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안다고 착각할 때
오래된 펜잘의 광고 카피가 그때 그 감성으로 새겨진 기다란 나무 의자가 있는 곳.
금세라도 파란 하늘을 맞닿을 것 같은 언덕 길 위에 있었고 시골 감성으로 주차 차단기가 없는 대신 길냥이들이 안내해주었다.
그렇게 고향의 작은 도립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3일 전, 도로교통공단에서 온 한 문자를 보게 되었다. 각설하면 운전면허증을 올해 안으로 갱신해야 되니 병원에서 신체검사받고 가까운 경찰서로 가서 갱신하라는 내용이었다.
주말에 받고 싶지만 도로교통공단과 연결되어 있는 집 근처 병원들을 전화해보니 평일에만 영업을 하고 있어서 반차를 쓰기는 아깝고 회사 점심시간에 금방 갔다 올 수 있는 곳 없을까 해서 찾은 곳이 서두에 말했던 도립병원이다.
겉모습과 다르게 내부는 깔끔했다. 젊은 원무과 직원이 상냥하게 맞이도 해주고, 화이트 벽지와 따듯한 대리석 마감들은 흡사 서울 병원 느낌이 났다.
상냥한 직원의 안내와 함께 신체검사실로 들어갔다. 시력검사밖에 없었지만 작은 도립병원 특성상 근무하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많이 안 계셔서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차분히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내 앞으로 백발의 노부부중에서 할머니가 앞으로 나와 큰소리로 신체검사받으러 왔다고 체크하라는 거 다 했는데 이거 모르겠다고 문의하셨다.
‘작게 하셔도 다 들릴 텐데’라는 생각이 교차하는 중
앞에 계시던 간호사 선생님이 할아버지부터 차근차근 다시 설명드렸다. 할아버지는 소녀처럼 나근나근한 목소리를 가지셨지만 체구는 보통 성인 남성보다 크셨다. 하지만 몸은 마르셨는데 배가 부르셨고, 감기 몸살에 걸린 것처럼 기력이 없으셔서 굉장히 아파보이셨다.
이해하기 힘드신 할아버지를 돕고자 할머니가 나서서 통역가처럼 한번 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할아버지의 언어로 전달하셨다. 어떻게든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할머니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보다 30cm는 큰 할아버지를 붙잡고 이리저리 다니시는 모습들이 굉장히 짠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서였을까? 그렇게 작은 할머니는 언제부터 할아버지 보다 크셨을까?
병원 냄새, 할머니 목소리, 할아버지 모습들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운전면허증에 담겨 앞으로 10년간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나름 인생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