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
*로 인용 각주를, °로 내용 각주를 표기하였습니다.
또, 사람 죽는 것처럼 울었지°
여자가 계속 죽는다. 강남역에서 인하대에서 압구정에서, 그리고 다시 강남역에서, 여자가 계속해서 죽임당한다. 우리는 매번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고 외치지만, 사실 매일 한 명 이상을 잃고 있다°. 이름조차 붙이기 어려울 만큼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여자는 죽는다.
남자는 계속 착취한다. 소라넷에서, 불법촬영에서, 단톡방에서, 웹하드 카르텔에서, n번방에서, 딥페이크에서, 남자는 여자를 착취한다. 새로운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터지면 남자들은 잠시 ‘대피’했다가, 세상이 잠잠해질 때쯤 다시 여자를 착취한다.
폭력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반복되는 동시에 변하고 있다. 이제 남성들은 단순히 폭력을 가하는 것을 넘어서,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전후 맥락이 의도적으로 삭제된 채 발화된다. 남성들은 남성이 이 사회의 진짜 피해자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이자 ‘남성혐오’°라고 말한다. 남성의 본능적 성욕 표출을 국가가 보장해달라고 말한다. 폭력을 권리라는 포장지로 그럴듯하게 감싸 세상에 내놓는 것, 그것이 바로 인셀이 하는 일이다.
지난 몇 년간, 남초 커뮤니티°의 생떼와, 그 생떼를 받아주는 기업과 정부의 행태를 우리는 처참한 심정으로 목도하였다. 여성폭력을 해결하라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끝없이 지워졌지만, 남성의 기분을 챙겨달라는 남초 커뮤니티의 목소리는 일찌감치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남성들이 아무리 멋진 포장지를 씌워도, 기업과 정부가 아무리 그들의 폭력성을 수용해도, 그 논리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혐오와 폭력은 권리도 요구도 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집게손 테러와 딥페이크 집단 성범죄를 중심으로 남초 커뮤니티의 행보를 분석하고, 그 속에 파고든 인셀의 논리를 밝혀내고자 한다. 인셀이 씌운 포장을 하나씩 벗겨냄으로써 의도적으로 삭제된 폭력성과 잔혹성을 다시 그들의 논리에 부여할 것이다. 그리고 인셀의 논리가 남초 커뮤니티 내외에서 그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기반을 밝혀낼 것이다.
° 가수 이랑의 <환란의 세대> 가사 중 한 구절이다.
°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는 2022년 기준 372명으로, 매일 1명꼴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친밀한 관계를 포함한 여성 살해 전반에 대한 한국의 통계는 아직도 부재하다.
° '혐오'는 사회적 차별에 기반한 것으로, 단순히 싫어하는 감정과 다르다. 따라서 '남성혐오'라는 단어는 성립할 수 없지만,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의 억지 주장을 대체할 다른 적절한 어구를 찾지 못해 그대로 사용한다. 작은따옴표를 붙여 이르 표시했다.
° 남성 이용자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인셀 커뮤니티는 알라나라는 캐나다 여성이 1990년대 중반 만든 ‘알라나의 비자발적인 독신 프로젝트(Alana’s Involuntary Celibacy Project)’라는 웹사이트에서 출발하였다. 처음에 이 웹사이트는 연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작은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웹사이트는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들이 상주하는 남초 커뮤니티가 되었다. 인셀이 문제적 남성 집단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2014년 5월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아일라비스타에서 22세의 남성 엘리엇 로저는 자신이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견뎌야만 했”다면서 불만을 표출했고, “너희들을 처벌할 거야. 내게서 어떤 매력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불의고, 범죄야.”*라며 총기 난사 사건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젊은 여성을 포함한 6명이 살해되었고, 14명이 상해를 입었다. 이것이 인셀(Incel)의 시작이다.
인셀(Incel)은 Involuntary Celibate, 한국말로는 ‘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의 약자이다. 한국에서는 ‘도태남’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인셀의 주장은 ‘섹스권’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인셀은 섹스에 대한 광적인 집착, 그리고 그 섹스를 여성이 ‘거부한’ 데 대한 분노에 집중한다. 인셀의 논리에 따르면, 상위 20%의 남성이 우리 사회 섹스의 80%를 차지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 섹스의 불평등이 나타난다. 원인은 외모를 기준으로 섹스 파트너를 정하는 ‘난잡하고 탐욕스러운’ 여성들이다. 그래서 인셀에게 여성은 섹스를 해주지 않음으로써 남성의 섹스권을 박탈하는 사악한 존재이고, 인셀 자신은 ‘섹스권’을 박탈당한 피해자이다. 심지어 이 여성들은 잘생긴 남성과의 섹스를 원 없이 즐기다가 결혼할 때가 되면 사랑하지는 않지만 돈이 많은 남성인 ‘베타 호구(beta cucks)’에게 정착한다. 인셀은 결혼 전까지는 섹스를 하지 못하고, 결혼 후에는 ‘성적으로 가치가 없는’ 여성에게 돈을 써야 하는 억울한 처지가 된다. 이렇듯 인셀은 특권층과 피해자 서사를 뒤집는 전략을 사용한다. 뒤집힌 서사에서 ‘진짜’ 피해자는 남자가 되고, 페미니즘은 진짜 피해자를 공격하는 거대한 음모 세력이 된다.
인셀은 왜 섹스에 집착할까? 인셀이 섹스에 집착하는 것은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섹스 그 자체를 원해서도 아니다. 인셀은 여성과의 섹스를 통해서 남성적 위계에서 지위를 구매하고자 한다. 이때 여성과의 섹스는 지위를 구매하기 위한 현찰쯤으로 여겨진다*. 인셀의 섹스에 대한 집착은 남성 사이의 지위에 대한 집착이자 여성 몸에 대한 지독한 도구화이다.
