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여자찾기: 한국 성매매 여성의 정치학

짐승녀

by 석순

*로 인용 각주를, °로 내용 각주를 표기하였습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사회대개혁’을 내건 약 네 달간의 전국적인 집회 현장은 분명히 달랐다. 촛불 집회에서는 보지 못한 광경이 이어졌다.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이 단상에 올라 발언하고, 형형색색의 띠를 동여맨 채 깃발을 휘날렸다. SNS를 통해 곳곳의 소수자들이 발언하는 영상이 퍼졌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은 2024년 12월 11일 부산 서면에서 열린 집회에서 무대에 오른 어느 여성의 발언이었다. 그는 자신을 ‘저기 온천장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라고 소개했다. 윤석열을 탄핵시킨 이후에도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향한 관심을 지속해달라는 그 발언은 우리가 매주 광장에 모였던 가장 궁극적인 이유임이 틀림없다. 대통령 하나 치운다고 변하지 않는 사회를 이미 모두가 겪었다. 다함께 외친 진정한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탄핵 너머의 세상을 그려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윤석열을 끌어 내리기 위해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추운 겨울, 국가 폭력에 맞서 밖으로 나선 또 다른 이들이 있었다.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속칭 미아리 텍사스라고 불렸던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의 여성들이다. 이들은 신월곡1구역 재개발 사업에 따른 강제 철거와 이주에 대해 생존권과 이주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작년부터 매주 성북구청 앞에 모였다. 60년대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미아리 텍사스는 서울의 대표적인 성매매 집결지 중 하나였다. 그간 꾸준히 재개발 대상 구역으로 거론되었으나 집결지의 복잡한 이해관계 아래 사업 추진 과정에서 여러 충돌이 있었다. 2009년 정비 대상 구역으로 지정된 이후에도 조합 갈등 등의 이유로 계속 미뤄지다가 2023년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 재개발이 확정되었고, 작년부터 본격적인 이주와 철거가 시작되었다. 문제는 집결지 여성들에 대한 이주 대책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조합은 해당 지역 일대의 건물주와 업주 외에 성매매 종사자 여성은 이주 보상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들에게 보상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당사자들은 행정 기관에 조합과의 조율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개발을 허가한 성북구청은 이주보상비 지급은 지자체가 아닌 조합의 몫이며, 성매매 종사자 중 하월곡동에 주민등록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행정 지원이 어렵다고 일관했다. 서울시는 재개발 사업은 자치구 차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지원이 어렵다는 동일한 ‘행정상의 이유’를 반복하며 또다시 책임을 돌렸다.


서울시와 성북구청의 말에 의하면, 도대체 책임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미아리 텍사스 여성들은 하월곡동 88번지에서 수년간 먹고, 자고, 일하며, 발붙여 생활해 온 반문의 여지 없는 주민이다. 서울시와 성북구청이 들이미는 ‘행정상의 이유’는 무엇을 설명할 수 있는가. 그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왜 여성들이 성매매 집결지에 주민등록 할 수 없는지, 왜 집결지를 떠나기 어렵고 또 왜 이곳에 왔는지 설명할 수 없다. 재개발 사업에 붙은 ‘도시환경정비’라는 딱지의 의미와, 수많은 시민이 윤석열 탄핵을 함께 외치는 동안 기사조차 제대로 나지 않았던 그들의 투쟁을 설명하지 못한다.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2004년 제정된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매매피해자보호법)’을 통칭 ‘성매매특별법’이라고 부른다. 그 이전에는 1961년 제정된 ‘윤락행위등방지법(이하 윤방법)’이 있었다. 빠지고(淪윤), 떨어진다는(落락) 단어의 뜻처럼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여성에 대한 혐오적인 가치 판단을 바탕으로, 그들을 선도의 대상으로 삼아 통제하기 위한 법이었다. 윤방법에 따라 단속에 걸린 성매매 여성은 ‘부녀보호시설’에 감금되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 정부는 정권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부패와 구악의 일소’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사회 정화’에 나섰고, 성매매 여성이 그 대상이 되었다. 동시에 1962년 '윤락 여성 선도 계획'에 따라 내무부, 법무부, 보건사회부 등 정부 부처 공동으로 성매매 집결지가 설치되었다. 집결지 설치의 목적은 '일반 시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었고, 이 특수 구역들은 윤방법 적용에 예외 규정을 두었다. ‘일반 시민’의 구역과 구분되는, 성매매에 규제가 없는 집결지 구역을 구태여 만들면서‘사회 정화’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성매매를 국가 차원에서 허용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전국적으로 설치된 집결지 104개소 중 서울에는 대표적으로 종로3가와 이태원, 대방동과 문래동 등이 있었다.


