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로 인용 각주를, °로 내용 각주를 표기하였습니다. 이텔릭체는 파란색 글씨로 표현하였습니다.
종종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같이 어중간한 사람이 페미라는 이름을 붙이고 살아가도 되는 걸까. 스스로 페미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엔 나는 너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거 아닐까. 모범적인 행동을 보이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런 끝없는 자기검열들. 이 글은 이런 고민을 7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현재진행형으로 하는 사람의 글이다.
‘내가 정말 페미니스트가 맞나?’ 이 질문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2018년,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내가 나온다. 그 시절 나는 트위터에서 여러 가지 페미니즘 이슈를 접한,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칭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 시절에 어쩌면 당연하게도 ‘트위터 발 랟펨’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일까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에 나를 끼워서 맞추려고 했던 것 같다. 탈오타쿠도 하고, 탈코르셋하고, 비혼 비연애 하고, 여성혐오엔 항상 엄격하게 반응하고... 무언가가 여성혐오적인 것을 담고 있으면, 누군가가 여성혐오적 발언을 과거에 했다면, 용서 없이 무조건 배척하고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모든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없었다. 가끔은 친구들이 바르는 틴트를 바르고 싶었고, 연애도 해 보고 싶었고, 좋아하던 캐릭터들도 계속 좋아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런 스스로를 자꾸만 싫어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깨끗하고 결점 없는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페미니스트인데 당연히 여성혐오적인 요소가 들어간 애니메이션 보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페미니스트인데 당연히 남자랑 결혼도 연애도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고민을 쭉 이어가다 결국 1년 뒤 2019년, 스스로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안티페미로 전향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페미니스트들을 지지하고 여성혐오에 분노는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는 의미다. 지금 다시 되돌아 보면 이것만한 헛소리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지금으로. 극복한 줄 알았던 이 고민은 형태를 달리 바꾸어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힌다. 페미니즘 서적도 잘 읽지 않고 공부도 안 하는 내가 페미니스트가 맞나? 시간도 있는데 고작 힘들다고 집회 안 나가는 내가 페미니스트가 맞나?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대놓고 혐오 섞인 발언을 할 때 아무런 지적도 하지 못하는 내가 페미니스트가 맞나? 종종 그 말을 웃음으로 넘기는 내가 정말 페미니스트가 맞나? 하물며 내 페미니스트 활동을 응원해 주는 친구들의 입에서도 무신경한 소리가 나올 때 그건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하는데, 활동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내게 페미니스트가 될 자격이 정말 있는 걸까? 많은 고민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무섭다. 집단 안에서 고립되는 게. 내 신념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도. 누군가의 혐오 발언을 지적한다고 해서 내가 그 발화자의 모든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게 아닌데, 혹시라도 그렇게 받아들일까 봐, 오해할까 봐 무섭다. ‘쟤는 예민한 애야’라는 낙인이 찍혀 타인이 내 눈치를 보게 만드는 상황도 싫고, 괜히 나 때문에 내 친구들도 같이 엮여 다른 사람들에게 ‘쟤 꼴페미랑 노는 애야’ 따위의 뒷담을 듣게 할까 봐 무섭다. 내 존재 자체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도록 싫다. ‘그게 왜 피해가 되는데?’라는 질문으로 되받아칠 수도 있겠으나 그런 말로 고민을 끝내버리기엔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까. 페미니스트에게 있어서 인간관계란 무엇인가. ‘좋은 친구’로서의 나와 ‘페미니스트’로서의 나 사이. 나는 둘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도대체 이게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가.
친한 시스젠더 남성°인 친구들과 대화할 때를 떠올려 본다. ‘진짜 남자’, ‘저건 계집 같음’ 아주 장난으로 하는 얘기일지라도 이런 얘기를 할 때 굉장히 불편해진다. 허나 대놓고 불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들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상황에서 찬물을 붓기도 싫고, 오히려 내가 지적하는 게 ‘융통성이 없다’라며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일으킬 것만 같다. 다른 것보다 페미니즘 의제와 관련해서 이들과는 높은 확률로 의견이 불일치할 테니까. 그럼 소모적인 논쟁만 오갈 뿐이고 그 누구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대화를 완전히 포기해 버린다. 이렇게 묵인하는 방식으로 친구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의에 빠진다. ‘나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하고. 이 아이들이 심성이 아주 못된 사람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 지점이 고민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 인권 의제에 완전히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니까 무신경한 말을 많이 하는 거겠지. 하지만 내 활동을 지지해 주는 친구들과 있으려고 해 봐도, 불편한 건 매한가지다. 페미니즘의 탈을 쓰고 성역할을 강화하는 말이나 흘러가듯 일상적으로 나오는 혐오 발언 같은 것들이 내 많이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 집단 안에서도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다. 나를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불편한 티를 내면 이 사람들이 내 눈치를 보고 계속해서 자기 검열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이래서 페미 하는 애들은~’이나 ‘내가 페미인 애랑 친구 해 봤는데~’로 시작되는 술자리 경험담으로 소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행동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피곤한 시간보다는 즐거운 시간으로 보냈으면 한다. 자기검열은,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아주 피곤한 일이라는 걸 모르지 않으니까. 내가 해 본 바 있으니 더더욱.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나조차도 이런데 관심 없는 사람이 오직 나라는 한 사람을 위해 그런 검열을 거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성가신 일이겠는가.
