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로 인용 각주를, °로 내용 각주를 표기하였습니다.
2025년 7월 22일에 진행된 고대문화 [학생 사회의 백래시를 묻다] 간담회에서 사용한 여학생위원회 발제문을 다듬은 글입니다.
5월 초 진행된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여학생위원회(이하 여위)와 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소인위)의 합병이 의결되었다.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학생 사회를 위협했던 대학가 탈정치화·백래시의 흐름이었다.
° 고려대학교의 의결 기구. 총학생회장단, 각 단과대학·독립 학부의 학생회장단, 각 학부·과·반의 학생회장단, 각 동아리연합회 회장단과 분과장이 의결권이 있는 대의원으로 참여한다. 해당 의결 기구에서는 예산 집행, 집행부 인준, 특별기구 인준 등의 안건이 다뤄진다. 따라서 여위를 포함한 특별기구들은 전학대회에서 매 학기 형식적인 인준 절차를 거쳐왔다.
공약집에서 인권이라는 단어를 삭제한 제55대 총학생회 [바다]의 출범에서부터 여위와 소인위의 합병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5년 1학기, 마치 합병이라는 결과를 예고하듯 대학 내에서 인권 기구에 대한 반동적인 분위기가 공식적인 언어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단적인 예시로 총학생회 [바다]가 선거운동본부였을 당시 여위와 소인위가 소속되어있던 학내인권단체협의회(이하 학인협)가 [바다]에게 정책 질의서를 보냈으나, 질문에는 ‘요청하면 생각해 보겠다’라는 뉘앙스의 성의 없는 답변만이 반복될 뿐이었다. 또한 3월에 진행된 예결산안특별위원회°(이하 예결특위)에서는 여위의 결산안이 큰 사유도 없이° 기권표로 부결 처리되어 그 심의가 연기된 바 있다. 당시 예결특위에서는 인권 의제를 다루는 특별기구 전반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이 지속되었으며, 이는 문제가 되어야 하니 문제를 만들겠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 학생회와 학생회 산하 기구의 예산안 및 결산을 심의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의미한다.
° 사업을 진행했음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가 있었음에도 이유 없는 기권표로 인해 부결 처리되었다.
이와 같은 여러 전조증상에 여위 내에서도 전학대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우려가 있었다. 그래도 전학대회에서의 반동적인 발언들은 지난 인준 과정에서도 지속적으로 있었고, 이번에도 그 수준에서 머물 것°이라 예상했기에 나와 위원들은 기존과 같은 대응을 준비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전학대회에서 대표자들은 상상 이상으로 대표자답지 못한 태도와 발언들을 보였다. ‘내 지인은 애기능생활도서관을 사용하지 않으니 없어져도 된다’, ‘육식주의자 같은 소수자의 경우를 생각해 보셨느냐’ 같은 발언들이 이어졌다. 긴 시간 내내 질 낮은 질의응답이 지속되었고 결국 특별기구 애기능생활도서관, 소수자인권위원회, 여학생위원회, 민주학생기념사업회의 재인준은 줄줄이 부결이 결정되어 징계 수위를 정하는 절차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중 특히 여위의 경우에는 표면적인 부결 사유도 명확하지 않았다. 심의 당시 들어온 질의 사항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질문들이 반복되었고, 소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지난 특별기구의 인준 과정에서도 반동적인 발언은 나왔으나, 단지 그것에서 그쳤을 뿐 인준 자체를 반대하는 등 기구의 존속을 위협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여위의 특별기구라는 입지 자체에 대해서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Q: 노동절 전야제 공동주최, 퀴어퍼레이드, 기후정의 die-in 퍼포먼스 등 외부 단체의 타 의제에 왜 연대하는가?
A: 기후정의, 노동 운동 등 다양한 인권 의제들 속에서도 여성 권리가 침해당하는 일이 이중적으로 발생할 수 있음. 그곳에서 어떤 권력 구조가 작동하고 어떻게 여성 인권을 신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활동임. 여위는 자칫 다른 인권 의제에서 쉽게 묻힐 수 있는 ‘여성 퀴어’나 ‘여성 노동자’의 존재를 환기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
Q: 한국의 극우화를 다루는 세미나를 왜 여위에서 진행하는가?/서부지법 폭동 사태나 남성의 극우화가 여위 세미나와 무슨 관련인가?
