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프리미어리그나 UEFA 챔피언스리그에 비해 작은 대회로 치부되긴 해도, 역사와 전통에서만큼은 여전히 최고의 대회로 인정받는 대회가 있다. 바로 잉글랜드 FA컵이다. 단순히 오래전부터 시행되던 대회라서 이런 평을 받는 게 아니다.
FA컵은 잉글랜드는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체계적인 축구 대회다. 그 역사가 1872년부터 시작되니, 100년을 하고도 반백 년이 훌쩍 넘은 전통을 지닌 축구 대회가 바로 FA컵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두 차례 세계 대전 등으로 개최되지 못했던 해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햇수(139회)는 조금 줄어들지만, 그래도 지구를 탈탈 털어도 이만큼 역사를 오래 이어온 대회는 없다.
그 긴 시간 동안 대회가 치러질 수 있었던 이유는, 대회 자체에 실린 권위가 매우 컸기 때문일 것이다. 잉글랜드축구협회에 속한 모든 클럽들, 정확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부터 12부 리그에 속한 모든 팀들이 출전하며, 결승전에 진출한 팀은 ‘축구 종가의 축구 성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트로피를 놓고 일전을 벌인다.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기 힘들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창 젊었을 때만 하더라도 직접 경기장에 나와 트로피를 건네며 우승팀을 축하하는 게 전통이었다.
웸블리 시상식 단상에서 여왕이 건네는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리는 건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그 무엇과도 비할 바가 없는 영광이다. 당연히 잉글랜드 내 모든 축구팀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점 역시 굉장한 상징성을 지닌다. 대회 권위가 과거보다 줄어들었다고 해도 슈퍼컵 성격인 커뮤니티 실드에서 프리미어리그 챔피언과 왕중왕전을 벌이는 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첼시가 보관중인 FA컵 우승컵, 조명 때문에 황금빛으로 보이지만 은빛 트로피다. @풋볼 보헤미안
이처럼 우승만 하면 잉글랜드 내 모든 팀들로부터 찬사와 존경을 받게 되는 FA컵인 만큼, 우승을 상징하는 트로피는 보물과도 같다. 그런데 이 트로피는 대회의 역사만큼이나 굉장히 흥미로운 사연이 많다. 지금까지 총 네 차례 트로피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지금의 트로피는 2014년에 새로 디자인된 작품이다. 1911년에 사용됐던 컵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트로피라는데, 디자인이 바뀔 때마다 꽤나 흥미로운 사연이 많다. 이를테면 FA가 트로피를 만드는 장인으로부터 저작권을 사 오지 못해 우승컵을 더 사용할 수 없게 되었거나, 우승컵을 너무 오래 사용해 망가진 경우가 발생하면 트로피를 바꾸었다.
언뜻 이해가 될 수 있는 변경 사유라 할 수 있겠는데, 지금 소개할 사연은 정말 황당할 것이다. 초대 FA컵 진품 트로피는 현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때문에 100년을 훌쩍 뛰어넘은 잉글랜드 축구계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불리기도 한다는 걸 맨체스터 영국 국립 축구 박물관에서 배우게 됐다.
누군가가 트로피를 훔쳐갔다고? @풋볼 보헤미안
1894-1895시즌 FA컵에서 정상에 오른 팀은 당시 잉글랜드 최강팀으로 급부상하던 아스톤 빌라였다. 아스톤 빌라는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과 결승전에서 2-0으로 완승하며 클럽 역사상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당시는 아스톤 빌라가 빅토리아 여왕 시대 최고의 축구 명장으로 꼽히는 조지 램지 감독을 영입하고 클럽의 첫 번째 전성기를 막 열었던 때였다. 즉, 그들 역사에서 굉장히 의미 깊은 우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트로피가 사라졌다.
