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사람>이라는 책을 읽었다. 머지않아 찾아올 내 모습처럼 솔직하고 리얼한 이야기였다. 벗겨진 내 몸처럼 부끄러웠다. 주인공은 63세 다시로 소스케다(이하, 소스케). 대형은행 임원에서 갑작스럽게 자회사로 좌천된 후 정년을 맞이한 고집스러운 한 남자의 퇴직 후 이야기다. 잘 나가던 과거 영광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 아내와 답답한 대화, “난 저런 사람들과 다르다, 난 죽지 않았다” 라며 겉돌기만 하는 고집스러운 한 남자의 삶은 결국, 스스로 수렁에 빠져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나이 들수록 품격 있는 내려놓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3가지관점에서 살펴봤다.
첫째, '연착륙' 해야 한다. 요즈음 회사마다 시니어급 직장인들이 넘친다. 고령화의 유탄이 직장으로 옮겨진 모양새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 입사 시절에는 매년 300~400 명을 뽑던 시절이었지만(너무 오래된 이야기인가) 최근에는 대규모 공개 채용이 사라 진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젊은 직장인들뿐만 아니라 이들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다윈의 '자연선택' 과정이 진작 시작된 것이다.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은 자연스레 나는 끝난 사람인가? 라고 생각 한다. Darkest hour 같다고 할까? 다키스트아워는 나쁜 일들로 인해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시간과 때를 의미한다. <끝난 사람>소스케는 부활을 꿈꾸며 자회사에서 성과를 내보려 애쓴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성과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통 회사는 갑자기 쓸모 없거나, 끝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조금씩 그런 방향으로 유도할 뿐이다. 연착륙시키는 거다. 이런 과정을 인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위 다시 이륙을 꿈꾸고 과거 영광에 집착하면 우당탕 무지막지하게 '경착륙' 하게 된다. 화려했던 인생일 수록 낙차가 크고 착지가 불안하다. 소프트랜딩 해야 한다. 그래야 충격이 덜 하다.
둘째, '종착지'는 똑같다. 퇴직을 앞둔 50, 60대 직장인들은 여전히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열정이 넘치며 자신감도 넘친다. 젊은 노인이라는 YOLD(YOUNG OLD)신조어는 이들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에누리 없이 '물러나라'는 소리만 한다. 그래서 <끝난 사람> 소스케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가족의 반대에도 과감하게 새로운 직업과 자신을 찾으려고 했다. 그 속내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직장에서 나의 역할이 점점 작아지며 쇠약해짐을 느낄 때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품격 또한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생각했다.
<끝난 사람>저자, 우치다테 마키코는 일본 단카이세대다. 우리로 치면 베이비 부머다. 환갑을 맞이하면서 정년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고 했다. 환갑이 되면서 자주 동창회에 나가면 젊은 시절 뛰어난 수재도, 미인도, 좋은 회사에 근무했든 아니든 정년을 지나고 만나면 대부분 비슷해져 있다고 했다. 퇴직 후에는 모두가 ‘보통사람’이 된다고 말이다. 보통사람이 되면 종대였던 삶이 일렬횡대로 바뀐다고도 했다. "떨어진 벚꽃. 남아있는 벚꽃도 다 지는 벚꽃"이라는 어느 선승의 임종 때 남긴 말처럼 은퇴자의 종착지는 모두 다르면서, 모두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셋째, 쓸모 없음에서 쓸모를 찾자. <끝난 사람>소스케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는 과거 영광에 붙잡혀 ‘지금’을 보지 못했다. 가족을 보지 못했고,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친구도 보지 못했다. 친구들은 모두가 자기의 흥망성쇠를 아무렇지 않게 솔직히 털어 놓고 서로 격려했다. 불사의 신들이 인간에게 준 선물 가운데 우정보다 더 좋고 즐거운것은 없다고 했지만 그는 겉돌고 있었다.
여든 아홉의 어머니는 “소스케, 너 올해 몇이나 됐냐?” 라고 물었다. 그리고 예순여섯 이라는 대답에 “아이고 한창때구나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나이로세” 라고 했다. 여든 아홉의 어머니 는 예순 여섯의 아들이 ‘한창때’ 일 것이다. 그는 끝난 사람이 아니라 미래가 창창한 사람인 것이다.
하로동선(夏爐冬扇) 이라는 말이 있다.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라는 뜻이다. 아무 소용없거나 철에 맞지 않는 쓸모 없는 존재를 말한다. 하지만 여름의 화로는 장마철 젖은 옷을 말린다. 부채는 겨울에 화로 불씨를 살릴 수도 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있다. 평소에 무척 흔하던 것도 막상 필요하여 쓰려고 하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 <동의보감>에 개똥을 약으로 썼다는 얘기가 나온다. 주로 흰 개의 똥을 사용했다. 백구시(白狗屎)라고 불렀고, 종기와 어혈 진 곳에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개똥은 개똥이 아닌 셈이고, 쓸모 없다는 말처럼 쓸데없는 단어는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