그러던 1968년 당시 서울 시장의 지휘 아래 종로3가 집결지를 소탕하고 '표준구역'을 만들기 위한 일명 '나비작전'이 시행되었다. 이때 단속을 피해 흩어진 수많은 여성 중 일부가 하월곡동에 자리 잡았고, 그렇게 미아리 텍사스가 생겨났다. 한때는 종사자 수가 3,000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오래된 집결지인 만큼 미아리 텍사스를 둘러싼 소음도 끊이지 않았다. 집결지를 혐오 시설이라 부르며 철폐를 요구한 인근 주민들의 목소리에 더해 행정은 불법을, 시장은 차익을 외치며 재개발을 추진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이명박이 2002년 서울 시장으로 취임한 뒤 "서울의 대표적 윤락가 3곳을 체계적으로 정비해 자연스럽게 불법 윤락업소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가리킨 곳이 바로 미아리 텍사스다.*


* 오마이뉴스(2023), ""여긴 밑바닥, 어디 가겠나"... 폐쇄 앞둔 '미아리 텍사스' 가보니", 2023.12.26.

* 한겨레(2006), "부동산 최후의 승자, 미아리 포주들", 2006.11.23.


비슷한 시기 성매매특별법 제정에 대한 제반 논의를 추동한 사건이 있었다. 2000년 군산 개명동과 2002년 군산 개복동의 성매매 업소 두 곳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으로 각각 종사자 여성 5명과 14명이 방에 갇힌 채 사망했다. 당시 사망자들이 감금되어 탈출하지 못했던 집결지 업소의 참사 현장과 더불어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노출된 불법 고리대금 채무, 업주와 경찰의 유착 관계 등 그동안 깊숙이 묻혀 온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반성매매 여성단체들이 대대적인 법 제정 운동에 나섰고, 그렇게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 및 시행되었다.*


* 신박진영(2020),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서울: 봄알람, 76-77.


성매매특별법은 기존 윤방법의 '윤락'이라는 성매매 종사 여성에 대한 다분히 혐오적인 표현을 삭제하고 '성매매'라는 기술적 단어를 표준으로 만들었으며, 업주와 알선자에 대한 처벌을 명시하고, 종사자 여성을 '사회악'으로만 보았던 관점에서 나아가 이들에게 보호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사법적 인식을 마련했다.* 법이 시행되고 집중 단속이 강화되면서 특히 성매매 집결지가 쇠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 장다혜(2022), 「성매매특별법 시대의 처벌은 누구를 향하는가」, 『불처벌 :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사회에 던지는 페미니즘 선언』, 서울: 휴머니스트출판, 81-82.


그러나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법이 시행된 이듬해 2005년 3월 27일, 미아리 텍사스에서는 또다시 화재로 여성 5명이 사망했다.* 정부는 '성매매 근절'을 위해 그간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 온 집결지를 2007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를 위한 논의와 입법 준비도 마련되지 않은 채 집결지들은 도시정비사업과 민간 주도의 재개발에 의해 밀려 나갔다.* 2017년 성북구는 ‘성매매 예방 및 성매매피해자등의 자활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비슷한 골자로 2021년 서울시는 ‘여성폭력방지와 피해자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며 '성매매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법률에 새겼다. 그런데 두 조례 모두 지금까지 예산 한 번 책정되지 않았으며, 종사자들은 실질적인 행정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 법을 아무리 새로 만들고 고쳐도 한국 사회의 성매매는 '근절'되지 않았다. 마사지방과 같은 겸업형 업소들이 성행하고, 온라인이나 오피(방) 등 여타 경로를 통한 성매매가 늘어났으며, 무엇보다도 여성들은 여전히 폭력과 죽음을 살아내고 있다. 국가가 불법을 외치며 벼랑 끝에 내몬 것은 한국 사회의 성매매 문제가 아니라, 그 안의 무수한 삶들이었다.


