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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elraum Feb 17. 2022

아버지 낡은  비망록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후회 없는 '나'로 사는 것

동창, 직장 동료들을 만나면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노후준비‘로 이어진다. “연금은 얼마나 들어놨냐” “퇴직금은 어떻게 받아야 하냐” “애들 뒷바라지는 언제까지 해야 되나” “퇴직 후에 뭘 하며 살아야 하나”라고 많이 묻는다. 솔직히 나라고 뭐  뾰족한 방법이 있까? 그도 그럴 것이 수학 문제 풀듯이 답이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는 방법은 제 각각이다


중국 송(宋) 나라 때 유학자인 주신중(朱新仲)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5가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는 오계론(五計論)을 주장했다.

인생 오계(人生五計)로 전해져 온다. 생계(生計), 신계(身計), 노계(老計), 가계(家計),  사계(死計)가 그것인데  기서 노계(老計)국가와 자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당당한 노년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님 세대 중에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다. “노후라는 단어가 너무 낯설다. 이게 뭐냐? 언제 이런 단어가 생긴 거냐?”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왔고, 재산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가끔 비어 있는 지갑을 보면 불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신다.


왜 그럴까? 부모님의 젊은 시절 열심히 일을 했던 70,80년대로 돌아가 보자. 이때는 평균 수명이 60세 정도였다. 그러니까 직장을 그만둔 후에 노후기간 불과 10년밖에 안됐다 그리고  투자나 저축을 하든 무슨 장사를 해도 돈을 벌 수 있는 시절이었다. 그 세대가 지금 노년을 맞이하게 된 거다.  명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두 자릿수 금리 금융박물관에 재한다.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이다. 여기에 하나 더 변수가 생겼다. 부양 문화다. 과거에는 부모가 자녀를 부양하면  그 자녀가 장성하여 나이 든 부모를 부양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이 든 부모가 전히 자식을 부양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점점 노후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고향은 부산 영도다. 아버지께서는 영도조선소 노동자로  일 하셨다. 젊은 시절 소위 '기름 밥' 어가며  밤낮으로 용접 일을 하 것이다. 노후대책? 그런 단어가 있는 줄 모르셨. 그때는 그랬다. '기술' 가지고 계셔서  70세까지 일을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평상복은 언제나 작업복이었다. 남들처럼 '메이커(브랜드)'  입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셨다. 어쩌다 자식들이 좋은 옷을 선물로 드리면 이건 얼마짜리인지 물으시며  환불을 원하셨던 경우도 있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자신에 대해 인색하고 소비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좀 더 아껴서 가족을 위해 필요한 곳에 쓰려고 하신 마음이 더  컸기 때문.


어느 날 아버지에게  뇌경색이 찾아왔다. 그리고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이라는 병마가 아버지를 무척 힘들게 했다. 아버지는 투병 끝에 3년 전 가족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병원과 요양병원 계실 때  낡은 다이어리와 노트에 틈틈이 당신의 삶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을 많이 표현 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볼 면목이 없구나 항상 넉넉하게 생활 한번 못하고 먹는 것 마음대로 먹어보지 못하고 구경 한번 제대로 가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냈구나. 우리 가족들 모두에게 미안할 뿐이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한 아버지 글


 마누라 머리는 백발이 되고 얼굴에 주름살이 늘었다. 너무나도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뿐이다. 못난 나 같은 놈을 만나 돈 한번 넉넉히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보고 싶은 곳도 한번 못 가고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버렸다. 너무나도 안타깝고 분하다. 지금도 늦지 않았는데 이놈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오래된 다이어리가 아버지 몸처럼 느껴졌다. 고단한 삶이셨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만은 오래도록 살게. 죽지 말고 살아야 하네. 억울하지도 않은가? 돈이라도 한번 써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일세. 내가 당신의 모든 병 가지고 갈게 당신만은 건강히 잘 있다 자식들에게 호강받고  오시게. 제발 부탁이네”


아버지는 어머니의 소식을 많이 기다리셨다. 어머니를 잘 모시라는 아버지 당부의 글. 가슴이 먹먹했다

아버지는 부양의 무거운 짐 때문에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의 오래된 노트 보고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버지께서 인생의 마지막 회상과 사유를 통해 지난한 삶을 후회하고 계신 것 같았다.


버지의 낡은 노트는 내 삶의 가치관 바뀌게 했다. 서울대 최인철 교수께서 “행복의 기준이 과거에는 돈을 어떻게 버느냐였다면, 지금은 돈을 어떻게 소비하느냐로 바뀌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년의 삶도 마찬가지다. 가족부양 중요하지만 금은 나를 돌보  가치 있는 삶  요하다. 아버지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후회 없는 ''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셨다. 이제는 그래도 된다고.


아버지 얘기는 모든  아버지 이야기일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프시기 전에 좀 더 자신에 대해 인색하지 않으시고, 쓰고 싶으실 때 쓰시 삶을 누리셨으면 후회와 아쉬움으로  떠나시지는  않았을까? 생각했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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