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어쩌면 하주도 그 매미와 다를 게 없었다. 무더운 여름밤, 빛나는 도시에서 하주 역시 자기만의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지금 흘리는 땀은 그저 무더운 날씨 탓이다. 그동안 남들이 쉬는 날 물건 몇 개 보고 몸이 피곤해진 것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마도 최선을 다한다는 기준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게임처럼 레벨이 올라가거나, 운동처럼 인바디 점수가 매겨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주는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싶었다.
저녁이 되고 응급실은 더욱 북적였다. 하주의 몸은 기계적으로 움직였지만, 머리는 온통 오늘 아침에 보고 온 그 아파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환자들은 쉼 없이 밀려들었고, 알람도 꺼진 줄 알았던 스마트워치가 다시 한 번 손목을 진동으로 두드렸다.
[20,000보 달성!]
작은 화면엔 폭죽이 터지듯 축하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주는 왼손으로는 시계를 쳐다보고, 오른손으로는 미세하게 경련이 있는 자신의 종아리를 주물렀다. 잠깐 자리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오늘따라 응급실에는 지친 얼굴이 더 많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주가 그토록 기다리던 교대시간이 되었다. 인계가 끝나자마자 발걸음이 탈의실로 향했다. 상의를 벗으니 머리가 헝클어졌다. 벗어놓은 파란 근무복이 땀에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거칠게 쓸어 넘겼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상혁이 옆에 앉으며 푸념했다.
“아 오늘 진짜 미친 것 같아. 진짜 너무 힘들다.”
태호도 옷을 벗으며 의자에 쓰러지듯이 누웠다.
“그러니까. 어떻게 끝까지 오냐. 아까 나오기 전에 보니까 족히 이백 명은 왔다가 갔던데.”
“완전 맛집이야. 아, 목 탄다 타. 오래간만에 바로 옆 골뱅이집 가서 맥주나 시원하게 콜?”
“좋지. 야, 임하주. 너도 같이 가야지?”
태호가 하주를 바라봤다.
“나도 가고 싶은데... 오늘 봤던 아파트 한 번 더 갔다 와야 해. 밤에도 단지 주변 분위기 괜찮은지 봐야 해서..."
하주도 스스로가 어이없는 듯 앞머리를 한 번 더 쓸어 넘겼다. 땀에 떡진 머리카락 몇 가닥이 손바닥에 뽑혀왔다. 바닥에 털어버리고 아침에 입고 왔던 옷을 주섬주섬 꺼내 집었다.
“야, 그냥 우리끼리 가자. 쟤는 진짜 더 미쳤어. 임하주! 아파트 계약하면 기분 좋게 한 턱 내라.”
잠시 후, 상혁과 태호가 손을 흔들며 먼저 나갔다. 하주도 탈의실에서 나와 복도를 터벅터벅 걸었다. 복도 끝친구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사라지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게 정말 나인가? 뭔가를 간절히 원하기는 하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자신도 잘 몰랐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마치 애쓰지 않으면 삶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듯했다.
하주는 피로에 절은 다리를 이끌고 아파트 단지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근처에 도착하자 주변 빌라촌이 먼저 보였다. 부동산 사장님이 말했던 그곳이었다. 주변 빌라에는 중국인 세입자가 많았다. 치안이 걱정됐다. 시세가 저렴한 이유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자신은 괜찮지만 윤슬과 함께 살게 될 공간이었다. 어쩌면 주변 치안이 하주에게는 가장 중요한 점이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그 불안이 얼마나 근거 없는 고정관념이었는지 깨달았다. 밤이 깊어지고 골목은 어둡고 조용했다. 빽빽한 건물들 사이로 들어갔다. 어디선가 밥 짓는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까지 들려왔다.
"리샤오마! 추라이 츠판!(나와서 밥 먹어)"
“마마, 나 물 좀!”
“숙제는 다 하고 해야지!”
"아아... 이것만 좀 하고요!"
"으아앙... 엄마 그냥 끄면 어떡해요."