이들이 내가 불편할 법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냥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화가 나지도 않고, 발화자가 싫어지지도 않는다. 익숙해졌다기보단 아예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실망할 것도 없었다는 게 조금 더 적합한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리는 흔한 이미지, 즉 ‘PC충’이라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학습한 혐오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걸 알아서 이런 발언들에 유연하게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최대한 불편해도 불편하지 않은 척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려는 편이지만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와 페미니스트로서 분위기 깨기 사이에서 자꾸만 전자를 선택하게 된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떳떳하지도 않기에 괜히 ‘나는 페미니스트이고, 네 이런 말들이 불편해’라고 하는 순간 내 이전 행실을 빌미로 시비가 걸릴까 무섭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무결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 때문에 되려 ‘당당한 페미니스트’가 되지 못하고 있으니, 세상에 어떻게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 수가.
난 페미니스트로서 당당하지 못해서 페밋말 하는 게 무서워.
→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침묵하고 외면하기
→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 같아…→ 다시 처음으로
이렇게 무한 순환에 빠져버리고 마는데…
° 함부로 성 정체성을 넘겨짚는 것이 몹시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편의를 위해 일단은 이리 적어둔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로서 당당해지기 위해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차라리 내가 이것저것 지적해도 계속 친구를 해줄 사람들만 주변에 남겨놓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나 이렇게 과감하게 행동하기엔 난 너무나 정이 많고, 페미니즘 이슈를 떠나서도 이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불편함을 감수해서라도 연을 이어가고 싶다. 스스로 선택한 일임에도 계속 딜레마에 빠지고, 자괴감이 들고… 도대체 페미니스트 자격증은 누가 발급해 주는 걸까? 차라리 국가 공인 시험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격증만 제대로 나와준다면 이런 고민 안 해도 될 텐데. 누가 시비 걸 때 자격증만 보여주면 해결될 테니까.
페미니스트임을 밝혔다가 불링당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당당해지기가 참 쉽지가 않다. 페미니스트임을 어쩌다 밝혀도, ‘나 그런 페미 아니야’를 주류 집단에 계속해서 증명하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내가 보기에도 내가 참 한심하다. 나 페미긴 한데, 너희한테 강요하는 페미 아니다? 너희가 부적절한 발언 해도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그냥 내 앞에선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대해. 미움받기 싫어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정말 날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뭐든지 곤란하다.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될지 잘 모르겠다. 여러모로 자격 미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결론을 내 보자는 결심을 한다. 무결한 페미니스트는 과연 누구일까. 내 비겁한 행동의 정당화일 수도 있지만 조심스레 묻는다. 여성혐오를 묵인한 경험이 없는 페미니스트가 있을까? 여성혐오를 해본 경험이 아예 없는 페미니스트가 과연 있을까? 사회의 낙인이나 시선을 무서워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고, 앞에서 쭉 서술해 왔듯 나도 아직 이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다짐은, 과거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고 해서 그때처럼 스스로가 페미니스트이길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이 무서움을 극복하는 동시에, 평상시에 사소하게라도 페미니즘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노력하자고 가볍게 다짐해 본다. 완전무결한 페미니스트는 없다. 내가 예전에 혐오 한 번 했다고, 혐오 한 번 무시했다고 페미니스트이길 포기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일 비겁한 짓이다. 제대로 반성하고, 무서운 것 하나하나 차근차근 극복해 나가 보자.
° 나에게 잘못이 아예 없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 시절의 나는 미성숙했고, 그렇게 잘 한 것도 딱히 없었다.
여전히 술자리에서 혐오 발언이 나올 때 대놓고 지적할 용기는 없다. 친구들이 웃으면서 무신경한 말을 할 때도 지적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요즘 하고 있는 ‘은근슬쩍 페미하기’는 인스타에 자기소개란에 소심하게 여학생위원회와 석순 인스타 아이디를 걸어 놓는 것.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이거 하나만으로도 새내기 페미니스트가 편하게 있을 수 있다면, 불편한 말을 듣고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해 고민할 때 나를 떠올리는 사람이 생긴다면야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여러 사람들과 맞팔로우인 상황에서 대놓고 ‘나 페미요’하는 것이 여전히 무섭기는 하다. 또 나를 거슬려하거나 뒷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뭐 어때? 이렇게라도 조금씩 극복해 나가는 거지. 거슬려하라 그래! 하나도 신경 안 쓰이니까! oO(사실 좀 신경 쓰여...)
마지막으로 석순을 읽어주는 내 친구들에게. 익명으로 썼다고는 하지만 거의 특정되게 적었으니 아마 내 글이 어떤 건지는 바로 알아봤을 거라고 생각해. 우선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해서 너네한테 눈치를 주는 게 전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 나는 이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혹은 내 행동과 생각에 지지해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니까.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적인 고민을 다룬 것이지, 너희의 행동을 바꾸겠다는 선언도 아니고, 바꾸어 달라고 수동적으로 공격하는 것도 아니야. 가끔 대화할 때, 어쩌다 그런 말을 하게 되더라도 그게 적절하지 못한 말이라는 걸 인지만 하고 있다면 나는 괜찮아. 나 유연하고 널널한 사람인 거 알잖아. 또 나도 아예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아니니까. 너희가 알다시피 내 팔은 엄청 안으로 굽기도 하고. 이 글은 너희가 혐오 발언을 할 때마다 쥐잡듯이 잡을 생각이란 소리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너희에게 전하고 싶었던 걸 꼽아 보자면 하나 정도. 내가 가끔 혐오를 함의하고 있는 개그나 말에 웃더라도, 그 상황에서 굉장한 자기모순을 겪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너 페미면서 왜 그래’, ‘여학생위원회랑 석순하는 애도 저러는데 조금 더 느슨하게 생각해도 되겠다~’라고만 생각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어찌 됐건 너무 너무 사랑하고, 모범을 보이지 못해서 미안해. 앞뒤에 있는 글도 시간이 나면 읽어 줬으면 좋겠어! 항상 응원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