여성들이 자신이 아니라 잘생긴 남성을 ‘선택’했다고 말할 때, 인셀은 여성이 주체성, 욕망, 자율적인 성적 취향을 가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성의 선택이 자신을 향하지 않을 때 인셀은 분노한다. 이는 남성중심적 위계에서 밀려난 데 대한 분노이자, “타인이 자신을 지속적으로 애정과 존경을 담아 우러러보길 기대하는 남성들이 가진 유해한 특권의식”*의 발현이다. 분노에 찬 인셀은 여성을 비인격화하고 수단화하려 한다. 여성에게 성적 자율성을 누릴 권리가 없어야 인셀의 섹스권이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감히 성적 자율성을 옹호한 여성들은 ‘강간’으로 처벌한다. 그래서 인셀의 논리는 ‘너는 잘생긴 남성과 섹스하겠다는 선택권이 있고, 나는 그런 너를 강간하겠다는 선택권이 있다’는 말로 요약된다. 결국, 인셀의 ‘요구’인 섹스권이란 폭력권이자 강간권인 것이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섹스권에 대한 인셀의 주장이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베타 호구’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기시감을 느끼지는 않았는가? 인셀의 ‘베타 호구’ 논리는 2021년부터 한국에서 화제가 된 ‘설거지론’, ‘퐁퐁남’의 논리와 똑같다. ‘설거지론’이란 ‘난잡하게’ 성생활을 하던 여성이, 결혼할 때는 연애 경험이 매우 적지만 돈은 많은 남성을 택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설거지’란 지저분한 그릇인 ‘문란한 여성’을 ‘착한 남성’이 대신 닦아준다는 의미를 담는다.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 주식 갤러리 등을 통해 시작된 이 ‘이론’은 디시의 여러 갤러리를 넘어 에펨코리아(이하 펨코),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 네이버 카페에서까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인셀은 외국 어딘가의 이름 모를 온라인 커뮤니티가 아니다. 인셀의 논리는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 인셀에 대한 설명은 로라 베이츠의 ⟪인셀 테러⟫를 주로 참고하였다.
* 케이트 만(2021), ⟪남성 특권⟫, 하인혜(역), 파주: 오월의봄, 32.
* 케이트 만(2021), 위의 책, 36.
* 케이트 만(2021), 위의 책, 37.
인터넷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역겨운 인셀의 논리는 정치인을 통해, 미디어를 통해, 학계를 통해 공적인 자리로 흘러나온다. 아무리 극단적인 주장이라도, 심지어는 섹스권 같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일지라도 정치인의 출마 선언문에 담기고 나면 타당하고 정상적이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과거에는 너무 극단적이어서 보도하지 못했던 주장들이 주류 매체에서 흔하게 다루어진다. 저평가되었던 음지의 논리는 권력 있는 남성들에 의해 발화되면서 양지의 주류 담론이 된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인셀의 스피커가 되었다면, 한국에서는 천하람과 이준석이 그 역할을 했다. 지난 4월, AV 배우들이 직접 출연하는 ‘AV페스티벌’이 두 번 연달아 취소된 바 있었다. 천하람(개혁신당 비례대표 의원)은 AV페스티벌 금지 결정에 대해 “우리 사회는 여성들의 본능은 자유롭고 주체적인 여성들의 정당한 권리인 것으로 인정”하면서 “남성들의 본능은 그 자체로 범죄시되고 저질스럽고 역겨운 것으로 치부되는 이상한 기준이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2024.04.19.). 천하람은 “한쪽 성별을 찍어 누르고 억압하면서 반대쪽 성별을 우대하는 것이 양성평등을 이룩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천하람의 주장 속에서, 남성은 자신의 본능을 억압당하는 피해자가 되었고 여성은 남성을 찍어 누르며 우대받는 특권층이 되었다. 특권층과 피해자 서사를 뒤집는 전형적인 인셀 전략이다. 천하람의 주장은 미디어에서 한 달 가까이 다루어졌다. 언론은 천하람의 모든 발언을 받아적어 세상으로 퍼뜨렸다. 원래라면 커뮤니티 안에 남아 있어야 했을 주장이 천하람의 입을 타고 주류로 등장한 것이다. 그 주장이 어떤 혐오를 담고 있는지, 어떻게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지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주장했다는 것만으로 인셀의 ‘남성 피해자론’은 어느 정도의 공식성 혹은 타당성을 보장받았고, 천하람은 이를 통해 다시 남성 지지자들을 획득했다.
이처럼 인셀의 논리는 이제 그들의 커뮤니티를 넘어 세상으로 나왔다. 인셀도, 인셀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온 한국의 남초 커뮤니티도, 더 이상 ‘터무니없는 온라인상의 목소리’가 아니다. 인셀의 여성혐오는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집게손가락을 그렸다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남성혐오’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온라인에서 공격을 받다 결국 사과해야 하는 여성 공인들이 있다. 여성의 얼굴 사진으로 음란물을 만드는 남성 범죄자들이 있고, 합성쯤이야 별일 아니라고 두둔하는 남성 정치인이 있다. 여성혐오로 돈을 버는 남성 유튜버가, 합성해 주는 걸 고맙게 여기라는 남초 커뮤니티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딥페이크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여성들이 있다. 온라인에서 극단화된 여성혐오는 이미 오프라인으로 나와서 여성들을 괴롭히고, 위협하고, 죽이고 있다.
* 로라 베이츠(2023), ⟪인셀 테러⟫, 성원(역), 서울:위즈덤하우스, 310.
한국에서 남초 커뮤니티의 주장이 오프라인의 피해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일련의 집게손 테러이다. 집게손 모양은 2015년 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에서 여성혐오 문화를 비판하고자 만든 상징으로, 일종의 미러링으로 등장하였다. 2년 뒤인 2017년 메갈리아가 사라졌고, 그들이 주로 사용했던 집게손 모양 역시 미러링의 기능을 다했다. 하지만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은 아직도 페미니스트들이 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다는 조롱의 표현으로 집게손을 사용하며, 집게손 모양을 은밀하게 사회 여기저기에 숨겨둠으로써 ‘남성혐오’를 이어간다고 주장한다. 남성들은 집게손 모양이 아주 작게라도 들어가 있다면 그 기업을 ‘남혐’ 기업으로 낙인찍는다. 업무 담당자의 신상을 알아내 퍼뜨리고, ‘좌표를 찍’°어 몰려가기도 한다. 기업들은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남성들의 요구에 재빠르게 반응해서 집게손이 들어간 포스터나 영상을 수정하고, 업무 담당자에게 불이익을 준다.
잊을 만하면 이어져 오는 집게손 테러의 시작은 GS리테일이었다. 2021년 5월, GS25 편의점의 포스터 속에 집게손 모양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남성혐오 논란’이 일었고, GS리테일은 포스터를 제작한 디자이너와 마케팅팀장에 징계조치를 내렸다. 곧이어 카카오뱅크가 집게손이 포함된 이미지를 전부 삭제 처리한 뒤 사과문을 올렸다. SK하이닉스, 국방부, BBQ, 스타벅스RTD, 보건복지부, 교촌치킨이 모두 같은 이유로 홍보물을 삭제하거나 사과문을 게시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창업자가 집게손 모양의 이미지를 사용한 데 대한 책임으로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전쟁기념관은 집게손 모양이 들어간 포토존을 철거하고 기념관 내 전시물과 게시물을 전수조사했다. 남초 커뮤니티발 억지 주장이 심해지자 어떤 기업들은 남성들의 요구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먼저 움직였다. 빙그레는 논란이 되기도 전에 손가락 없이 동그란 손을 가진 캐릭터를 만들었고, 서울우유는 인플루언서들에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손동작 사용 주의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보냈다*.