가끔씩 뒤섞여 나오는 작은 다툼과 아이의 울음까지. 이 동네에도 누군가의 일상이 고요히 흐르고 있다는 걸 알려줬다. 하주는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미세한 부끄러움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작은 새가 날갯짓을 연습하듯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고는 빌라 골목을 빠져나와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복도식 아파트에 각 층마다 켜진 주황빛 조명들이 건물 외벽을 따라 고르게 번져 있었다. 약간 도색이 벗겨진 부분들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창문 하나하나, 그 불빛마다 다른 삶이 담겨 있는 듯했다. 하주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훨씬 안전해. 괜히 겁먹었던 것 같다.’
아침에 느껴졌던 불안은 밤이 되면서 따뜻함과 안정감으로 바뀌었다. 역시 직접 봐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주는 왔던 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골목 어귀에서 담배를 피우는 젊은 남자가 있었지만, 그 옆을 지날 때 들려오는 웃음 섞인 통화 소리, 멀리서 굴러오는 자전거 소리까지 모든 것이 별일 아닌 평범한 밤의 일부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바람도 불지 않았다. 하주의 이마와 목 뒤에서는 또다시 땀이 흘렀고,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하주가 버스정류장 벽에 몸을 기댔다. 손부채라도 하려다가 그만뒀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문득 자신이 최선을 다했는지 점검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뭘까? 이 모호한 말의 뜻은 뭘까? 여태까지 내가 해왔던 ‘이 정도면 됐다’라는 태도는 과연 최선이었을까? BTS나 손흥민처럼 모든 걸 바쳐 세계를 향해 자신을 알리고, 온몸을 혹사할 정도로 몰아붙이는 것만이 진짜 최선인 걸까?
어디선가 맴맴 소리가 들렸다. 도시의 여름밤, 가로등 아래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이상했다. 매미는 원래 낮에만 우는 게 아니었나. 하지만 도시의 밝은 불빛 속에서 매미는 한낮으로 착각한다고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맴맴거리는 소리는 오직 수컷의 몫이었다. 아파서 우는 것도,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다.
여기 좀 봐줘, 나 여기에 있어. 나랑 함께하자. 나랑 같이 살자.
짝을 찾아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한 애처로운 구애의 소리. 수컷 매미는 수년을 땅속에서 기다려 겨우 한 번의 계절을 얻는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 2주, 길어야 3주. 도시의 매미는 울 수밖에 없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더 치열하고 더 절박하게.
어쩌면 하주도 그 매미와 다를 게 없었다. 무더운 여름밤, 빛나는 도시에서 하주 역시 자기만의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지금 흘리는 땀은 그저 무더운 날씨 탓이다. 그동안 남들이 쉬는 날 물건 몇 개 보고 몸이 피곤해진 것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마도 최선을 다한다는 기준 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게임처럼 레벨이 올라가거나, 운동처럼 인바디 점수가 매겨지는 것도 아니었다. 하주는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고 싶었다.
정말 힘들어서 흘리는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쥐어짜내고, 남은 에너지를 몽땅 써버려 오늘이 끝나면 집에 돌아갈 힘조차 없는 상태가 되어야 진짜 노력을 다한 것으로 정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갈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날은 최선을 다한 게 아니다. 택시를 타지 않고는 집에 갈 방법이 없을 정도여야만 진짜 최선을 다한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하주만의 평가 기준이었다.
하주는 순간 앞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세웠다. 무릎 앞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을 조절했다. 땀이 시원하게 식어갔다. 정신이 들었다. 차창 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빠르게 흩어졌다. 언젠가 이곳에서 윤슬과 함께할 그날을 상상했다. 그가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은 정말, 최선을 다한 것 같다고. 그렇게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바깥의 매미 소리가, 택시의 엔진 소리와 뒤섞여 멀어졌다.
다음날 아침,
하주는 일어나자마자 부동산으로 찾아갔다. 문을 열자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사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이른 시간부터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젯밤까지 제가 고민을 해봤는데요. 112동 2002호, 계약 진행하고 싶습니다."
사장님 목소리에서 기쁨이 묻어났다.
“아유, 잘 결정하셨어요. 저도 그 집이 참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여기에 앉으시죠."
하주는 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올렸다.
"그래서, 원하는 가격이 있으세요? 제가 협상을 하려면 확실하게 이야기해 주시는 게 좋아요."