사연은 이렇다. 런던 케닝턴 오벌에서 웨스트 브로미치를 꺾고 정상에 오른 아스톤 빌라는 본거지인 웨스트 미들랜드 버밍엄의 자랑이 됐다. 아스톤 빌라의 손에 쥔 트로피는 버밍엄으로 돌아와 거리 행진을 하며 사람들과 만났으며, 이때 도시 내 유명 신발가게였던 윌 쉴록콕으로부터 한 가지 요청을 받는다. 사람들이 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아스톤 빌라의 자랑인 진품 FA컵 트로피를 볼 수 있게끔 가게 진열장에다 전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아스톤 빌라 역시 그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사건이 발생한 윌쉴콕 가게 @풋볼 보헤미안
그리고 그게 트로피와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전시된 지 하루 만에 진열장에 있어야 할 트로피가 깨끗하게 사라진 것이다. 단서가 될 만한 흔적도 없었고, 용의자도 가늠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당연하겠지만 그 시절에는 CCTV와 같은 방범 시설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참고로 경찰력을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살인마 잭 더 리퍼를 끝내 잡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트로피가 사라진 것 외에는 아무것도 드러난 게 없으니 범인을 잡을 수가 없었다.
분노한 아서 키니어드 당시 FA 회장이 길길이 화를 내는 건 당연했다. 키니어드 회장은 선수 시절 잉글랜드 클럽 축구사 초창기의 강자였던 원더러스 FC와 올드 에토니언스에서 현역 선수로 활약하며 FA컵에서만 다섯 번이나 우승했던 인물이었다. 아스톤 빌라가 잃어버린 그 트로피에는 현역 시절의 땀이 스며들어 있었기에 당연히 애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키니어드 회장의 모습, 빌라는 벌금을 부과받았다. @풋볼 보헤미안
키니어드 회장 개인적인 감상을 둘째 치더라도 문제였다. 다음 시즌에도 활용해야 할 트로피가 사라졌으니 대회 권위는 추락하고 운영에는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분노한 키니어드 회장은 징계위원회를 통해 아스톤 빌라에 25파운드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물론 아스톤 빌라에 벌금을 가한다고 해서 사라진 트로피가 되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결국 FA는 키니어드 회장 등 FA컵 우승자들의 기억과 증언에 따라 제작된 복제품 트로피로 1910년까지 대회를 치러야 했다. 이듬해인 1911년에 새 디자인을 내놓았는데 이게 바로 현행 FA컵 트로피 디자인의 기초가 됐다.
한편 키니어드 회장은 자신의 재임 시절 FA컵 트로피 분실이라는 초유의 망신을 당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1911년부터 FA컵에서 새로운 트로피를 쓰게 된 이후부터는 복제품 트로피를 꽁꽁 감추어버렸다. 키니어드 회장의 유족들도 지난 2006년까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이 트로피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버텼을 정도라니 그가 느꼈을 수치심이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이 된다.
참고로 이 복제품 트로피는 2006년 영국 경매 시장에 나와 무려 42만 파운드, 그러니까 한화 6억 원이 넘는 고액에 데이비드 골드 당시 버밍엄 시티 회장에게 낙찰되어 세상에 공개됐다. 골드 회장은 영국 정부나 FA에서 트로피를 되찾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으나, 어쨌든 사재를 털어 찾게 된 과거의 FA컵 트로피를 FA에 기증하며 후대에 역사를 전하도록 했다. 그게 바로 맨체스터에 자리한 영국 국립 축구 박물관에 현재 전시되어 있다.
어렵게나마 세상에 공개된 복제품 트로피. 잃어버린 트로피의 모습과 가장 닮은 트로피이며, 실제 시상식에도 쓰였다. @풋볼 보헤미안
아스톤 빌라가 잃어버린 이 트로피는, 사건 발생 후 60년이 지난 1950년대 어느 팔순 노인의 생뚱맞은 증언으로 또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헨리 제임스 버그라는 이 노인은 자신이 범인이었다며 당시 트로피를 녹여 은빛 왕관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현장 재현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문제의 가게 주인이 버그의 증언을 반박하는 등 논란만 가중됐을 뿐이다. 물론 버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왕관이 되어버린 트로피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건 불가능한 일인 건 변함이 없다.
어쨌든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2019-2020시즌 FA컵 챔피언이 결정되지 않은 지금 기준으로 볼 때,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팀은 총 43개 팀이다. 이중 우승컵을 잃어버린 챔피언, 트로피가 없는 우승팀은 FA컵 챔피언 아스톤 빌라 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금의 아스톤 빌라 역시 홈페이지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해 씁쓸하게 언급하고 있다.
트로피를 잃어버린 챔피언은 아스톤 빌라가 유일하다. 그나마 네임 플레이트에는 새겨져 있다. @풋볼 보헤미안
1894-1895시즌 아스톤 빌라 우승 기념 사진. 저 트로피가 사라진 우승컵이다.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