게임업계의 사상검증이 특히 심각했다. 카카오게임즈(이터널리턴), 시프트업(승리의 여신: 니케), 넥슨(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스마일게이트(로스트아크), 프로젝트문(림버스 컴퍼니) 등 주요 게임업체들이 모두 집게손 테러에 동조했다. 가장 규모가 컸던 사건은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집게손 테러였다. 지난해 11월,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 ‘엔젤릭버스터’가 ‘Shining Heart’ 뮤직비디오에서 집게손 모양을 했다는 억지 주장이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이 남성들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스튜디오 뿌리 소속 여성 직원들의 SNS를 뒤졌고,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린 한 여성 직원을 ‘집게손 페미’의 범인으로 지목했다.
‘범인’이 특정된 직후,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이 여성 직원에게 ‘좌표’를 찍고 신상 공개, 성적 모욕, 살해 협박 등 온라인상의 집단 괴롭힘을 가했다°. 넥슨 측은 해당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집단 괴롭힘에 동참했다. 넥슨 메이플스토리 총괄 디렉터는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고 “몰래 드러내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에게 사과했고, 스튜디오 뿌리 측에 사과문을 올리라며 압박을 가했다*. 사건 이후 여성단체와 시민단체가 피해자에 연대하며 열었던 ‘게임업계 사상 검증 규탄’ 기자회견 전날에는 기자회견 참여자들을 살해하겠다는 협박 글이 남초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기자회견 이후 주최 단체인 여성민우회에 이틀간 92통의 전화를 건 남성이 송치되기도 했다*.
메이플스토리 집게손 테러가 시작된 지난해 11월 25일부터 약 6주간 스튜디오 뿌리의 여성 노동자에게 가해진 허위사실 유포 및 신상 공개, 성적 모욕 등의 사이버불링은 최소 3,5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올해 8월, 피해 여성이 제출한 고소 건에 대해 경찰은 피해 여성이 “페미니스트를 동조하는 듯한 내용의 글을 게시했”으므로 피의자들의 비판은 “논리적 귀결이 인정”되고, “피의자들의 글이 극렬한 페미니스트들의 부적절한 행위(작업물에 몰래 집게손을 넣는 행위)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다소 무례하고 조롱 섞인 표현을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며 대부분의 사이버불링을 피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경찰조차 집게손 테러에 동조한 것이다. 이 사건은 여성들이 국민신문고에 이틀 동안 3,000건이 넘는 민원을 넣음으로써 겨우 재수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최근 딥페이크 집단 성범죄를 다룰 때조차 집게손 테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딥페이크 집단 성범죄가 수면으로 드러난 직후인 8월 27일, 광주 남부경찰서가 배포한 딥페이크 성범죄 예방 홍보 포스터에 집게손 모양이 삽입된 사실이 파악되자마자 해당 포스터가 삭제 및 회수되었다. 광주경찰청은 “인터넷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이미지를 이용해 급히 제작, 배포한 절차상의 문제”라고 해명했다. 이 포스터에는 법무부의 ‘간행물 성폭력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고 피해자에게 손가락질하는 그림이 담겨 있었다. 제기해야 할 진짜 문제는 따로 있는데도, 정부 기관도 남초 커뮤니티도 전부 집게손에만 집착하고 있다.
° 게시글이나 댓글에 다른 사이트의 링크를 걸어두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을 동원해서 집단적인 사이버불링을 할 때 사용되는 방법이다.
* 한겨레(2024), "서울우유 "요거트 열 때 손동작 주의" 또 '여성혐오' 자초", 2024.09.06.
° 심지어 이 여성 노동자는 해당 장면을 작업한 애니메이터도 아니었다.
° 이 때의 '혐오'란 '남성혐오'를 의미한다.
* 경향신문(2023), "'집게손가락' 향한 빗나간 손가락질...넥슨은 못이긴 척 '여혐' 거들었다", 2023.12.01.
* 한국일보(2024), "'집게손 피해자' 연대한 여성단체 살해 협박, 수사 중지됐다", 2024.08.27.
* 프레시안(2024), "[단독] '넥슨 집게손 마녀사냥' 사이버불링 최소 3500건...경찰 "실의없다" 수사 종결", 2024.08.05.
집게손에 대한 남초 커뮤니티의 광적인 집착은 기업과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여성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GS리테일을 시작으로 온갖 기업이 사과문을 올리고 홍보물을 수정하기 시작했던 2021년 5월, 유튜버 재재에게도 ‘남성혐오 논란’이 일었다. 재재가 백상예술대상 레드카펫에서 엄지와 검지로 초콜릿을 집어먹으면서 집게손 모양을 했다는 것이다. 초콜릿을 주먹 쥐고 집어먹을 수는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논란’이 시작되자마자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재재에게 사이버불링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방송인 재재의 공중파 출연을 금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여성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집게손가락이 갖는 의미를 모를 리가 없으며, 따라서 레드카펫에서 집게손가락 모양을 해보인 것은 “그녀가 남성혐오주의자라는 증거”라는 주장이었다. 해당 청원의 참여자는 5일 동안 8만 명을 넘어섰다. 비록 청원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재재와 ‘문명특급’ 제작진은 한동안 어딜 가나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레드카펫에 올라가기 보름 전, 재재가 맥도날드 광고모델로 기용되자 남성들은 “페미와의 전쟁”이라며 맥도날드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불매운동의 시작이었던 보배드림의 한 글을 살펴보면, 남성들은 “대놓고 페미 인증한 사람을 모델로 쓴다”, ”마케팅팀 페미들 소행“이다, ”이런 애가 없어져야 출산율도 올라간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재재에 대한 집게손 테러와 집중적인 사이버불링은 이러한 ‘페미 논란’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넥슨 메이플스토리 사건과 재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집게손 테러는 집게손 모양이 ’남성혐오’라는 논리에 그치지 않고,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문제라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페미 논란’으로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양궁의 안산 선수이다. 2021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직후부터 안산 선수는 남초 커뮤니티의 끝없는 공격에 노출되었다. 숏컷 헤어스타일에 더해 ‘웅앵웅’이나 ‘오조오억’ 같은 단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펨코에서 시작된 ‘페미 논란’은 점점 더 커졌다. “양궁협회 안산 사상 검증 안 하면 꼴페미임”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900개가 넘는 추천을 받았고, 심지어는 안산 선수가 ‘페미’이므로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양궁협회에도, 안산 선수의 개인 SNS에도, 공격성 메일과 댓글이 쏟아졌다. 3년이 지난 올해 파리 올림픽 때에도 안산 선수는 동료인 임시현 선수의 금메달을 축하했다는 이유로 악플 세례를 받았다. 악플의 정도가 너무 심해지자, 선수 본인이 “이러지 말아 달라”는 댓글까지 달았으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안산 선수가 이토록 끈질긴 ‘좌표 찍기’와 악플 세례를 받은 이유는 단 하나이다. 그녀가 ‘페미’이기 때문이다.