하주가 양손에 깍지를 끼고 조물거렸다.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사장님, 집주인 분께 이렇게 전해주세요. 호가보다 2천만 원 싸게 해 주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계약금 넣겠다고요.”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사장님의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하... 그건 조금 어려울 것 같긴 한데... 일단 전화해서 최대한 밀어붙여 볼게요."
잠시 후 사장님이 전화를 끊었다. 집주인이 큰 가격 조정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건 조금 어렵다고 하네요... 대신 1천만 원 정도는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긴 한데...”
하주는 손에 든 휴대폰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바닥에서 미세하게 땀이 배어 나왔다. 침을 한 번 삼켰다.
“사장님... 저도 그러고 싶은데요. 인테리어를 화장실 빼고는 다 손봐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1,500만 원 정도 낮춰주시면, 당장 계약금 넣고, 중도금도 원하시는 대로 맞춰 드리겠다고 전해주세요.”
사장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집주인과의 통화를 이어갔다. 하주는 짧은 시간 사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믿고 있는 종교는 없었지만, 이때만큼은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네! 알겠습니다. 그럼 매수자분이랑 이야기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몇 분 뒤, 사장님이 다시 전화를 끊었다. 목소리에 가쁜 숨이 가득 차 있었다.
“말해보니까요, 1,500 까지는 깎아준데요. 대신 중도금을 1억까지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네요. 평균보다 조금 큰 금액인데... 괜찮으시겠어요?”
하주는 망설이지 않고 즉시 말했다.
“네, 가능합니다. 지금 바로 계좌번호 받아주세요. 바로 가계약금 입금할게요.”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계좌번호 받아 볼게요."
이번에 사장님은 밖으로 나가서 전화통화를 했다. 하주는 혼자 남아 깊은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리자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벽에 달려있는 시계를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귀와 뺨이 뜨거워졌고, 등에서는 땀이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사장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 하주 씨. 집주인께서 마지막으로 아드님께 전화 한 통만 해보고 계좌번호를 넘겨주시겠다고 하네요. 아드님 허락을 받아야 한대요. 조금만 기다려야 할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기다릴게요.”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10분, 20분... 한 시간이 지나도록 집주인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었다. 하주는 벽에 달려있는 시계를 계속 확인했다. 간신히 찾아온 안도감이 다시 초조함으로 바뀌었다. 전화를 다시 해보려는 그때 사장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하주 씨, 집주인 아드님이 지금 일하고 있어서 전화를 못 받는데요. 오늘은 연락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내일 오전에 바로 계좌번호 주시겠답니다. 아마 그 정도 조건이면 할 거라고 하네요. 걱정 말고 푹 쉬세요. 내일 연락드릴게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주는 부동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출구를 지났다.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그가 버스정류장 벽에 잠시 기대었다. 그래도 내일이면 계약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던 중 오른쪽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하주는 환자를 처치를 빠르게 마무리했다. 상혁이에게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다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부재중 통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사장님. 계좌번호 받으셨나요?”
그러나 수화기 너머의 침묵이 길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사장님? 왜 그러세요?”
“... 하주 씨, 죄송하게 됐어요. 집주인께서 갑자기... 어제 협상했던 가격으로는 못 팔겠다고 하시네요.”
거울로 보이는 하주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가슴이 털썩 내려앉았다. 믿기지 않았다.
“아니... 사장님, 어제 세 시간 가까이 협상했잖아요. 이미 다 결정된 거 아니었어요?”
“그러니까요... 저도 무척 당황스럽네요. 집주인 아드님이 너무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하셔서...”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그렇게 마음대로 바뀌면... 그럼 제가 어제 그렇게 협상한 시간은 뭐가 되는 건데요? 이미 중도금까지 맞춰 드리겠다고 했잖아요.”
사장님의 목소리도 어색하게 떨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주 씨. 저도 설득해 보려고 계속 노력을 했는데...”
