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녀
*로 인용 각주를, °로 내용 각주를 표기하였습니다.
탈케하고 싶습니다.
내게 아이돌 덕질이란 일차적으로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흐릿하게 남은 중학교 시절 기억 중에서도 각자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노래방에서 춤추고 노래 부른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졸업을 앞둔 몇 달 동안, 이제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당시 막 데뷔했던 여자 아이돌 그룹에서 각자 멤버 한 명씩을 담당하며 자칭 XX중학교 OOOO라고 부르고 다녔다.
고등학교에 가서 만난 친구들과 새로운 아이돌 덕질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앨범도 사고, 엄마 몰래 친구와 서울에 가서 새벽 공개방송 줄도 서 봤다. 실패했으나 선착순으로 공방에 들어갈 수 있는 시절이었다. 지방 팬싸를 하던 때라 응모도 해봤지만 나와 친구들 모두 탈락했다. 매일 점심시간과 청소시간, 야간자율학습 시작 직전 찰나에 교실 티비를 사수해 뮤비와 음악 방송을 틀고 그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췄다.
나는 팬클럽에 가입하는 등 소위 '정식 팬 활동'을 하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잘 몰라서,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내 팬심이 진정하지 않았던 게 아니다. 오히려 중학생 때만큼 관심사가 온통 아이돌에 쏠린 적이 없었다. 특정한 이름으로 불리는 팬덤에 속해 있다는 느낌, 그리고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과 같이 키워갔던 좋아하고 응원하는 감정과 시간이 전부였다. 우리는 동일한 대상을 행복의 원인으로 보고 그것에 몰두할 때 타인과 하나가 되어 정동affect 공동체를 이룬다*. 케이팝 팬덤은 이 정동 공동체로부터 시작한다.
사라 아메드는 정동 이론을 통해 감정이 특정한 '몸'에 실재하지 않고 대상과 기호 사이에서 순환한다고 설명한다. 어떠한 사회적 관계나 경계의 객관적 실재는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 생겨난다*. 감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 이상으로 강력하다.
아이돌 팬덤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으로 움직인다. 산업은 정동을 이용해 점점 더 불합리한 팬덤 활동을 유도하고, 이제 팬들은 이 정동에 자발적으로, 혹은 비자발적으로, 묶여 있다.
° 이 글의 제목과 소제목은 NCT WISH의 WISH (Korean Ver.) 곡 1분 57초부터 2분 10초까지의 가사를 따라간다.
* 사라 아메드(2021), ⟪행복의 약속⟫, 성정혜∙이경란(역), 서울: 후마니타스, 74-75.
* 사라 아메드(2023), ⟪감정의 문화정치⟫, 시우(역), 파주: 오월의봄, 42.
《팬덤 3.0》에서 신윤희는 90년대 1세대 아이돌 이후 현재까지 아이돌, 그리고 기획사와의 관계에서 팬덤의 형태가 어떻게 점점 변화해왔는지 설명한다. 그는 시청자가 직접 투표를 통해 그룹 멤버를 선발했던 <프로듀스 101(2016)> 방송을 기점으로 한 팬덤을 3세대라 부른다. 이 3세대 팬덤은 아이돌과의 관계에서 과거 무조건적인 추종자에서, 소비자 형태를 지나, 일종의 기획자 혹은 공모자로 거듭났다. 한편 팬덤의 집단적 실천 방식은 초기 배타적인 충성과 애정이 2세대의 중첩적 애정의 단계를 거쳐 이제는 파편화된 애정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파편화된 애정이란 다인원 아이돌 그룹에서 모든 멤버를 지지하는 소위 '올팬' 기조가 희미해지고, 최애나 차애 등 개별 멤버에 쏟는 애정이 팬덤의 기본 양상이 되었음을 뜻한다.