집게손 모양은 무언가를 쥐거나 잡을 때, 손 모양을 바꿀 때, 조금이라는 수량을 표현할 때 등등의 이유로 너무나 흔하게 쓰이는 손동작이다. 집게손 테러로 ‘페미 논란’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조차 하루에 한 번은 취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손 모양이다. ‘집게손 모양을 취하면 ‘남성혐오’자’라고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다. 애초에 집게손 모양은 페미니즘의 상징도 ‘남성혐오’의 상징도 아니다. 설령 페미니즘의 상징이라 하더라도,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집중적인 사이버불링을 가해서는 안 된다. 어느 면으로 보든, 집게손 모양은 ‘논란’이 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기업들이 앞다투어 사과하고 홍보물을 수정하면서 이 억지 주장은 타당성을 갖게 되었다. 그 피해는 오롯이 여성들이 겪어야 했다.
지금껏 남초 커뮤니티는 온라인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취급되었고, ‘방구석 찐따들’을 신경 쓰는 게 바보 같은 거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커뮤니티 안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이미 커뮤니티 밖 오프라인 세상으로 나와서 죄 없는 여성들과 페미니스트들을 공격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조심한다고 해서, 참고 피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인셀 테러》의 저자 로라 베이츠는 이렇게 말한다.
여성들에게 그냥 전원을 끄라거나, 어떤 웹사이트 방문을 그만두라고 이야기할 때, 사실상 그 말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트롤링의 부정적인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협은 실재한다. 폭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 한국경제(2021), "재재, 맥도날드 모델되자... "페미 요람 이대 출신, 불매하자"", 2021.05.13.
° 남성들이 흔히 '남성혐오'라고 주장하는 단어로, 실제로는 여초 커뮤니티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일 뿐이다.
* 로라 베이츠(2023), 위의 책, 231-232.
여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집게손 테러의 기저에는 인셀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가장 유사한 지점은 이들이 폭력을 사용하는 방법에 있다. 인셀들은 자신의 ‘섹스권’을 박탈하려는 여성에 대한 처벌 혹은 보복으로 강간과 폭력을 택한다. 집게손 테러를 만들어내는 남성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집게손 테러에는 일련의 사이클이 있다. 남초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만들어진다. ‘주동자’를 찾아서 신상을 캐낸 뒤 ‘좌표를 찍는다.’ 그리고 무차별적인 사이버불링을 가한다. 집단적인 공격을 통해서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고, 다른 여성들에게 ‘너도 이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폭력을 사용해서 본보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억지로 논란을 만들어내는 남성들은 익숙하게 특권층과 피해자 서사를 뒤집는다. 집게손 모양이 작은 성기 크기를 조롱하기 위한 사인이라는 주장에서 남성들은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에 의해 성기 크기를 공개적으로 조롱당한 피해자가 된다. 피해자가 된 남성들은 비뚤어진 사회의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서 사이버불링을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집단적인 폭력에 그럴싸한 이름을 붙이면서 ‘남성혐오’에 맞서기 위한 ‘남성권리운동가’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집게손 테러에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폭력이라는 수단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의도적인 곡해 전략을 사용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우월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곳저곳에 집게손 모양을 집어넣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집게손 모양이 애초에 왜 등장했는지, 지금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일상적으로 얼마나 흔한 손동작인지 등의 다른 맥락들은 의도적으로 삭제된다. 집게손에 대한 논의 전체가 남성들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 재편되는 것이다.
잊을 만하면 다시 등장하는 집게손 테러는 인셀 논리가 오프라인 세상에서 갖는 영향력을 키웠다. 정부와 기업은 남초 커뮤니티의 억지 주장을 인정하며 사과했고, 미디어는 아무런 비판 없이 이를 그대로 받아적었으며, 정치권에서는 “볼 것도 없이 그냥 이것은 메갈 손가락(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라며 공적인 힘을 실어주었다. 인셀의 논리로 무장한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은 점차 승리의 경험을 축적해 갔다. 남초 커뮤니티에만 머물던 인셀의 논리가 오프라인 세상으로 점점 더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인셀의 요구가 ‘폭력을 가할 권리’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잊힌 채 하나의 그럴싸한 논리가 되었다. 반면 페미니즘은 점점 ‘페미나치’로, 극단적인 ‘남성혐오자’로 왜곡되고 있다.
* 프레시안(2024), "이준석 "나는 떳떳, '혐오' 문제 소지 발언한 적 없다"...진짜로?", 2024.02.19.
인셀의 논리가 점점 더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서, 모든 남초 커뮤니티에서 인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남초 커뮤니티와 미국의 인셀 커뮤니티는 그 출발점이 다른데도, 같은 논리와 전략을 공유한다. 아래에서는 집게손 테러를 통해 한국에서 영향을 키운 인셀 논리가 딥페이크 성범죄에서는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파헤쳐보고자 한다.
Trigger Warning. 아래에는 실제로 가해자들이 사용한 문구가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트리거를 유발할 수 있으니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텔레그램방에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안내 문구가 뜬다.
“군수품으로 만들고 싶은 여군의 사진을 상납”해라 (여군 대상 텔레그램방)*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들을 걸레통 낯짝으로 만드는 곳” (교사 대상 텔레그램방)*
“지금 바로 좋아하는 여자의 사진을 보내 시작해봅시다!” (유료 합성물 제작 채널)*
이 중에서 여군 대상 텔레그램방의 안내 문구를 상세히 살펴보자. ‘여군능욕방’ 채팅방 운영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더 이상 여군들을 용서할 수 없어요. 모두 벗겨서 망가뜨릴 거에요. 그녀들이 우월감을 갖는 이유는 군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군복을 모두 벗기면 우월감이 아닌, 굴욕감과 능욕감만 남을 겁니다. 여러분이 같이 근무했던 중대장, 소대장, 부소대장의 알몸이 궁금하지 않나요?”*
‘여군능욕방’의 사례에서, 가해자들은 자신보다 상관인 여성을 음란물에 합성한다. 자신에게 명령하던 여성을 딥페이크 합성물에서는 “벗겨서 망가뜨리”면서, ‘여성에게 명령받는다’는 패배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때 피해자들은 (남성)군인들을 위한 “군수품”으로 칭해지고, 딥페이크 합성은 피해자에게 “굴욕감과 능욕감”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가해자는 여성을 ‘능욕’함으로써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여성의 신체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사실에 통제감과 우월감을 느낀다. 가해자들의 역겨운 통제감과 우월감은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을 대할 때에도 나타난다. “좋아하는 여자의 사진을 보내 시작하”라는 텔레그램방 안내 문구가 이를 보여준다. 좋아하는 여성을 소중하게 대하기는커녕 ‘능욕’하고 폭력을 가하는 행동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여기에는 ‘가질 수 없다면 망가뜨리겠다’는 인셀의 논리가 작동한다.
