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사진을 찍어주는 건 왜 어려울까
동훈아 동훈아 동훈아 동후나ㅏㅏㅏㅏㅏㅏㅏ
야 여러 번 말하게 하즈으으마아
한강도 잘 보이게 자 알겠지?
빨리 좀 찍어봐 여러 장 응?
찰칵 찰칵
나는 날이 너무 좋아서 책 하나 들고 노들섬에 갔다. 한강변이 앞에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을 보니 여자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확인하고 있고, 남자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누군가에게 심사받는 모습 같았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재미있게 보고 있는 ‘흑백요리사’가 생각났다. 동훈이는 마치 쓰리스타에게 심사받는 '흑백사진사' 같았다. (심지어 옷도 흑백으로 입었네)
심사 중인 여자 '쓰리스타'의 점점 표정이 안 좋아졌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면서 동훈이에게 말했다.
동후나 햇빛이 너무 약해.
사진이 이븐 하게 찍히지 않았어.
구름 밖으로 해가 나왔을 때 찍어야지!
이건 너무 흔들렸어!
이건 한강이 제대로 안 나왔잖아!
아 몰라 다 별로야!
아 이거 갑자기 자리를 옮길 수도 없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심사받는 걸 계속 보고 있었다. 동훈이한테는 너무 미안하지만 사실 내 속 마음은
' 와, 이거, 이거 굉장히 재밌다 '
심사를 받던 동훈이가 말했다.
" 그럼 다시 찍어줄까? "
쓰리스타가 방금 찍은 사진들을 넘겨가며 본인의 심사 기준을 이야기했다.
" 동후나 그럼 내가 어떤 식으로 찍으면 되는지 말해줄게. "
쓰리스타의 심사 기준은 이러했다.
1. 사진 아래쪽은 허벅지까지만 나오도록
2. 얼굴은 옆모습을 보고 있을 때
3. 의식하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움
4. 이것들이 같이 합쳐졌을 때의 완성도
" 아 동후나 그리고 햇빛 지금 딱 잘 들어오잖아. 아까처럼 구름 뒤로 숨었을 때는 찍지 마. "
사진의 햇빛 정도를 나는 굉장히 중요시 여겨.
" 아 알겠어. 이제 어떻게 하는지 알겠어. 다시 한번 가봐 "
그렇게 동후니의 무한 사진 지옥이 시작됐다. 노들섬 한강변에는 사진 찍히는 소리만 들려왔다.
찰칵 찰칵
동훈이가 3분 정도 계속 찍었을 때 쓰리스타의 중간 평가가 있었다.
" 동후느아 제발 이제 알겠지? 자연스럽게. 허벅지 위로. 옆모습. 한강 잘 보이게. 햇빛 비칠 때에. 내가 타이밍 안 줘도 제발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운 사진이 나에게 킥이야! "
“ 응 그럼. ”
찰칵 찰칵
" 동후나 나 이제부터 움직일 건데 그냥 계속 눌러. 그게 더 자연스러운 거야. "
" 아 알게쏘. "
찰칵 찰칵 찰카카카카카ㅏㅏㅏㅏㅏ아ㅏㅏㅏ아아ㅏㅏㅏ가각ㄱㄱㄱㄱ아아아ㅏㅏㅏㅏ
때 마침 구름 밖으로 햇빛이 계속 나왔다. 정말 뜨거운 오후 3시였다. 사진보다 동훈이가 먼저 익을 것 같았다. 그렇게 5분 정도 추가 사진을 찍고 있던 동훈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어ㅓㅓㅓ 진짜ㅏㅏ루ㅜㅜㅜㅠㅠㅠㅠㅠ(제발 그만해 이제) "
" 그래. 이제 됐어. 어디 한 번 볼까? "
드디어 기다리던 심사 시간이다. 나는 뒤에서 동훈이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쓰리스타는 말도 없이 사진을 살펴보고 있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 아 빨리 말해줘요. 쓰리스타님! 제가 다 긴장돼서 미춰버리겠어요! 과연 동훈이의 사진은 합격인가요? ’
" 동훈아 이 사진의 의도, 의도가 뭐야? "
아 역시 이번에도 틀린 건가.
" 야. 내가 하.. 너 내가 어디를 아래로 맞추라고 했어? 여기를 다 채워야 한다고! 한 번만 다시 찍어봐 "
그렇게 다시 시작된 3차 촬영. 역시 무한 사진 지옥답다.
" 다리 제일 위에 붙여! "
그때 갑자기 동훈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 아니 안 보인다고!! 햇빛 때문에!! "
지옥에 갇혀 있던 동훈이가 드디어 화를 냈다! 솔직히 지금까지 참은 것도 용하다. 뜨거운 햇빛을 버티면서 찍어준 것만 해도 대단했다. 왜냐하면 사진을 찍어주는 방향이 햇빛 정방향이었기 때문이다. 동훈 사진사 진심으로 그대를 리스펙 합니다!
그제야 쓰리스타는 핸드폰을 넘겨받고 사진 몇 장을 봤다. 그리고 “ 됐다 ”라고 말했다.
흑백사진사 동훈 당신은 생존입니다.
생존한 기쁨을 같이 나누지도 않고 쓰리스타가 먼저 앞서서 한강변을 벗어났다. 뒤따라 나가는 동훈이가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고 쓰리스타 뒤통수에 꿀밤 때리는 시늉을 했다. 소심한 복수를 하는 동훈이.
그때 쓰리스타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 왜 빨리 안 와? "
" 응ㅎㅎ 우리 이제 뭐 먹으러 갈까? "
동훈이 겨우 생존했는데 또다시 지옥으로 끌려가서 익을 뻔했다. 휴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 정말 고생 많았어 동훈아. 아니 조금만 더 고생해 ’
흑백요리사를 다 보고 나서 그때의 노들섬이 생각났다. 다시 생각해 봐도 흑백사진사 동훈이는 너무 착하다. 그 더운 햇빛에 10분 정도 익어 가면서도 화 한 번 제대로 내지 않았다. 게다가 동훈이 본인 사진은 한 장도 못 찍었다. 아니 여자친구가 안 찍어줬다. 열심히 요리한 음식을 여자친구만 먹고 본인은 한 입도 안 준거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연애하면서 한 사람만 희생하는 관계는 좋지 않다. 아무래도 이 커플 오랜 시간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자가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남자의 착한 마음씨가 더 아깝다. 제가 연애를 6년 동안 해본 입장에서 감히 심사를 해보자면 '쓰리스타' 당신은 불합격입니다.
*글 속에 나온 동훈이는 지어낸 이름입니다.
*하지만 동훈이가 노들섬 한강변에서 무한 사진 지옥에 빠졌던 건 진짜입니다.
*동훈이에게 무한 합격을 줍시다.
"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어ㅓㅓㅓ 진짜ㅏㅏ루ㅜㅜㅜㅠㅠㅠㅠㅠ(제발 그만해 이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