아이돌 산업의 전략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금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기획사가 파편화된 애정을 활성화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매우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바로 소통이다. 소통은 언어적 대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소통疏通은 '막힘 없이 통한다'는 뜻이고,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은 '공동'과 '공유'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왔다. 여기서 소통은 공유를 통해 공통에 도달하려는 비정형의 노력으로 정의한다. 아이돌 그룹보다 멤버 개개인을 향한 파편화된 애정이 주가 되면서 기존의 일방적인 동경보다 사람 대 사람이라는 대인적 관계의 감각이 추동되었다. 그래서 조금 더 밀도 있는 호혜성이 요구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아이돌은 발굴되고 해석되어야 하는 존재다. 팬들은 주어진 퍼즐을 끼워 맞추며 아이돌이 어떠한 '사람'인지 추측한다. 낡은 수식어처럼 들리지만 신비주의는 언제나 연예 산업의 기저를 이룬다. 방송은 기획이고, 대중은 연예인의 내밀한 구석을 알고 싶어 한다. 알고 있다는 감각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대중이 아닌 팬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사랑은 대상을 향해 가까워지고 싶게 만든다. 팬은 대상의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고, 이어지고, 공통되고 싶어한다. 팬들은 아이돌을 해독하기 위해 그들의 진솔한 모습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기를 원한다. 막힘 없는 소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중매체보다 개인 맞춤 뉴미디어가 부상하면서 아이돌도 각자의 유튜브에 자체 컨텐츠를 올리기 시작했다. 공식 계정에 올라오는 컨텐츠의 키워드는 '비하인드behind'다. 말 그대로 뒤편의 모습을 찍어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아이돌의 '진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앨범 준비 기간과 연습 비하인드 컨텐츠는 이들이 뒤에서 어떻게 열심히 노력했는지 그 '진정성'을 보여주는 창구다. TV 예능 프로그램 형식을 빌려온 게임이나 여행 컨텐츠는 방송과 진짜를 오가며 멤버 간 관계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둔다. 사실 이 지점에서 '캐릭터 해석'이라 불리는 팬들의 추측 작업은 일방적이지 않다. 기획사와 아이돌 당사자는 해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반응하며 팬들과 함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간다. 자체 컨텐츠는 회사의 기획에 맞춰 아이돌을 보여주기 위한 최적의 장이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모든 대중문화 산업은 이데올로기적 표상과 같다. 미적 기준은 물론이고, 가령 케이팝 아이돌 제작에서 항상 강조되었던 인성 교육은 한국의 집단적 도덕주의에 소구한다*. '비하인드'는 사실 비하인드가 아니다.
흔히 '유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유사 가족부터 유사 연애까지, 팬덤이 아이돌을 읽어내는 방식이 대중문화의 매혹을 넘어서는 지점은 바로 이 유사 정동의 실천이다. 유사 정동의 실천은 팬들의 일방적인 추측과 공상을 뛰어넘어, 아이돌 당사자와 산업의 적극적인 주도로 '떠먹여진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진짜가 아니다. 그들이 열광하는 것은 '진짜 같음'이다. 로렌 벌랜트가 말하는 상상적 소속감 혹은 상상적 애착심의 형태로 실천되는 정동은 애착의 대상을 소유하지 않고 대상과의 근접성만을 유지하며 안정감이라는 감각에 빠져든다*. 아이돌은 애초에 소유할 수 없고, 근접한 대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전제된다. 덕질은 어쩌면 추측으로 보내는 시간 그 자체다. 그래서 팬들은 그들이 제공하는 '진짜 같음'의 베일을 쓴 채 소유를 상상한다. 온갖 비하인드에 비춰지는 멤버들의 모습을 읽어냄으로써 그들의 '진짜'를 알고 있다는 생각을 감각한다. 팬 플랫폼의 프라이빗 메시지와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시작되었던 영상통화 팬사인회는 어떤 면에서 제일 강력한 연결이다. 네모난 화면 속 SNS로 개방됨으로써 타인과 이어져 있다는 동시대적인 감각이 멤버와의 일대일 서비스에 그대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공식 계정을 통해 업로드되는 수많은 사진과 클립 영상을 저장하는 행위는 데이터로 그 순간을 소장하려는 욕망이다. 그리고 일차적인 소유 감각을 위해서 팬들은 물질 문화에 뛰어든다. 앨범 표지와 포토카드, 캐릭터 인형을 비롯한 굿즈 상품 등은 이제 거의 대부분 멤버별 개인화된 형태로 제공된다.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가격과 랜덤 장사 속에서 팬들은 최애 멤버가 자신을 '찾아와주길' 바란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는 그 어디에도 근접하고 있지 않다.
이 '진짜 같음'은 아무래도 취약한 약속이다. 아이돌은 수행자다. 그런데 이들이 수행해야 하는 건 무대 위의 퍼포먼스를 넘어서는 특정한 인격의 퍼포먼스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은 감정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하게 요구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과 비대면이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진짜인 척하는 가짜 감각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팬들이 쏟아붓는 대가는 물질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점점 커지고만 있다. 아이돌과 팬들 모두가 고갈되어 가는 이 줄다리기에 산업은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 신윤희(2019), ⟪팬덤 3.0⟫, 서울: 스리체어스, 114.
* 김수정∙김수아(2015), <'집단적 도덕주의' 에토스-혼종적 케이팝의 한국적 문화정체성>, ⟪언론과 사회⟫, 제23권 3호, 43.
* 박미선∙윤조원(2023), <신자유주의적 현재와 로렌 벌랜트의 정동 이론>, ⟪안과밖⟫, 54권, 75.