A: 여성주의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민주주의 위에서 성립될 수 있으므로 세미나를 진행함. 정치적 주체로서의 여성을 다룰 수 있기에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음. 서부지법 폭동 사태의 경우 남성의 극우화에 관한 기존 연구 및 통계가 분명히 있음. 젠더와 관련된 사회 현상이기에 다루었음.
Q: 모든 남성이 가해자라는 것인가?
A: 모든 남성이 가해자라는 것이 아닌, 사회적인 구조물로서의 ‘남성성’을 말하고 있음.
(…)
외부 연대는 학우들을 위한 활동임. 그리고 내부 활동 역시 소홀히 하지 않고 있음. 강연회를 열면 꾸준히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계심. 무엇보다도 페미니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여위의 가장 큰 존재 의의. 소인위와는 애초에 기조 자체가 다르니 합병될 수 없음. 여성주의를 독자적으로 가져갔을 때만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함.
당시 여위가 준비했던 소명문 중 일부 발췌
징계 수위 결정 절차에서도 당혹스러운 지점들이 많았다. 앞선 소명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여위는 전학대회 당시 여위가 학생 사회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고, 필요로 하는 학우들도 분명히 있기에 제명이라는 징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를 반영하듯 제명에 관한 논의는 회의 중 진행되지 않았다. 제명을 해야 할 합당한 사유 역시 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고와 제명 중 택일 투표를 하자 제명이 더 많은 득표수를 얻는 결과가 나왔다. 제명 찬반투표 역시, 논의 중 찬성 의견 개진을 제대로 한 대의원은 없었음에도 찬성표가 기권표와 반대표를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찬성표가 2/3가 되지 않아 제명이라는 결과는 간신히 피할 수 있었으나, 회의에서의 이런 진행 과정과 표결 결과를 통해 대의원들의 대다수가 대표자라는 이름을 내걸고 반페미니즘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합병이 결정된 뒤 여위는 전학대회의 하위 의결 기구인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에서 공식적인 두 차례의 이의제기 절차를 거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중운위원들은 징계 수위에 대해 합리적인 논의를 하는 대신, 전학대회에서의 자신의 발언을 변명하거나 합병 의결이 합당했다는 주장만 길게 늘어놓았다. 대의원들의 의결은 학생 사회를 대표하는 것이고, 그런 대의원들의 의결이 비민주적일 수 없으니 전학대회에서의 의결은 그 정당성을 의심받을 수 없다는 순환논리가 반복되었다. 합병이라는 결과의 책임은 대의원들에게 특별기구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여위와 소인위에게 있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전학대회와 중운위 진행 내내 조금이라도 특별기구의 이야기를 들어볼 용의를 표한 대의원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애초에 설득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한다는 말인가. 그 외에도 중운위에서는 공동대책위원회 차원의 대자보 등을 회의에서 언급하며 소인위에게 해당 부분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이어 대자보를 근거로 소인위와 여위는 합병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대자보는 엄연히 전학대회 의결과는 관련이 없는 별개의 건이며 징계 수위 하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는데 이것이 언급될 필요는 없었다.
° 전학대회가 일정 권한을 위임한 상설 의결 기구이다. 총학생회장단, 각 단과대학·독립학부의 학생회장, 각 동아리연합회의 회장이 의결권을 가진 위원으로 참여한다.
° 해당 대자보는 대학가의 이준석식 사고와 발언을 지적하는 내용의 대자보였다. 그러나 이 대자보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한 중운위원이 언어성폭력을 저지른 사람과 대의원을 동일 선상에 두는 것이냐며 불쾌감을 표했고, 허위 사실이 담긴 대자보를 쓰는 기구의 존속 이유를 모르겠다는 식의 발언이 있었다.