* 중앙일보(2017), "성매매특별법 13년, 미아리텍사스 사람들 "우린 막차 승객"", 2017.09.24.

* 신박진영(2020), 앞의 책, 79.

* 뉴스1(2025), "철거 시작된 미아리 집창촌, 머리띠 두른 성노동자들…"방 한 칸 있으면"", 2025.02.07.


합법과 불법 너머


성매매특별법, 그리고 서울시와 성북구의 조례는 공통적으로 법적 보호 대상을 '성매매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다. 법적으로 '성매매피해자'됨을 인정받아야 보호해 주고, 그렇지 않은 '자발적 성매매 행위자'인 여성은 보호하지 않으며, 처벌하겠다는 뜻이다. 또한, 현행법상 보호와 지원은 여성들의 '탈성매매'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법적 인식은 결국 성매매행위자와 성매매피해자, 성매매 여성과 탈성매매 여성, 불법과 합법 등으로 여성을 끊임없이 위계화하고, 여성이 처한 현실을 '탈성매매 의지'라는 개인의 주체성 문제로 축소한다.


위와 같은 국내법의 문제는 성매매 여성의 복잡다단한 사회적, 역사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발생했다. 60년대 윤방법이 금지했던 것은 성을 사고파는 쌍방적 행위로서의 성매매가 아니다. 군사정권은 여성의 '부도덕한'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자 했다. 이 시기 성매매 자체는 오히려 국가 경제 부흥을 위한 관광 상품으로 적극 이용되었다. 왜 '텍사스'일까. 실제로는 주한미군과 외화벌이를 위해 설치되었던 집결지와 기지촌은 한국 식민지 남성성의 유구한 성 상납과 복종의 증거다. 이 가운데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은 역사의 진일보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사실 두 법률 사이의 4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한국 사회는 성매매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여성의 섹슈얼리티, 나아가 여성의 빈곤과 계층에 대한 더 근본적인 논의를 도출해 낸 적이 없다. 성매매를 둘러싼 정책적 논쟁은 주로 합법-불법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며, 국제 사회에서 공유되는 네 가지 규제 모델°이 인용되곤 한다. 그러나 한국의 성매매 산업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화된 독재 국가라는 특유한 역사의 한복판에서 사회 구석구석 매우 깊게 뿌리를 내렸다. 따라서 '선진국'의 규제 모델을 따르거나 합법-불법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맥락을 바탕으로 성매매 여성의 정치학을 고려해야 한다. 요컨대 재개발로 '정비'하겠다는 '도시환경'을 과연 누가 만들었고, '자발적 성매매 여성'들의 '자발성'은 어디서 비롯되는지, 그리고 그들을 처벌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 성도덕적 금지주의, 신금지주의, 합법적 규제주의, 비범죄주의. 이 중 두 번째 신금지주의가 흔히 '노르딕 모델'이라 불리며,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 알선업자와 구매자를 처벌한다(신박진영(2020), 앞의 책, 172).