하주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분노와 허탈감이 뒤섞여 말을 삼켰다. 평소 계획과 약속을 가장 중요시 생각했던 그였기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 됐어요, 사장님. 그냥 그 집 안 살게요. 다른 집 알아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하주는 옆에 있던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순간, 화장실로 들어오던 남자가 그를 쳐다봤다. 하주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응급실로 걸었다. 자신이 들인 시간과 노력, 밤늦게까지 확인하러 갔던 수고가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발걸음을 옮기는데도, 등 뒤에 무거운 짐 하나가 더 얹힌 것 같았다.
하주가 응급실로 돌아왔다. 스테이션 옆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초조하고 피곤한 눈빛, 그리고 어깨 위에 무겁게 내려앉은 좌절감. 정말, 다시 처음부터 시작일까? 작은 한숨이 그의 입술을 타고 새어 나왔다.
그는 다시 집을 찾기 시작했다. 쉬는 날, 습한 공기를 가르며 여러 부동산을 다녔다. 오전엔 햇살이 따갑다가도, 오후엔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단지마다, 골목마다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풍경과 냄새. 벽에 묻은 물자국, 골목 입구마다 세워진 중고 자전거, 낮게 울리는 에어컨 실외기의 소음, 그리고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들이 보였다.
집 구경이 이젠 거의 ‘취미’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러 집을 봤다. 초반에는 새집의 벽지 냄새나 남향의 밝은 거실에 설렜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도장 벗겨진 문짝, 곰팡이 얼룩, 좁은 현관, 습한 욕실, 엘리베이터 붙어진 게시물까지 모든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 집만은 하주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밤마다 집에 돌아오면, 노트북 화면을 켜고 전국의 부동산 사이트를 헤매다 문득 ‘112동 2002호’를 다시 검색했다. 사진 속 햇살, 베란다에 드리운 작은 그림자, 그리고 그날 본 멋진 바깥 풍경이 계속 마음을 건드렸다. 일주일 동안 10군데를 더 돌았다. 어느 집도 나쁘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 집만 못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하주는 결국 찬식에게 연락했다. 둘은 찬식의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창밖엔 여름이 지나가는 바람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찬식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휘저으며 말했다.
“그래서, 아직도 집 못 골랐어?”
하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쌤, 3달 동안 50군데의 집을 봤어요. 처음에 쌤하고 같이 갔던 그 집이 제일 낫더라고요. 3시간 동안 협상해서 가계약 직전까지 갔었는데, 집주인 아들이 반대해서 없던 일이 됐어요. 그래서 또 10군데를 봤는데... 그 집만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네요."
하주는 빨대를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 집을 다시 사고 싶어도, 집주인하고 협상할 생각 하면 솔직히 벌써부터 스트레스예요. 괜히 또 마음만 다치고 시간 낭비하는 거 아닌가 싶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찬식은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하주야. 그게 다 네 집 되려고 그런 거야.”
그는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받은 건 이제 최대한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정말 냉정하게 다시 한 번 봐. 그 집이 진짜 좋은지, 아니면 네가 그때 감정적으로 집착한 건지. 다시 가서 천천히, 진짜 내 집 삼을 만한지 구석구석 보고 와. 정말 좋다면 그땐 다시 한 번 시도해도 후회 안 할 거고, 아니면 마음 정리하고 새로운 곳 찾아가면 되는 거야.”
창밖의 햇살이 얼룩진 테이블 위로 번졌다. 찬식의 말에 하주의 마음 한쪽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네. 알겠어요. 이번엔, 진짜로 이성적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해 볼게요.”
“그래, 인생에 집 한 번 사는 게 생각보다 별거 아니면서도 막상 부딪히면 내 맘 같지 않다? 진짜 별의 별일이 다 있어. 이런 게 다 인생 경험이 되는 거야.”
하주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모처럼 마음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초조함이 단지 시간이 부족해서도, 운이 없어서도 아니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간절했던 마음도 살포시 내려뒀다.
그는 찬식과 헤어지고 부동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집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겠다고 말했다. 약속이 빠르게 잡혔다. 당장 부동산으로 갔다. 사장님과 몇 번이나 봤지만, 오늘만큼은 둘 다 입을 굳게 다물고 각오한 표정이었다.
※ 15화부터『프라하의 아침』은 브런치 멤버십을 통해 연재됩니다.
늘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로 보답하겠습니다.
—작가 태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