가는 작가들이 있었다. 내가 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었다.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가족을 통해, 책을 통해,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나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내 글을 읽고 응원해 주는 독자분들에게 너무 감사했다. 댓글로 "너무 술술 잘 읽힌다", "너무 좋은 이야기다"라는 공감을 글을 보면서 큰 힘을 얻었다. 덕분에 오늘도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다.
황보름 작가는 말했다. '글을 쓴다는 건' 누군가 봐주지 않더라도,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더라도 꾸준하게 쓰는 거라고. 꾸준히 쓰다 보면 언젠가는 빛을 보는 날이 올 거라고.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고. 결국 더 힘을 내서 계속 써 내려갈 수 있을 거라고.
내가 쓴 글들이 책으로 나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꾸준하게 쓰다 보면 언젠가는 책으로 나오고,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진열장에도 전시되어 있을 거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먼저 꾸준하게 글을 쓴 선배 작가들이 증명해 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삶에 저를 가로막고 있던 건 두려움이었어요.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곧 용기더라고요-정해윤 작가”
"매일 쓰고 그릴 수 있다면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쓰고 싶은, 작가의 삶을 살아요! - 윤수훈 작가"
"작가가 되고 싶더라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빨리 작가가 되는 것보다는 오래 작가로 남는 게 중요하니까요. 시간을 두고 많이 읽고 써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작가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황보름 작가"
지금 ‘글을 쓰거나 ‘, 앞으로 ’글을 쓸‘ 분들에게도 큰 힘이 되는 말이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꾸준히 쓰다 보면 언젠가 빛을 보는 순간이 생길 테니까. 어느 순간 교보문고 진열장에 자신이 쓴 책이 진열되는 순간이 올 테니까. 나 또한 그날을 위해 오늘도 꾸준하게 글을 쓴다.
“단순 생활자”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