인셀은 여성을 인간 이하의 것, 자신의 인생과 몸에 관해 결정할 능력이 없는 존재로 만들고자 한다. 여성을 성적 자율성을 누릴 권리가 없는 텅 빈 성적 도구로 취급하고, 이는 성폭력에 대한 정당화로 귀결된다*. 성폭력에 대한 판타지가, 강간 합법화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인 성폭행 계획이 커뮤니티 내에서 오간다. 우위를 점하려는 수단으로써 섹스와 성폭행에 대한 집착이 합성물이라는 형태로 분출되며 딥페이크 집단 성범죄가 발생한다. ‘능욕’에는 자신과는 섹스하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과는 섹스하는 여성, 자신과의 섹스를 거부해서 자신의 ‘권리’를 박탈한 여성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이들은 성적으로 여성을 모욕함으로써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 ‘가질 수 없는 여성’을 망가뜨림으로써, 현실 관계에서의 패배감을 회복하려는 것이 이들의 심리이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 타인이 자신을 우러러보길 바라는 남성 특권의식의 발현이다. 여성이 두려워할수록 가해자들의 우월감은 고취된다.
‘능욕’은 다른 여성들, 특히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보복과 응징의 차원에서도 사용된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가 공론화되기 시작하고 며칠 뒤, 한 텔레그램방에는 “뉴스에 나오고 기사화돼도 쫄지 말고 지능(지인능욕)해라. 모든 것을 능욕해라. 기사 낸 기자도 능욕해라.”라는 채팅이 떴다*. 딥페이크 성범죄를 다룬 기자들을 대상으로 텔레그램방이 개설되었다. ‘기자방’에서는 “기자들도 당해봐야 헛소리 작작 쓰지”, “OO기자님부터 지능해줘야 되나”*라며 협박과 비웃음, 외모 평가가 오갔다. 가해자들은 ‘능욕’이 피해자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해자들이 여성을 지배하고 억누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이용된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단지 ‘컴퓨터 속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성범죄의 가해자들이 단지 장소만 온라인으로 옮겨서 합성물을 통해 강간을 행한 것이다. 가해자들이 여성폭력을 자신의 ‘권리’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남성 권력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섹스권’에 대한 기묘한 집착은 계속된다.
* 한국경제(2024), ""여군 벗겨서 망가뜨릴 것"...이번엔 '현역 군인들' 대화방 '발칵'", 2024.08.26.
* 세계일보(2024), "[단독] 아내∙누나까지 도촬∙조롱...현실이 된 포르노", 2024.08.27.
* 한겨레(2024), "[단독] OOO 능욕방 딥페이크, 겹지인 노렸다...지역별∙대학별∙미성년까지", 2024.09.02.
* 한국경제(2024), 위의 글, 2024.09.02.
* 로라 베이츠(2023), 위의 책, 50.
* 세계일보(2024), 위의 글, 2024.08.27.
* 세계일보(2024), ""딥페이크 기사 쓴 OOO 당해봐라"...'기자 합성방'까지 등장", 2024.08.30.
딥페이크 성범죄가 드러난 뒤 남초 커뮤니티의 반응에서도 인셀의 논리를 찾아볼 수 있다. 남초 커뮤니티의 반응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자.
a) 페미들, 한녀들로는 합성물을 만들지도 않는다.
“이렇게 생긴 것들로는 수요가 없어서 안 만든다 (디시 토이 갤러리)”거나, “애초에 한녀 몸매 생각하면 안 꼴림... 길거리에 나뒹구는 흔녀°들인데 어짜피 맛없지 않냐? (펨코)”라는 글을 찾아볼 수 있었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분노하는 여성들에 대해 “강간당하고 싶은데 저렇게 풀어서 화났나? (펨코)”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에게 딥페이크 성범죄란 피해 여성이 예쁘다는 인증이자, 여성이 예뻐야만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혜택이다. ‘강간해 주는 것을 고마워해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은 가해자의 시선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를 바라본다. 자신이 성범죄를 저지른다고 먼저 가정한 뒤, 그렇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를 것인지 고민한다.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에게는 인셀이 그토록 얘기하던 ‘여성을 강간하겠다는 선택권’이 전제되어 있다.
° '흔한 여자'의 줄임말.
b)진짜 억울한 건 남자들이다.
남초 커뮤니티의 남성들은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들을 되려 ‘남성혐오’적 사회의 희생양이라고 보았다. 가해자를 피해자로,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인셀의 주된 전략이 사용된 것이다. 펨코의 한 게시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병X같은 페미민국°이네. 알페스, 여시 N번방은 아직까지 입건 0건 ‘무(無)’에 관련법도 없는데 마찬가지로 관련법도 없는 딥페이크는 벌써 입건, 게다가 바로 구속수사를 한다고? 성기의 차이에 따라 법 적용이 왜 이리 다르지?” 펨코의 다른 글에서도 “여자들이 즐기는 건 ㅇㅋ고 남자들이 즐기면 범죄자”라는 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글 작성자들의 요지는 한결같다. 여성이 성욕의 주체일 때는 당연하게 여기고 넘어가면서, 남성이 성욕의 주체일 때는 범죄시되고 ‘억압’받는다는 것이다.
남성이 자신의 성적 ‘본능’을 억압당한다는 주장은, 이 글의 초반부에서 다루었던 AV페스티벌 금지 결정에 대한 천하람의 발언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성의 성적 권리만을 보장하는 사회에서 남성들의 성욕은 그 자체로 범죄 취급을 받는다. 같은 성범죄가 발생하더라도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으면서,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에는 엄격하게 처벌한다. 대한민국이 페미니즘에 지배당한 여성우월주의 국가가 되면서, 남성들은 과하게 처벌받고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억울하다!’
° 페미니즘과 대한민국을 합친 단어.
c) 가해자 수가 과장되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드러나자마자 디시, 펨코, 일베, 에브리타임, 블라인드 등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남성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한 말이 있다. “가해자 수는 22만 명이 아니라 726명이다.” 제일 화제가 되었던 불법합성물 제작봇 채널의 참여 인원이 22만여 명이었기 때문에, 처음 딥페이크 성범죄의 가해자 수가 22만 명이라고 간주했었다. 추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해당 채널에는 ai봇 계정과 중복계정 등이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실제 참여 인원은 22만 명보다는 더 적을 것이고, 한국인 가해자 수는 그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따라서 ‘가해자 수가 22만 명이 아니’라는 주장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22만 명’이 아니라 ‘726명’이다.
