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폭력이 돈이 되다

짐승녀

by 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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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크 발렌시아는 현시대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고어 자본주의' 개념을 제시한다. 고어gore는 유혈과 신체 훼손 등 노골적인 폭력 이미지를 재현하는 영화적 장르를 일컫는다. 고어 자본주의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점점 더 노골적인 폭력과 범죄가 돈이 되는 고어한 자본의 시대를 의미한다. 고어 자본주의 개념이 중요한 지점은 제3세계 자본주의를 설명할 담론의 새로운 시작점을 제공했다는 데 있다. 서구 백인 국가 중심의 고도화된 소비 자본주의를 따라잡기 위해서 발렌시아의 고향인 멕시코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의 남성들이 택한 방식은 바로 폭력이다. 그는 이들을 '엔드리아고 주체'라고 부른다. 엔드리아고 주체는 소비를 통해서 비로소 존재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금의 소비사회에서 낙오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남성들은 안정적인 소득과 노동 조건을 보장받기가 어렵고 가부장으로서 지위가 점점 더 위태로워지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상실하는 데 공포를 느끼고, 이를 타개할 수단으로 폭력에 뛰어든다*.


손희정은 발렌시아의 고어 자본주의 논의를 빌려 한국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디지털 고어 자본주의'를 제안한다*. 멕시코와 대한민국의 상황은 다르면서 유사하다. 엔드리아고 주체의 주변화된 남성성은 한국의 식민지 남성성으로 구체화되고, 멕시코에 마약 거래와 총기 난사 등의 범죄가 문제라면 한국은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디지털 성범죄가 연속되어 온 점에 집중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두 국가 모두 이러한 고어 남성성이 자본의 축적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고, 그것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정경유착에 기반한 강간문화적 구조와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대한 복종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 사야크 발렌시아(2021), ⟪고어 자본주의⟫, 최이슬기(역), 서울: 워크룸 프레스, 98.

* 손희정(2022), <기이한 열정: 디지털 시대의 고어 남성성>, ⟪횡단인문학⟫, 제12호, 63.


주변화된 남성성과 한국의 식민지 남성성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에 따라 지배적 남성성 아래에 위치하는 남성성을 주변화된 남성성이라고 부른다. 주변화된 남성성은 남성 내부의 계급에서는 상대적 약자를 자처하면서, 동시에 여성에게는 더욱 폭력적이고 '남성적'으로 접근한다. 지배적 남성성의 권력이 사법, 지식, 자본 등에 해당한다면, 주변화된 남성성은 직접적인 폭력이나 협박 등의 경로를 취한다*. 주변화된 남성성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은 자신을 주변적으로 만드는 진짜 원인인 지배 계급과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가부장체제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오히려 "헤게모니적, 자본주의적, 이성애 가부장제적 남성성"*에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정당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분노의 화살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겨누며 열등감을 보상해줄 우월 의식을 느낀다*.


한국의 주변화된 남성성은 여기에 식민지 남성성이라는 독특한 특성이 더해진다. 해방 이후 당면한 국가 재건이라는 과제 앞에서 한국 페미니즘은 정치적 위치를 점하지 못했다. 동시에 한국 남성성은 과거 침략과 피식민의 콤플렉스로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인식의 식민지 남성성을 체화했다. 즉, 식민지 남성성은 스스로를 식민지였던 자신의 국가와 동일시하고,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국내 여성과의 관계가 아니라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구성하는데, 이때 자신을 권력 구조에서 약자인 '여성'으로 정체화한다*. 그러면서 한국 남성은 자국의 여성을 강대국에게 바쳐 보일 수단으로 인식하며 성 상납 문화 및 산업을 적극적으로 키워왔다*. 그들이 지켜야 할 것은 여성이 아니라 국가=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은 엄청난 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뤄오며 제1세계적 감각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굳건했던 식민지 남성성은 고도 소비사회에 이르러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위태로워지자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 착취를 생산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 발렌시아는 고어 자본주의를 "소비, 자아 확인, 역량 강화의 욕망을 통해 재식민화된 극단적인 포스트 식민주의의 대륙 간 투쟁"*이라고 설명한다.


* 정희진(2017),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권김현영 엮음, 서울: 교양인, 50.

* 사야크 발렌시아(2021), 위의 책, 182.

* 정희진(2017), 위의 책, 53.

* 정희진(2017), 위의 책, 58.

* 정희진(2017), 위의 책, 60.

* 사야크 발렌시아(2021), 위의 책, 57.


디지털 시대와 탈실재화의 신화

딥페이크 성범죄를 발전된 기술의 문제로 한정하는 시각은 잘못되었다. 온라인 성범죄, 디지털 성범죄는 수십 년간 이어져 왔고, 원인은 강간문화라는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와 미디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기술은 실재하는 폭력을 감추기 쉽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언택트'라는 비접촉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들어섰고, 우리는 원격과 비대면 등 탈실재화된 감각에 익숙해졌다. 이제 실재보다 이미지가 만연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디지털 세상의 탈실재화라는 신화는 사실 완전 허구다. 그래프턴 태너는 모든 것을 데이터로 저장할 수 있다는 현대인들의 무책임한 믿음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데이터 센터와 그 취약성을 말 그대로 '구름(클라우드)' 속에 감춘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현실과 이어져 있다. 폭력도 마찬가지다. 손희정은 고어 자본주의의 핵심이 "모든 것이 이미지가 된 것처럼 상상되는 시대에도 폭력은 정확하게 신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디지털이 허구라는 착각은 남성들이 뿌리 깊은 강간문화 속에서 여성들의 신체와 섹슈얼리티를 착취하고 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현실을 전혀 바꾸지 못한다. 미디어가 등장한 이후로 객관적 공간의 의미는 사라졌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 공간을 규정하는 능력이 있어, 가령 공적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사적 공간이 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미디어는 수용자가 현실의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에 영향을 주는 차원성을 지닌다. 그러나 디지털 성폭력은 미디어라는 이름의 어딘지 모를 가상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미디어media는 매개medium한다. 우리는 단 한 번도 현실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 Grafton Tanner(2023), Foreverism, Cambridge: Polity Press, 57.