대체 사랑이 뭐길래. 사랑과 애정.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랑은 굉장히 좋은 감정이다. 사랑이라는 감정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가슴 뛰는 이야기를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숨쉬듯이 마주한다. 그리고 사랑을 권유 받는다. 어쩌면 사랑에 떠밀린다. 사랑은 내가 아닌 타자를 향하는, 타자를 위하는 아름다운 확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사랑은 타인을 위하는 감정일까? 프로이트는 사랑을 크게 자기애적 사랑인 동일시, 그리고 의존적 사랑인 대상에 대한 욕망으로 분류한다. 아들은 자신의 존재를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동시에 자신과 다른 존재인 어머니라는 대상을 소유하고자 한다. 그런데 사실 주체에게 존재와 소유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아들은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어머니를 소유하려고 하지만, 반대로 아버지가 소유한 어머니를 자신이 소유함으로써 아버지와 동일한 존재가 되어갈 수도 있다*. 의존적 사랑을 하는 주체는 욕망의 대상을 이상화하는데, 그 이상은 주체에게 되돌아와 주체를 대신하고, 주체의 가치를 나타내는 기호가 된다. 결국 대상을 향한 이상화와 의존적 사랑은 자기애의 또 다른 형태가 된다*.
여기서 '자기애'를 이졸데 카림이 말하는 '나르시시즘'으로 끌어오고자 한다. 카림에 따르면 나르시시즘은 자아실현이 아니다.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넘어서는 이상에 관한다. 나르시시즘이란 이상을 향한 추구이자, 복종이다*. 우리가 신자유주의라 이름 붙인 자본의 시대는 나르시시스트들의 자발적인 복종에 의해 지탱된다. 매일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주체들에게 가장 이상화되는 것은 고유 가치를 지니는 것, 다시 말해 경쟁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자기 준거성이다*. 카림은 자기 준거성을 풍기는 추종 대상으로 현재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스타라고 말한다. 스타가 비치는 자기 완결은 신자유주의가 이상화하는 고유함의 이미지, 따라서 모방하고 싶은 이미지, 그러나 우리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미지다. 그래서 우리는 대신 사랑을 한다.
아이돌은 완전해 보인다. 기성 사회의 당위적인 요구를 갖춤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자신의 가치가 곧 막대한 금액으로 환산된다. 네트워크상의 초연결과 소비 권력, 그리고 물질 문화를 통해 상상된 소유의 사랑을 허공에 거머쥔 채, 우리는 아이돌에게 신자유주의적 이상을 맡겼다. 산업은 여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수행을 제공하며 팬들을 '사랑'의 정동 속에 빠뜨린다. 그렇게 산업에 계속 머무르고, 복종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기애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택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 사라 아메드(2023), 위의 책, 276-277.
* 사라 아메드(2023), 위의 책, 279.
* 이졸데 카림(2024), ⟪나르시시즘의 고통⟫, 신동화(역), 서울: 민음사, 177.
* 이졸데 카림(2024), 위의 책, 146.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이라는 듣기 좋은 말 아래 아이돌 산업의 자본과 착취와 폭력이 묵인되고 있다. 여성 아이돌과 남성 아이돌 사이에는 명백한 이중 잣대가 존재하고, 주요 소비자인 젊은 여성들은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고 있다. '진짜 같음'에 속아주었더니 오빠들은 범법자가 되어 돌아왔는데, 우리의 애정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 거대한 자본 경쟁 구조를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수행에 지나지 않을 가짜 감각에 진심이 섞이는 순간을 경계하면서도 그들의 진정성이 거짓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석순에서 인권을 외치다가도 셀카가 떴다는 알림에 후다닥 핸드폰을 켰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4만 원짜리 플라스틱 앨범을 오픈 런으로 사들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생각했다. 최애 멤버 포카를 처음 내 손으로 뽑았을 때 비명을 지르면서 생각했다. 전광판 아래 겨우 보이는 시야 좌석에 앉아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생각했다. 정말 좋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계속해서 사랑하라는 저 노래 가사가 얼마나 손쉽게 많은 것들을 감추는지, 그러면서 그 '사랑'에 계속 감응하는 내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생각했다.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얼만큼의 진심과 책임이 나를 붙잡고 있는지. 행복한 덕질이 무엇인지. 점점 더 치열해지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지. 어쩌면 이 글은 하나의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답을 찾아갈 수 있을까. 눈 뜨면 세계가 변한다°는 가사에는 한 번 속아보고 싶기도 하다.
° "눈 떠 봐 세계가 변하잖아" (NCT WISH, WISH (Korea Ver.), 2024).
참고문헌
<단행본>
사라 아메드(2021). 《행복의 약속》. 성정혜·이경란(역). 서울: 후마니타스.
사라 아메드(2023). 《감정의 문화정치》. 시우(역). 파주: 오월의봄.
신윤희(2019). 《팬덤 3.0》. 서울: 스리체어스.
이졸데 카림(2024). 《나르시시즘의 고통》. 신동화(역). 서울: 민음사.
<논문>
김수정·김수아(2015). <'집단적 도덕주의' 에토스 - 혼종적 케이팝의 한국적 문화정체성>. 《언론과 사회》. 제23권 3호. 5-52.
박미선·윤조원(2023). <신자유주의적 현재와 로렌 벌랜트의 정동 이론>. 《안과밖》. 54권. 6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