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유
*로 인용 각주를, °로 내용 각주를 표기하였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모른다. 적어도 우리 세대는 그렇다. 전쟁이란 어른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나, 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배운 내용, 영화와 드라마에서 본 장면, 그리고 가끔 뉴스를 보다 마주치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폭격의 이미지였다. 우리는 전쟁이 무엇인지, 추상적이고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어렴풋하게 아는 상태로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전쟁의 시대임은 그전에도,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죽어간다. 우리는 휴대전화로 다른 나라의 전쟁을 보고 듣지만 화면만 끄면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금방 전해 들은 끔찍한 보도를 잊은 채 안전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산 너머 바다 건너 이야기는 다른 세계 이야기로 느껴지므로. 우리나라에서 자행되었다던 끔찍한 역사를 들어도 이 또한 금세 잊을 수 있다. 피가 흘렀다는 땅 위에 서 있지만,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에서는 머나먼 과거일 뿐이니까.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쟁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모르겠어서 몇 번이고 썼다가, 지웠다가, 글을 엎었다. 그럼에도 써야 했다.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나가 팔레스타인 활동가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 그렇게 느꼈다. 우리가 숫자로 접하는 사망자들에게는 모두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0월 0일 00시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어느 도시에 폭탄이 떨어져 00명이 사망했다. 혹은, 어느 도시의 00명이 이스라엘이 유도한 기아로 사망했다. 건조한 숫자는 현장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글이 그들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주 아득한 과거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적어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두고 살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엉망이 된 일상에서도 생명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고향을 되찾기 위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사실 이런 짧은 글로 누군가가 변화하길 바라는 아주 거창한 속셈인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전쟁은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交戰) 단체 사이에 무력을 사용하여 싸움”을 뜻한다. 따라서 전쟁을 설명할 때, 국가 사이, 혹은 집단 사이의 갈등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사이 희생되는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 이념을 위해, 삶과 목숨을 바치지만, 사상자 중의 한 명으로 집계된다. 그 속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다. 특히 전쟁으로 인하여 삶의 뿌리부터 뒤흔들리는 사람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그 사회에서 살아가던 소수자들이다. 전쟁에서 승리해도 별다른 이득을 얻지 못하고 또다시 소외될 사람들. 전쟁에서 누구보다 큰 피해를 보고, 누구에게도 그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본 전쟁은 더욱 가혹하다.
전쟁의 민간인 피해는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전쟁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 전쟁은 비교적 적군과 아군이 분명한 상황에서 전개되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내전, 테러, 폭격 등의 형태로 전쟁이 진행된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여성, 노인, 아동 등 민간인이 피살될 확률이 더 높아졌다. 최근 UN 인권 사무소*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분쟁으로 인해 최소 48,38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중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2023년 대비 민간인 사망자가 무려 40% 급증한 것이다. 특히 지난 2년간 아동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사망한 어린이와 여성의 수치는 2021-2022년보다 2023-2024년에 4배나 더 증가했다. 갈수록 전쟁은 약자에게 폭력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가장 약한 자에게 가장 큰 피해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전쟁은 가부장제 위에서 성립한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여성 사상자의 수는 전쟁이 ‘젠더화’됐다는 증거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상황에서, 강인함과 힘, 승리는 남성성으로 여겨지며, 이러한 남성성이 우월한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해진다. 이때 포용, 패배, 인내와 같은 상징은 여성성으로 여겨지며 남성성보다 열등한 것으로 폄하된다. 전쟁에서 싸우며 누군가를 지키는 사람은 남성이 되고, ‘지켜지는’ 사람은 여성이 된다. 고귀한 영웅은 남성이 맡고, 여성은 지켜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주변화되는 것이다. 군사화된 사회는 힘을 가지지 못한 대상을 가치가 없다고 뭉개어버린다. 따라서 그 사회에 여성의 자리는 없다. 전쟁에 나간 남성들 대신 일을 하고, 가족들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위협에서 보호하고, 더군다나 남성과 함께 참전하더라도 여성의 자리는 없다. 전쟁에서 ‘여성적’인 것은 철저히 입막음 당한다.