'자발성'


해방 이후 1947년 폐지령이 발표되기 전까지, 1916년부터 식민지 조선 땅에서 일제에 의한 공창제가 실시되었다. 공창제는 특정 지역의 감독관청에서 받은 허가증을 가진 포주와 여성의 성 판매를 공인하는 제도였다. 일본 군대 내 성병 감염을 통제하고 아울러 식민 사회를 빠르게 개척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1947년의 공창제폐지령은 공창제를 금지한 게 아니다. 일제 식민 통치가 끝나고 들어선 미군정은 성매매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일본 공창제의 접객여성 등록 및 성병 검진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여 한국 성매매 여성과 접촉한 미군들 사이의 성병을 통제하고자 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우리 정부는 국군과 유엔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곳곳에 '위안소'를 설치했다.* 전쟁이 끝나고는 국가 안보와 외화 유입을 목적으로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 병사들에게 기지촌 성매매를 '제공'했다. 이처럼 일본 식민 통치 아래 형성되었던 유곽遊廓과 주한 미군 기지촌은 1962년 군사정권의 성매매 집결지 설치 계획에 대부분 포함되었다. 공창제라는 '일제 잔재'는 그렇게 청산되지 못했다. 근우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일제가 여성에 관해 조선에 남긴 가장 큰 해독이 공창제라고 평했다.*


* "공창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겨레(2011), "대한민국 정부가 포주였다", 2011.11.23.

* 김희식(2008), <성매매집결지(집창촌)의 기원 -박정희 정권기를 중심으로->, 《역사문제연구》, 20, 257.


5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의 경제원조가 줄어들면서 한국 사회 전반이 더욱 극심한 궁핍 상태에 빠져들었다. 전쟁으로 남성부양자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갑작스럽게 와해되면서 전후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취약한 상태에 남겨졌다. 여성들은 기존의 가사노동을 부담한 채 생계를 위해 집 밖에 나가 일을 하고 경제활동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일하는 여성'을 향한 가부장적 시선은 여전히 짙었다. 특히 당시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에 떠밀리면서 동시에 손쉬운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비쳤다.* 전쟁으로 산업기반이 대부분 파괴된 상태에서 여성에게 허락되는 일자리가 소수인 사회 규범에 따라 여성들은 더욱 불안정하고 빈곤한 경제활동에 종사해야 했다. 그중 일부는 다방 마담이나 접객업으로 시작하여 요정*의 접대부로 일했는데, 1956년 보건사회부의 발표에 의하면 당시 전국의 접대부는 약 43만 3천 명에 달했고, 대부분 유엔군을 상대했다.*


* 박진영(2024), <'여성화된 빈곤'을 통한 전후소설 연구 -박경리의 『표류도』(1959)를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 94, 173.

* 기생을 두는 요릿집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이 들여왔다.

* 이임하(2000), <한국전쟁이 여성생활에 미친 영향 -1950년대 '전쟁 미망인'의 삶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8, 50.


전후 한국 여성의 사회적 빈곤 문제는 대표적인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 현상이다. 빈곤의 여성화는 전체 빈곤층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욱 쉽게 빈약해지는 성차별적 구조를 설명한다. 여성과 남성의 위계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빈곤은 단순히 개인의 책임 문제가 아닌, 여성의 노동을 제한하고 평가절하하는 노동 및 사회 구조가 작동한 결과다. 그리고 이러한 가부장적 노동 경제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일종의 서비스 재화로 취급되곤 한다. 여성의 성을 구매한다는 남성의 시장 논리가 이미 오래전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피식민과 분단 전쟁이라는 뼈아픈 역사 속에서 한국의 가부장제는 전쟁과 군사주의에 결합되어, 여성의 몸을 대가로 국방, 반공 질서,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얻어낸 셈이다.