726명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준석은 8월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텔레그램 이용자 가운데 한국인 비율이 0.00333333%°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가해자 22만 명 가운데 한국인은 220,000*0.00333333=726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왔다. 《인셀 테러》의 저자 로라 베이츠에 따르면, “대규모의 대표적 통계를 사용해서 여성들이 ‘요청하고’ 있을 뿐 실상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다가 가해자를 사회적 편향과 억압의 진짜 피해자로 그리며 역전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인셀 이데올로기다.”*
하지만, 이준석도 이 논리를 만들어낸 당사자는 아니다. 모든 남초 커뮤니티가 신념처럼 받아들이는 ‘726명의 논리’는 학계도, 정치인도 아닌 펨코의 한 게시글에서 시작되었다. 8월 26일 00시 41분, 펨코의 유머/움짤/이슈 게시판에는 ‘텔레그램 한국 이용자 수 비율로 추정해 본 딥페이크봇 한국인 수’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텔레그램 전체 이용자 수가 9억 명이고 한국인 이용자 수가 300만 명이라는 점에 근거하여 불법합성물 제작봇 채널 참여자 중 한국인 비율을 0.33%로 계산하면서, 매일경제와 한겨레에서 나온 기사를 이 주장의 근거자료로 사용한다. 그리고 완전히 같은 기사가 이준석 프레젠테이션의 출처로 등장한다. 심지어 각각의 기사에서 발췌한 문장도 완전히 일치한다. 해당 게시글의 작성자는 이준석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27일 오후, “‘초딩 수준이네, 못 배운 티내네’라며 비난받았지만, 오늘 하버드 나온 사람(이준석)이 나랑 똑같이 계산했다”는 글을 새로 게시하였다. 이준석이 펨코에 응답한 것이다.
주목받지 못한 채 넘어가야 했을 펨코의 한 게시글은 이준석의 입을 통해 공식화되었고, ‘726명의 논리’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규모를 축소하고 싶은 남성들에게 그 출처와 상관없이 하나의 교리가 되었다. “고작 700명따리를 22만명으로 올려치는 놈들은 좌우 할거없이 걍 페미가 맞음 (디시 초등교육 갤러리)”이라거나, “몇 건 되지도 않는 거로 아득바득 일 크게 만드는 게 너무 속보인다 (디시 주식 갤러리)”며, 페미니스트들이 일부러 가해자 수를 과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이러한 곡해 전략은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일부러 허술하게 지어내서 특권층 페미니스트들이 별것도 아닌 일에 히스테리를 부리며 징징댄다는 인상을 준다.”*
반면 이준석은 과장된 가해자 수를 지적하고 바로잡으면서 남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텔레그램 팩트체크는 이준석이랑 개신당(개혁신당)밖에 없네. 과장된 공포를 조성하는 광기 속에서 평범한 사람 목소리 대변해주네”, “한남들 힘없이 개쳐맞는 거 거의 홀로 망가져준다”는 글이 펨코에 잇달아 게시되었다.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가 드러나자마자 문제 해결에 힘쓰기는커녕 사건을 축소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했던 이준석은, 펨코에서는 유일하게 남성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정의로운 정치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준석의 입을 빌린 인셀의 논리는 더 이상 사이버공간의 하위문화로 머물지 않고 커뮤니티 밖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 0.33%를 잘못 따온 듯하다.
* 로라 베이츠(2023), 위의 책, 355.
* 로라 베이츠(2023), 위의 책, 244-245.
펨코에 근거를 둔 가짜 통계를 이용해, 이준석은 딥페이크 집단 성범죄 문제에 ‘과대평가된 위협’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같은 개혁신당의 허은아 대표는 8월 27일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삼든 여성이 남성을 대상으로 삼든 본질은 ‘범죄’에 있지 특정 성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면서 “급발진 젠더팔이”를 멈추라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허은아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는 인셀 중에서도 자칭 ‘남성권리운동가’들이 커뮤니티 밖의 사람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 주로 사용하는 전략이다.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소수의 여성 집단을 앞으로 내세우면서 ‘여성도 남성권리운동가의 입장에 동의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극단적이고 난폭한 여성혐오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관점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는 이미지를 만든다.
이준석과 허은아가 그럴싸하게 포장한 인셀의 논리는 스피커를 가진 남성들에 의해 더 멀리 퍼져나갔다. 펨코에 ‘726명 논리’가 처음 등장한 8월 26일, 구독자 118만 명의 사이버렉카 유튜버 ‘뻑가’도 같은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에서 뻑가는 여성들이 얼굴 사진을 내리면서 “호들갑 떨”고 있다며 불안해하는 여성들을 조롱했고, ‘726명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면서 사건을 축소했다. “(여성들이) 이미 군사작전마냥 시스템이 잡혀 있어서, 어떻게 선동해야 하는지, 숫자를 어떻게 과장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서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가 여성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남초 커뮤니티의 내의 반응을 그대로 요약한 수준이다. 해당 영상은 이후 유튜브 코리아에 의해 수익 창출이 정지되었다. 뻑가는 펨코에서조차 과한 주장을 한다고 여겨졌다는 점에서, 뻑가가 이준석처럼 남초 커뮤니티가 신봉하는 사람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118만 명의 구독자를 지닌 유튜버가 하는 방송은 남초 커뮤니티 안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인셀의 논리를 그 밖으로 꺼내기에 충분했다.
정치인들이 잇달아 남초 커뮤니티의 대변인이 되어주고, 유튜버가 이를 세상에 퍼뜨리는 스피커가 되어주면서 ‘남성 피해자론’과 ‘가해자 과장론’은 커뮤니티 밖에서까지 그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커뮤니티 활동을 직접 하는 남성들뿐만 아니라 커뮤니티를 하지 않는 남성들에게까지 남초 커뮤니티의 논리가 퍼져나갔다. 커뮤니티를 하지 않아서 모든 논의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남초 커뮤니티의 논리는 “비주류적이거나 극단적인 발상이 아니라, 널리 알려진 타당한 관점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집게손 테러로 커뮤니티 밖으로 나온 인셀의 논리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에서 그 영향력을 보여준 것이다.
* 한겨례(2024), "딥페이크 성범죄 공포 확산이 '급발진 젠더팔이'라는 개혁신당", 2024.08.28.
* 한겨레(2024), "딥페이크 성범죄가 "여자들 호들갑"이라던 '뻑가', 수익 막혔다", 2024.09.02.
* 로라 베이츠(2023), 위의 책, 397.
인셀의 영향력을 키운 것은 이준석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준석이 펨코의 대변인을 자처한 사이, 각종 기업과 정치인, 언론, 정부는 침묵과 방관으로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이 활개 칠 공간을 열어주었다.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이 터져 나온 직후, 트위터(X)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 불법촬영, 친족 성폭력 등 각종 성범죄의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다. 특히 딥페이크 성범죄의 경우, 피해 학교, 가해자들의 텔레그램 ID, 텔레그램방 캡처 사진 등 가해 내용도 게시되었다. 많은 개인 사용자가 피해 사례와 가해 내용을 함께 아카이빙하기 시작했으나, 해당 계정들은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줄줄이 정지당했다.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해당 계정을 계속해서 신고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길티아카이브’는 여러 차례 정지를 당해서 새로운 계정을 몇 번이나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트위터가 사용자들의 신고 대응에 항상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트위터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듯, 트위터 속 수많은 포르노 계정은 아무리 신고해도 좀처럼 정지되지 않는다.