동시에 전쟁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여성을 구분한다. 성녀-창녀 이분법이 분쟁에서도 적용되어 여성들을 이중으로 착취한다. ‘보호해야 하는’ 여성은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 자매, 아내, 애인이 되어 군인들에게 싸울 동력이자 명분이 된다. 돌아갈 ‘이상향’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여성들은 병사들이 성욕을 푸는 편리한 수단이 된다. 심지어 분쟁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시 강간은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전쟁의 부수적 피해로 여겨지곤 한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전쟁은 남성성이 과장되어 표출되는 동시에 과대평가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가부장제는 남성의 성욕을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이러한 배경으로 여성을 강간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오히려 권장되기까지 한다. 때로는 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써 강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남성성을 상처 입히는 방법의 하나로 그들의 여성들을 상처 입힌다. 적군이 그들의 여성들을 ‘보호하지 못했다’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또한, 국가에서는 군인들이 점령지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어’ 성병이 전염되는 것을 우려했다. 따라서 군인들의 건강 관리와 사기 증진을 명목으로 군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에 여성들을 밀어 넣기도 했다. 즉, 국가는 여성을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갈 곳, 혹은 성욕 풀이의 대상일 뿐이었다.
따라서 남성들의 이야기로만 이루어진 전쟁은 반쪽짜리 기록이다. 남성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을 여성들은 겪어왔고, 알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나라나 단체의 이름으로 누가 공격을 지시했고, 그 전쟁을 지원하기로 혹은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는 속보가 쏟아지며, 대부분 남성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남성들이 받아 적는다. 전쟁은 승리와 패배와 영광과 명예의 기록이 아닌 참혹함과 잔인함의 기록이어야 한다. 사람이 죽는다. 전쟁의 여파에서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국가, 군사, 집단, 단체 등으로 설명되지 않는 개인의 삶이 있다. 여성들이 주도하는 평화운동은 그래서 중요하다. 남성성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전쟁, 젠더화된 전쟁에서 가부장제와 전쟁의 연관성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소수자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을 이야기할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며, 극복해야 할 체제의 망령임을 가장 강력하게 피력할 수 있는 주체는 여성이다.
* 심영희 외(2007), 『세계화와 여성안보』, 파주: 한울(한울아카데미), 22.
* UN Human Rights Innovation and Analytics Hub(2025), “Human Rights Count: Delivering insights with UN Human Rights data”, 2025.06., UN Human Rights 웹페이지.
° 물론 과거에도 여성은 전쟁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으며, 최근 들어 더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전쟁에 힘껏 대항한 여성들이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여성 운동이 평화 운동을 주도했다. 한국은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이어진 전쟁과 분단, 독재로 평화가 꽃피우기 힘든 곳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평화는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닌, 통일 운동과 반미 운동에 따른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때 여성들이 먼저 ‘평화’에 집중한 활동을 시작했다. 원폭 피해자 지원으로 자연스럽게 시작된 반전 및 군축 운동은 점차 더 넓어져 일상 속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활동이 되어갔다. 『한국여성평화운동사』에서는 갈퉁의 정의를 통해 평화를 설명한다. 평화는 전쟁이나 분쟁이 없는 상태인 소극적 평화, 그리고 삶 속에서도 문화적 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적극적 평화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소극적 의미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통일 운동을 넘어 적극적 의미의 평화까지 이야기한 것은 여성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여성들에겐 일상이 폭력이었고, 이러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평화가 필요했다.
한국 여성평화운동의 시작점은 1970년대이다. 이때에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YWCA 등의 기독교 단체가 주로 활동했다. 박정희 정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기생관광’이라는 대대적인 매춘 사업을 진행하였으나, 이 당시 사회문제로 대두되지 않았고, 언론들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여성연합회 등 몇 여성단체들이 반대운동을 벌였다. 또, 1974년부터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주도로 원폭피해자 돕기 운동°이 벌어졌다.
