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이제는 이렇게 살고 있다(싶다)
직장 생활 30여 년, 나는 늘 증명하며 달려왔다. 더 잘하고, 더 빨리, 더 많이 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번아웃을 겪고, 다시 회복을 위해 몸부림쳤다. 그리고 이제는 서서히 퇴장의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
퇴장은 누구에게나 온다. 하지만 어떻게 퇴장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성취 뒤에 아쉬움과 미련을 남긴 채 무대에서 내려온다. 때로는 소리 소문 없이 밀려나듯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그저 그렇게 사라지고 싶지 않다. 내 퇴장은 나의 의지와 태도로, 우아하게 하고 싶다.
퇴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드는 건 '커리어의 절정에서 내려오기'라는 것이다. 직급도 경험도, 퇴사할 때가 아마 가장 높은 시점일 것이다. 준비하지 않고 내려오면 날개 없이 땅으로 추락하듯 힘겹겠지만, 옆으로 넘어갈 수 있는 다리나 떨어질 곳에 쿠션을 미리 마련해 둔다면 퇴장은 곧 새로운 도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 회사를 떠났을 때, 나를 지탱해 줄 또 다른 무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커피와 책, 그리고 글쓰기. 이 세 가지가 내 인생의 다음 챕터를 열어줄 것이라 믿는다.
퇴장을 준비하며 나는 또 다른 꿈을 품고 있다.
“우아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우아한 할머니는 단순히 멋있게 늙은 여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삶의 태도와 자세다. 구부정하지 않은 자세,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한 옷차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서는 삶.
나이가 들어도 유행을 따라가려 허덕이지 않고, 물질에 매이지도 않는 사람. 화려한 장식 대신 단단한 내면으로 빛나는 사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손님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며 담백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 나는 그런 노년을 꿈꾼다.
희희재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 꿈의 예행연습이다. 잡초를 뽑고, 텃밭을 가꾸고, 화로에 불을 피우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는 ‘나답게 늙어간다’는 확신을 얻는다. 회사라는 이름표가 사라져도 괜찮다는 감각, 누군가의 평가 없이도 충분하다는 자신감.
나는 언젠가 회사를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 퇴장은 쓸쓸한 퇴장이 아니라,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우아한 퇴장이 될 것이다.
그래서 두렵지 않다. 오히려 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열어줄 순간이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