시간이 흘러 민주화와 급격한 경제, 문화 성장을 이뤄낸 오늘날 대한민국의 성 산업 규모는 최대 37조 원으로 추산된다. 성 산업은 더 이상 지하경제에 머무르는 수준이 아니다. 합법경제는 늘어나는 대출 시장을 경유하여 성매매 산업에 직접 가담하기 시작했다. 경제가 호전된 2000년 이후 국내 은행은 대출을 통해 이윤보다 이자를 노렸고, 대출된 자금을 대상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증권화 방식을 사용하면서 가계대출을 매우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금융권은 성 산업에 주목했다. 여성에게 선불금이 지급되는 형태인 성매매는 기본적으로 채무 관계에서 시작되는데, 업주에 대한 성매매 여성의 선불금 상환 의무는 2004년 성매매특별법에 의해 없어졌다.* 그러자 금융기관에서 '유흥업소 특화 대출' 상품을 만들었다. 유흥업소 업주들을 상대로 하여 종사자 여성들에게 지급되는 선불금 서류를 담보 성격으로 제출하면 대출을 해주는 상품이다.* 즉, '합법경제' 금융권이 성매매 여성의 몸이 지니는 수익성과 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여성을 담보증권화한 것이다. 구매자 남성이 끊이지 않고, 국가와 경찰이 나서서 비호해주는, 절대 '불이 꺼질 일 없는' 유서 깊은 한국 성매매 산업에 대한 '합리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 김주희(2020), 『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서울: 현실문화연구, 160-161.

* 경향신문(2020), "한국 사회의 ‘탈성매매’는 가능한 이야기일까", 2020.11.04.

* 김주희(2020), 앞의 책, 148-149.


군사주의를 기반으로 했던 한국 식민지 남성성의 성 상납 문화와 산업은 이후 사회 곳곳에 만연한 성 접대 문화, 그리고 강간문화로 견고하게 유지되어 왔다. 2004년 이후에도 성매매 문제의 맥락과 종사자 여성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렇게 20년이 또 훌쩍 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생계유지를 위해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은 어김없이 법적 처벌 대상이고, 그래서 그들이 당하는 폭력과 착취는 고발되지 못한 채 동일한'불법'으로 뭉뚱그려진다. 불법적 존재를 그저 눈앞에서 없애면 그만인 행정은 재개발 사업을 허가하며 책임에서 물러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정비하겠다는 그 환경은 국가가 나서서 만들고 키웠다. 가부장적 사회 구조는 여성을 더욱 극심한 빈곤에 몰아넣었고, 당장의 생계와 부양을 책임지기 위해 뛰어든 노동 시장은 이미 충분히 성별화되어 있었다.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근거는 딱 하나다.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의 이익을 위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재화로 삼으면서, 동시에 이를 도덕으로 관리하고자 성매매 여성을 불법적인 존재이며 '틀린여자'로 남겨 놓는 것이다. 이건 명백히 국가가 저지르는 젠더 폭력이다. 성매매 종사자들의 존재에 대한 책임은 다름 아닌 국가에 있다.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끊어내야 할 것은 성매매 여성들의 삶이 아니라, 정치와 자본이 결탁한 가부장제적 강간문화다.


틀린여자찾습니다


성매매 집결지 철거민 투쟁 현장은 정말이지 외롭다. 석순 이름으로 처음 참석했던 24년 2월 20일 집회는 벌써 19회차였다. 방학 세미나에서 성매매 경제를 대대적으로 분석한 『레이디 크레딧』을 읽은 뒤 충격에 빠지고,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그러던 2월 초 미아리 성노동자 집회에 대한 인터넷 기사를 접했고, 석순 대화방에 공유하며 함께 나가보자고 했다. 트위터에 검색해서 뜨는 몇몇 개인 연대자 계정을 통해 집회 장소와 시간, 외부인 참석 가능 여부를 알아냈다. 매주 목요일 성북구청 앞 아침 9시. 집에서 버스로 10분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지만 내가 매주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처음 가보는 집회 분위기였지만 금방 적응하여 쉴 틈 없는 구호와 춤을 따라 했다. 이날은 일찍 집에 돌아왔고, 다음주 집회에도 참석했다. 그렇게 매주 나갔다. 한 달간 매주 나가면서 점점 더 몸이 무거워진 것은 단순히 밀린 잠 때문은 아니었다. 처음 집회에 참석했을 때 미아리 텍사스의 투쟁에 관해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매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얼굴을 익히고, 대책위원회 사무실 바닥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듣고, 점심을 얻어먹으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자신이 없어졌다. 무수히 타자화되어 왔을 이들의 투쟁을 내가 또 그저 글감으로 쉽게 사용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됐다. 석순 마감 직전에는 계고장이 날아와 언제든 강제 집행이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급박한 상황인데 내가 책을 읽고 공부하고 글을 쓰는, 이 느리고 실체 없는 시간을 이어 나가는 게 맞는지 꽤 많이 고민했다. 혹시라도 뭔가 틀릴까 봐 엄청나게 자료 조사를 했지만, 나의 이 글 하나로는 다 소화하지도 못했다.