결국 소인위와 여위는 여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라는 기구로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다만 두 기구를 완전히 합친 것은 아니고 내부에서 국서를 따로 운영함으로써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크고 굵직한 일들이 일단락되었다고 한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위와 소인위의 합병이 주는 메시지가 과연 학생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줄지, 대표자들이 학생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권 기구를 대대적으로 탄압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를 생각해 보았을 때 학생 사회의 이후 흐름이 상당히 우려된다. 이 거대한 백래시의 흐름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전학대회와 중운위를 거치며
25년 1학기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석순 64에 들어갈 글을 썼다. 전학대회에 출석했다. 죽어도 피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담배에 입을 댔다.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 탓에 내내 잠을 자느라 수업에 가지 않았다. 수업에 가도 집중력이 끔찍해져 도저히 교수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일 술을 마셨다. 오랜만에 공황이 찾아왔다. 대인기피증이 다시 심해졌다.
여위가 사라졌지만 예상외로 내 학교생활은 평범하게 지속되었다. 회의가 진행되는 밤에는 모두가 날 페미년, 인권충, 정치병자로 보았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등교할 때는 모두가 날 그저 평범한 대학생으로 대해주었다. 그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안도감을 느끼는 내게 거리감을 느꼈다. 내 삶이 평범하게 지속되는 것 자체가 너무 이상했다. 어떻게든 살아지는 감각이 불쾌했다. 밤마다 내 세상은 무너지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문제 없다는 듯 나를 포함한 모두가 별 감흥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끔은 웃으면서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일반 학우들을 보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 사람들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중운위에 소명서를 제출하고, 축제를 위해 중앙광장에 설치된 무대를 보았다. 큰 문제 없이 축제가 진행되는 꼴을 보고 있자면 합병이라는 의결이 정말 전체 학생을 아주 잘 대표하는 결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정말로 대표자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모든 게 그저 내 탓인 것 같았는데, 몇 개월이 지난 뒤 조금 거리를 두고 일련의 사건들을 복기해보면 그저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겠거니 싶다. 그 과정에서 내가 무슨 말을 했든, 어떻게 조심했든, 합병은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해 본들 내가 이 대학가에서 이방인이 된 것 같다는 기분은 떨쳐낼 수가 없다. 집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학을 보내면서 상태가 조금 나아진 줄 알았다. 그러나 글을 쓰며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는 걸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게 되었다. 1학기가 내게 남긴 상처가 너무 크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곱게 듣지 않을 사람 100여 명이 있는 곳에 나가서 우리 기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데, 그걸 일반적인 사람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저 사람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그저 던지면 끝이었고, 나는 일일이 내 말과 우리 기구의 사업들이 거짓이 아니고 배후에 거대한 음모가 없음을 매 순간 증명해야 했다. 지금도 무섭다. 그들이 이 글을 읽고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은 뒤 사실과 다르다며 주장하러 올까봐.
함께 전학대회를 준비했던 위원들과 타 기구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게 너무 많았다. 인권 의제에 반감을 품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강경하게 대응하는 대신 특별히 조심해 달라 요구하게 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회피하여 다른 사람에게 하게 만들어 버린 것도, 방학이 시작되고 모든 동력을 잃어버려 거의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버린 것도.
글을 쓰는 내내 고민했다. 도대체 이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하지? 우울한 얘기만 나열하는 것보단 희망이 담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석순실에서 ‘난 행복해’를 자기 세뇌하듯 몇 번이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합병은 됐지만 합병된 기구 안에서도 나름대로 활동을 지속해 가고 있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썼다간 내 글이 거짓말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성균관대학교의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의 재등록이 부결되어 준중앙동아리가 되었다는 소식이, 한양대학교의 총여학생회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이 동시에 들려왔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절망스럽다. 그것 외엔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행복할 리가 없지 않은가.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졌다. 인권이고 뭐고 이젠 모르겠다. 전보다 의욕을 잃은 것도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힘을 내서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써서 지금의 상황을 기록하는 것뿐이다. 이런 일을 겪었고, 이런 상태였다고. 그래서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썼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나를 좋아할 수 없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