트위터는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아카이빙 계정을 정지하는 게 아니라, 단시간에 하나의 계정으로 신고가 몰린다면 이것이 온라인 괴롭힘이 아닌지 검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이버불링을 막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하나의 계정으로 몰려가는 안티 페미니즘의 공격 방식이 이미 오래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트위터뿐만 아니라 다른 SNS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여성들에 대한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의 사이버불링은 계속되고 있으나, SNS 기업들은 이를 막기 위한 내부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결국 SNS 기업들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온라인 폭력을 방관하고 묵인하면서 피해 사실을 알리려는 여성들의 목소리만을 축소했다. 그럼으로써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의 성공 경험을 만들어주었다.
정치인들은 또 어떨까? 2020년 3월, 디지털 성범죄 문제 해결을 위해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온갖 망언이 쏟아졌다. “일기장에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자기만족을 위해서 즐긴 영상 (정점식 국민의힘 국회의원)”, “자기 컴퓨터에서 작업하는 것을 처벌하겠다는 건 너무 과하다 (김오수 당시 법무부 차관)”, “자기는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다 (김인겸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정치인들은 공통적으로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을 배포하지 않았으면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비인격화한다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조차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언론이 남초 커뮤니티의 주장을 얼마나 비판 없이 받아적는지는 앞서 집게손 테러를 분석하면서 이미 확인하였다. 집게손 테러를 다루는 언론들은 집게손 모양은 ‘남성혐오’이고,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 집게손 테러가 등장한 배경이나 맥락은 전부 삭제한 채 누가 집게손 모양을 취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젠더 갈등’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있는지만 다루었다. 언론이 ‘젠더 갈등’이라는 단어를, ‘남성혐오’라는 단어를, 집게손 ‘논란’이라는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택할 때,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의 주장은 마치 하나의 새로운 개념처럼 커뮤니티 밖에서 일상어로 자리 잡는다. 언론이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의 언어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현 한국 정부의 여성혐오적 행태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캐나다 정부는 여성혐오 살인을 ‘테러’로 규정했고, 2020년 2월 한 인셀이 여성을 살해한 사건에 관해 “피고의 살인은 인셀 이데올로기의 해악을 반영한다”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어 영국에서도 극단적인 여성혐오를 테러의 한 종류로 규정하고 온라인 혐오와 선동에 대해 국가 단위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여성혐오 지우기에 앞장서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인셀 폭력에 대한 규정은커녕 여성살해 전반에 대한 통계조차 부재한 상황이다.
* 오마이뉴스(2024), ""예술작품"? 딥페이크 망원 의원 5인방, 지금은...", 2024.09.03.
° 현 정부의 퇴행적 정책은 따로 하나의 글로 다루어야 할 정도로 그 정도와 규모가 심각하여 이 글에서는 따로 다루지 않는다. 석순 62권의 <특집: 지금 우리 한국은>에 정리되어 있으니 읽어보기를 권한다.
* 경향신문(2023), "여성혐오 살인 '테러'로 규정한 캐나다, 인셀 남성에 '무기징역' 선고", 2023.11.30.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들이 인셀이라는 것이 아니다. 디시나 펨코, 일베가 인셀 커뮤니티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인셀 커뮤니티와 한국의 남초 커뮤니티는 극단적인 여성혐오를 보인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그 형성 과정도 역사도 인셀 커뮤니티와는 다르다. 다만, 디시, 펨코, 일베를 비롯한 모든 남초 커뮤니티에서 나타나는 남성들의 논리와 전략이 인셀 커뮤니티의 그것과 무서우리만큼 같다. 남초 커뮤니티 곳곳에 인셀의 사고방식이 이미 진리처럼 퍼져 있다. 남초 커뮤니티 그 자체가 인셀들이 모이는 커뮤니티가 된 것은 아니지만, 인셀의 논리가 남초 커뮤니티 내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수많은 방관과 동조, 묵인을 통해 이제 그 논리는 커뮤니티 밖까지 흘러나왔다.
인셀은 어느 날 갑자기 땅에서 솟아나지 않았다. 여성혐오적 사회구조를 먹으며 조금씩 커졌다.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의 온라인 폭력을 묵인한 수많은 행위자들이 있었다. 기업, 언론, 정치인, 정부는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의 폭력을 방관하거나 두둔하면서 그 폭력에 동참하였다. 인셀의 논리를 반복적으로 발화하고 드러내면서 점점 더 그럴싸하고 타당한 것, 보편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했고, 결과적으로는 인셀의 영향력을 키웠다. 그렇게 커진 영향력 위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수많은 거짓 논리가 등장하였다. 거짓 논리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비롯한 일련의 디지털 성범죄의 예방 및 처벌, 근본적인 해결을 막고 논의를 흐렸다. 그 덕분에 가해자들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딥페이크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인셀의 논리 아래, 사회의 방관과 용인 속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의 주장은 ‘논란’도 ‘권리’도 아니다. 아무리 그럴싸한 논리를 만들어내도, 아무리 좋은 이름으로 포장해도, 아무리 여성혐오적 사회구조가 그들의 말에 힘을 실어줘도, 그 알맹이는 변하지 않는다.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이 하고 있는 것은 그저 여성에 대한 폭력일 뿐이다. 우리는 남초 커뮤니티 남성들이 의도적으로 지우고 있는 폭력성과 잔혹성을 다시 그들의 논리에 붙여줘야 한다. ‘권리’라는 단어를 그들에게서 되찾아야 한다. 폭력은 권리가 될 수 없다. 이제는 그들의 승리를 끊어낼 때다.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수많은 움직임이 있었다. 보신각에서의 집회가, 여성들의 청원이, 국회, 법원, 여성가족부 등 정부 기관 앞에서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강남역에서의 오픈마이크가,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의 개정이, 혜화역에서의 시위가 있었다°. 이 글의 마지막에 덧붙여 주목하고 싶은 것은 9월 21일 있었던 혜화역 시위이다.