앞에서는 길게 공부한 내용을 나열했지만, 우리가 성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한 이유는 무엇일까. 열 명 남짓한 개인 연대자들끼리 대화할 때 자주 나온 이야기였다. 다른 이들이 길게 풀어 이야기할 때 석순은 석순을 소개하는 데서 짧게 끝냈다.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입니다.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다양한 의제에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노동자의 존재는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 각기 다른 의견으로 갈라지고 끝내 소진되곤 한다. 어떤 '페미니스트들'에게 성매매 여성은 틀린사람이고, 또 틀린여자인 것이다. 그들에게 이 글을 읽어 보라고 하든가, 아무튼 해줄 설명은 무지하게 많을 것이다. 그런데 매주 목요일 아침 내가 침대에서 일어난 것은 용주골에 가지 못했던 부채감일 수도, '사회대개혁'을 향한 내 안의 시위 붐일 수도, 혹은 여성주의 단체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사실은 학교도 안 다니고 취직도 안 해서 시간이 넉넉했을 수도, 몇 번 얼굴 비추다가 안 나가기에는 좀 그랬을 수도 있다. 나는 나의 집에서 정말 가까운 곳에서,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이 투쟁에 소음 데시벨 한 칸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서 나갔다. 너도나도 틀린여자투성이인 세상에서, 틀린여자찾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미아리 텍사스는 이미 일부 철거가 시작되었고, 구역을 따라 펜스가 설치되었다. CCTV가 설치되고 '공가空家' 래커칠에 둘러싸여 있지만 여기에,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다. 글이 완성되고 책이 나올 때 이곳의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다. 미아리 여성들에게 합당한 이주 대책이 마련되었기를, 아무도 다치지 않았기를 바란다.

tempImageXHMrUU.heic 성북구청 앞, 신월곡1구역 미아리 성노동자 생존권과 이주대책 촉구 집회



참고문헌

<단행본>

김주희(2020). 『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서울: 현실문화연구.

신박진영(2020).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서울: 봄알람.

장다혜(2022). 「성매매특별법 시대의 처벌은 누구를 향하는가」. 『불처벌 :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사회에 던지는 페미니즘 선언』. 서울: 휴머니스트출판.

<논문>

김희식(2008). <성매매집결지(집창촌)의 기원 -박정희 정권기를 중심으로->. 《역사문제연구》, 20. 255-305.

박진영(2024). <'여성화된 빈곤'을 통한 전후소설 연구 -박경리의 『표류도』(1959)를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 94. 161-186.

이임하(2000). <한국전쟁이 여성생활에 미친 영향 -1950년대 '전쟁 미망인'의 삶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8. 9-55.

<기사>

경향신문(2020). "한국 사회의 ‘탈성매매’는 가능한 이야기일까". 2020.11.04.

뉴스1(2025). "철거 시작된 미아리 집창촌, 머리띠 두른 성노동자들…"방 한 칸 있으면"". 2025.02.07.

오마이뉴스(2023). ""여긴 밑바닥, 어디 가겠나"... 폐쇄 앞둔 '미아리 텍사스' 가보니". 2023.12.26.

중앙일보(2017). "성매매특별법 13년, 미아리텍사스 사람들 "우린 막차 승객"". 2017.09.24.

한겨레(2006). "부동산 최후의 승자, 미아리 포주들". 2006.11.23.

한겨레(2011). "대한민국 정부가 포주였다". 2011.11.23.

<온라인 백과사전>

"공창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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