* 손희정(2022), 위의 논문, 63.

* 신순철(2018), <몸의 확장, 스며드는 기술: 맥루한으로 본 크로넨버그의 몸의 공포>, ⟪한국소통학보⟫, 제17권 제2호, 168.


고어-자본

한국에서 고어 남성성이 유지되는 이유는 성 착취가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식민지 남성성이 여성을 강대국에 '조공'했던 역사에서 조금도 멀어지지 않았다. 상식적인 경제 활동으로는 고도화된 자본주의를 따라잡기 어려워지자 남성이 여성에 폭력을 가하며 직접적인 이득을 얻는, 바야흐로 고어 자본주의 시대이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유통 구조는 마치 다단계와 같다. 성착취물 제작자가 플랫폼 자료방 운영자에게 성착취물을 판매하면 유료 회원방과 무료 공유방 등 각각의 대화방에서 단계적으로 유포되고 거래된다. 이때 거래는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를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플랫폼의 대화방과 결제창에는 상업 광고가 노출되어 있다. 즉, 이용자가 많을수록 플랫폼 기업에게 더 많은 광고 수익이 돌아간다*. 올해 4월 텔레그램은 자체 암호화폐 '톤코인'을 활용해 구독자 1000명 이상 채널(방) 개설자에게 광고수익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수익은 방 개설자와 텔레그램이 50%씩 나눠 갖는다. 이번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 수사에 대해 경찰은 국외 사이트라 수사에 어려움이 있고, 가상화폐 거래는 추적과 몰수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정작 국내 기반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면 정부는 이를 해결할 법 제도적 논의를 이어가야 했다. 강간문화로 끈끈하게 유착된 국가와 기업은 고어 남성성이 성범죄를 저지르고 돈을 벌 수 있도록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 동아일보(2024), "中3이 '딥페이크 성착취물' 177건 만들어 돈벌이", 2024.08.30.

* 동아일보(2024), "텔레그램, 어쩌다 딥페이크 소굴됐나..." 1000명 모이면 돈 줬다"", 2024.08.29.

* 경향신문(2024), "텔레그램도 '딥페이크' 수사 협조하는데... 국내 메신저 성착취는 '방치'", 2024.10.04.




지난 석순 62호에서 나는 바디 호러라는 하위 고어 장르가 재현하는 신체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성의 몸을 괴물로 표현하는 남성 감독의 한계에 대해서 여성 감독의 작품을 통한 장르의 돌파구를 제시하였다*. 고어는 어떻게 장르가 되었는가. 고어가 전시하는 신체 훼손의 그로테스크함은 주체를 해체하고 타자성을 침투시킨다는 점에서 공포심과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고어는 본질적으로 포르노적 환상이다. 과도한 폭력의 재현과 선정성은 디지털 역치를 치솟게 하고, 그렇게 생성된 이미지는 현실의 폭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 특집글을 기획하면서 나는 내가 썼던 글을 계속 떠올렸다. 그리고 발렌시아의 질문을 마주한다.


"미디어는 결국 '익숙한' 것, '내가 이해하고' '내가 공감하는' 이야기만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이 '익숙함'과 '이해'가 나와는 멀리 떨어져 있거나 나를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미디어가 폭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들이미는 상황에서 시청자로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고어 이미지를 소비하는 나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는가?"*


* 짐승녀(2024a), <조각조각 땃따따>, ⟪석순⟫, 62: 134-137.

* 사야크 발렌시아(2021), 위의 책, 166.




참고문헌

<단행본>

정희진(2017). <한국 남성의 식민성과 여성주의 이론>.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권김현영 엮음. 서울: 교양인.

사야크 발렌시아(2021). 《고어 자본주의》. 최이슬기(역). 서울: 워크룸 프레스.

Grafton Tanner(2023). Foreverism. Cambridge: Polity Press.

<논문>

손희정(2022). <기이한 열정: 디지털 시대의 고어 남성성>. 《횡단인문학》. 제12호. 57-83.

신순철(2018). <몸의 확장, 스며드는 기술: 맥루한으로 본 크로넨버그의 몸의 공포>. 《한국소통학보》. 제17권 제2호. 157-184.

<기사>

동아일보(2024). "中3이 '딥페이크 성착취물' 177건 만들어 돈벌이". 2024.08.30.

동아일보(2024). "텔레그램, 어쩌다 딥페이크 소굴됐나…"1000명 모이면 돈 줬다"". 2024.08.29.

경향신문(2024). "텔레그램도 ‘딥페이크’ 수사 협조하는데… 국내 메신저 성착취는 '방치'". 2024.10.04.

<기타>

짐승녀(2024). <조각조각 땃따따>. 《석순》. 62: 13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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