1980년대에서는 광주 민주화운동에 따라 반미 정서가 확대되었고, 동시에 반전반핵운동과 핵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여성들의 활동이 있었지만 민족민주운동 연대의 맥락에서였고, 여성평화운동이 주축으로 전개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일방직 등의 여성 노동자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대이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여성평화운동은 전문적이고 구체화한 형태로 나타났다. 미군 기지촌여성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고, 정신대 대책 운동°이 주목을 받았다. 또한 한국여성단체연합회를 주축으로 1991년 걸프전° 반대 운동 및 방위비 삭감 운동이 일어났다. 동시에 탈북 여성 지원, 평화 교육 등 다양한 범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활동이 늘어났다. 1997년에는 여성평화운동 단체인 ‘평화를만드는여성회’가 설립되었고, 한국여성단체연합회, YWCA와 더불어 2000년대 주요 운동을 이끌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는 운동으로 평화운동이 더 대중화되었다. <군사주의를 반대하는 여성네트워크>, <전쟁반대여성평화행동> 등의 단체가 만들어져 활발히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의 여성 평화운동은 다양한 국제 연대, 시민운동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계속해서 페미니즘과 평화운동의 교차성에 대해 사유하고 활동하고 있다.
° 미군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폭격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를 비롯하여 일본에 살고 있던 한국인들도 원폭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에도 이들은 일본이나 한국 정부에게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인권운동이었다.
°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이다. 미국을 비롯한 30여 개국이 다국적군을 결성하여 쿠웨이트를 지원했으며, 1991년 2월에 종전됐다.
* 윤보영(2020), <페미니즘 시선에서 바라본 평화>, 《여성과 평화》, 6, 22.
한국여성평화운동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가의 폭력과 분쟁 문제에 연대하며 평화를 촉구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자행되었던 일들이 다른 곳에서도 유사한 모양새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의 레퍼토리는 비극적이게도 서로 닮았다. 교차하고 겹치는 부분이 존재하고, 이는 여성을 포함한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끔찍한 일을 겪어놓고도 또다시 다른 지역에서 그 일이 반복된다는 것은, 결국 전쟁이 기억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앞에서 말했듯, 남성성이 과대 대표된 채 그대로 쓰인 기록은 전쟁에 희생된 사람들의 삶을 지워버린다. 전 세계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 변화해야만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다시 되짚어보려고 한다. 한국과 한국을 벗어난 나라들의 역사와 현재를 함께 따라가며,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돌아보려 한다.
현대의 전쟁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날아오른 전투기와, 거기서 떨어지는 폭탄, 그리고 이내 피어오르는 연기가 아닐까 싶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두드러졌던 공습은 이제 전쟁의 대표적 이미지가 되었다. 폭격은 크게 ‘전략폭격’과 ‘전술폭격’으로 나눌 수 있다. 전략폭격이란 적의 주요 도시나 생산, 동력, 교통, 통신 시설, 혹은 정치, 군사의 중심부를 파괴하는 작전이다. 전술폭격은 지상이나 해상 부대의 작전을 돕기 위해 실시하는 폭격을 말한다.*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는 폭탄의 이미지는 대부분 전략폭격에 해당한다.
* 강성현(2013), <폭격은 제노사이드다: 폭격의 역사로 본 대량학살의 구조>, 《통일과 평화》, 5(2), 221-222.
제2차 세계대전 시기, 각 나라의 공군들이 전투기로 폭탄을 날라 목적지에 떨어뜨리고 복귀할 수 있는 기술이 마련되며 전략폭격을 난발하기 시작했다. 물론, 현대처럼 정교한 투하는 불가능했기에 야간에, 무차별적으로, 불시에 이루어졌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주거 구역에 엄청난 양의 폭탄이 쏟아지고, 그 보복으로 또 다른 나라에 폭탄이 쏟아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로 인해 영국, 독일, 일본 등에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 함부르크, 드레스덴, 도쿄 폭격 등이 대표적이다. 하룻밤 사이에 민간인 각각 약 5만 명, 3만 5천 명, 10만 명이 사망했다(강성현(2013), 앞의 글, 222).
이 피해는 제2차 세계대전에 그치지 않았다. 한국전쟁에서도 미 공군은 공습을 멈추지 않았고, 폭격의 피해는 민간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미군은 정밀폭격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당시 기술로 폭탄 하나로 표적을 적중할 확률은 0%에 가까웠다.* 더욱이 공중폭격은 피난민과 전선 후방 거주지를 목표로 했다.* 해당 거주지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적으로 간주한 것이다.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하자면, 폭탄은 그대로 전쟁터에 나갈 수도, 고향을 떠날 수도 없었던 노인과 여성과 아이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빨갱이’를 없앤다는 명목하에, 실질적으로는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이때 여성 피살자는 전체 피살자의 절반에 가까웠다.* 전투원으로 남성이 떠나간 지역에, 당연히 여성들은 그대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투에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든, 전쟁은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죽인다.