2024년 9월 21일 혜화역에서는 “만든 놈, 판 놈, 본 놈 모두 처벌하라”는 이름의 딥페이크 성착취 엄벌 촉구 시위가 열렸다. ‘여성혐오폭력 규탄 공동행동’이 주최한 이 시위에는 6천여 명의 여성이 참석하여 길거리에 검은 물결을 만들어냈다. 여성혐오폭력 규탄 공동행동은 “수십만 명의 범죄자의 처벌을 요구하고, 강간문화에 침묵하고 동조하며 범죄를 덮은 정부에 책임을 묻고자”* 시위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길거리에 모인 여성들은 처벌에 미온적인 국회를 향해, 법원을 향해, 경찰을 향해 분노를 표했다. 시위가 끝난 뒤, 해당 시위 참여자들은 ‘#혜화역_시위’라는 해시태그를 걸고 트위터에서 서로 후기를 나누기도 했다. 사람들은 시위 현장에서 서로와의 강한 결속을 느꼈고,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나누었다. 이날의 시위는 참여자들을 넘어, 딥페이크 성범죄에 분노하는 모든 여성에게 힘을 전했다.
하지만 시위 전날 트위터에 올라온 글 하나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글의 작성자는 “여성들끼리 연대감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그곳(시위 현장)은 친구 사귀는 곳이 아니”라면서 “누군가와 친목을 다지다가 정신 차리고 보면 정치권 시위에 참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 게시글을 시작으로, ‘시위에서 다른 사람, 특히 운동권과 엮이지 말라’는 내용의 게시글이 오갔다. 게시글들은 대체로 운동권이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다른 의제에 이용하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내용으로, 정치와 운동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거부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은 이미 배신당한 역사가 길다. 소위 ‘진보적인’ 인물들이 여성 의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인권 단체 내의 성범죄 묵인 문제도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지만, 여성들은 지금껏 뭉쳐도 죽고 흩어져도 죽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뭉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죽을 때의 실망감과 절망감은 흩어진 채로 혼자 죽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언제나 뭉쳐서 출발하였다. 1960년대 전후 미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지만 여성은 남성과 같은 일을 해도 낮은 임금을 받았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피로에 시달렸다. 민권운동이나 반전운동에 참여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남성중심적 운동의 흐름 속에 여대생들의 자리는 없었다*. 가정에서도 운동에서도 자리를 찾지 못한 여성들은 여성들만의 ‘의식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에서 여성들은 집안일에 대해, 강간과 폭력에 대해 각자의 경험을 나누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문제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고, ‘자매애는 강하다’는 구호 위에서 실천을 시작했다. 이것이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시작이었다.
문제를 느낀 여성들은 모이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직을 이루고, 그렇게 뭉치기 시작한다. 지금의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혜화역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희망과 결속을 느낀 것은 여성들이 행동하는 서로의 존재를,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발견한 안도감과 희망은, 여성들에게는 언제나 함께할 사람들이 필요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혼자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흩어진 채 분노하는 모두에게는 함께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함께할 사람들이 없는 개개인은 그때그때의 사안에만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직후의 트위터 해시태그 운동도, 수많은 청원들도, 어쩌면 이번 혜화역 시위도 마찬가지이다. 특정한 사안이 있을 때가 아니면 행동하기 어렵고, 그래서 지속성을 지니지 못한다. 뭉치지 못한 개개인은 행동하는 그 순간에는 함께하지만, 시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결국 혼자 남게 된다. 혼자 남은 이의 분노는 무력감으로, 익숙함으로 번지다가 끝내 희미해지기 쉽다. 하지만 마음을 깎아가며 소중하게 꺼내어 낸 분노를 그저 희미해지게 둘 수는 없다. 분노는 무력감과 익숙함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장기전이다. 오래 버티려면 우리는 뭉쳐야 한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실망스러웠다고 해서 운동의 본질을 잃지는 말자. 결국 운동의 본질은 ‘모이고 함께함’이다. 흩어져 있는 채로 뭉치기를 두려워하기만 한다면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뭉쳤을 때 살아날 방법은 뭉쳐봐야만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뭉치면 산다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뭉치면 살도록 만들어야 한다. 뭉쳐도 죽고 흩어져도 죽는다면, 뭉쳤을 때 살아날 방법을 모색하는 것까지가 우리의 역할이다.
우리는 뭉칠수록 단단해질 것이다.
그럴 때야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 더 많은 내용은 <특집: 딥페이크 성범죄를 직시하다>의 여는 글 <더 이상의 폭력은 없다> 참고.
* 여성신문(2024), "'딥페이크 성착취' 맞선 6천명의 여성 뒤에는 '여성혐오폭력 규탄 공동행동'이 있었다", 2024.09.26.
* 한우리(2016), ⟪페미니즘 선언⟫, 서울: 현실문화연구, 15-17.
참고문헌
<단행본>
로라 베이츠(2023). 《인셀 테러》. 성원(역). 서울: 위즈덤하우스.
케이트 만(2021). 《남성 특권》. 하인혜(역). 파주: 오월의봄.
한우리(2016). 《페미니즘 선언》. 서울: 현실문화연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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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2023). “’집게 손가락’ 향한 빗나간 손가락질…넥슨은 못이긴 척 ‘여혐’ 거들었다”. 2023.12.01.
세계일보(2024). “[단독] 아내·누나까지 도촬·조롱…현실이 된 포르노”. 2024.08.27.
세계일보(2024). ““딥페이크 기사 쓴 ○○○ 당해봐라”… ‘기자 합성방’까지 등장”. 2024.08.30.
여성신문(2024). “’딥페이크 성착취’ 맞선 6천명의 여성 뒤에는 ‘여성혐오폭력 규탄 공동행동’이 있었다”. 2024.09.26.
오마이뉴스(2024). “”예술작품”? 딥페이크 망원 의원 5인방, 지금은…”. 2024.09.03.
프레시안(2024). “[단독] ‘넥슨 집게손 마녀사냥’ 사이버불링 최소 3500건… 경찰 “실익없다” 수사 종결”. 2024.08.05.
프레시안(2024). “이준석 “나는 떳떳, ‘혐오’ 문제 소지 발언한 적 없다”…진짜로?”. 2024.02.19.
한겨레(2024). “[단독] ○○○ 능욕방’ 딥페이크, 겹지인 노렸다…지역별·대학별·미성년까지”. 2024.09.02.
한겨레(2024). “딥페이크 성범죄 공포 확산이 ‘급발진 젠더팔이’라는 개혁신당”. 2024.08.28.
한겨레(2024). “딥페이크 성범죄가 “여자들 호들갑”이라던 ‘뻑가’, 수익 막혔다”. 2024.09.02.
한겨레(2024). “서울우유 “요거트 열 때 손동작 주의” 또 ‘여성혐오’ 자초”. 2024.09.06.
한국일보(2024). “’집게손 피해자’ 연대한 여성단체 살해 협박, 수사 중지됐다”. 2024.08.27.
한국경제(2021). “재재, 맥도날드 모델되자… “페미 요람 이대 출신, 불매하자””. 2021.05.13.
한국경제(2024). “"여군 벗겨서 망가뜨릴 것"…이번엔 ‘현역 군인들’ 대화방 ‘발칵’”.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