* 정은균(2013), “미국의 야만적인 공중폭격, 숨겨진 진실은 뭘까”, 2013.08.14., 오마이뉴스 서평.
* 김상숙(2021), <한국전쟁 전후 여성 민간인 학살과 전시 성폭력―1 기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기록을 중심으로>, 《사회와 역사》, 131, 83.
* 김상숙(2021), 위의 글, 84.
무엇을 위해, 도대체 어떤 사람과 어떤 지역을 목표로 하는지도 아리송한 채 공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군수업체와 나라들이 서로 정확도를 자랑하지만, 민간인 피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에 의하면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 내 2,000개 정도의 의료시설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가자시티에는 끊임없이 폭탄이 떨어지며, 피란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겨냥해서도 공습이 벌어진다.* 현재로서는 철저히 의도된 폭격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국제 사회는 헤이그 협약, 제네바 협약 등을 통해 전쟁법을 만들고, 민간인 보호를 원칙으로 세웠으나, 전쟁과 폭력이라는 이름 앞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전쟁을 규제한다고 해도, 전쟁이 내포하고 있는 잔인함과 폭력성, 그리고 그 사이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법은 어긴 자를 처벌할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다. 폭격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죽여가면서 전쟁이 계속되어야 할 정당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 국경없는의사회(2025), “우크라이나: 민간인·병원까지 겨냥한 무차별 폭격, 즉각 중단돼야”, 2025.04.25., 국경없는의사회 홈페이지 현장소식.
* BBC News Korea(2025), “이스라엘의 공습 격화 … '가자지구는 불타고 있다'”, 2025.09.16.
폭격이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만들었다면, ‘위안소’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강제로 착취했다. 대표적 예시인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1930년대, 일본군의 점령지에서 집단적인 강간 사건이 벌어지자, 전 세계적인 규탄을 받을 위기에 처한 일본은 군인들의 성욕을 관리하기 위한 ‘위안소’를 설치한다.* 위안소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대만, 필리핀 등에 세워졌고, 점령지의 여성들을 강제로 데려다 일본군의 ‘위안부’로 삼았다.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할 공간을 나라가 직접 제공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정말, 친숙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위안소’, 그리고 기지촌의 역사는 생각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일본군성노예제란?”, 홈페이지.
일본은 ‘위안소’뿐만 아니라 공창제도 남겼다. 공창제는 나라에서 직접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하는 제도로, 근대 유럽과 일본에서 실시되었다. 조선의 개항 이후 일본인 주거 지역이 생기며 자연스럽게 공창 지역도 등장했다. 일본의 공창제는 성 착취 제재에 관한 내용이 법률상으로나마 존재했지만, 한국과 대만 등의 식민지에서는 이러한 조항마저 적용되지 않았다.° 이후, 이 지역은 일제 강점기 동안 계속 존재하다가 일본이 패망한 뒤, 미군이 넘겨받아 미군을 위한 공창 지역으로 재활용됐다.* 공창 지역이 기지촌이라는 이름으로 뒤바뀌고, 미군이 직접 여성들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창제가 명목상 폐지된 이후에도 미군이 대부분 철수하는 1949년까지, 미군의 성매매 여성 관리가 계속되었다.
° 성매매 여성 연령 하한이 일본보다 낮았고, 자유 폐업에 관한 규정이 없었다(조성택(2018), <일제 강점기 공창제에 관한 비판적 고찰>, 《한국행정사학지》, 42, 150).
* 이나영(2010), <기지촌 형성 과정과 여성들의 저항>, 《여성과 평화》, 5, 175.
그러다 한국 전쟁 때, 국군과 UN군을 위하여 국가가 다시 ‘군위안소’를 만들었다.* 국가는 젊은 병사들이 성욕을 풀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하는 동시에, ‘보통’ 여자들의 ‘정조’를 지켜주어야 했다. 그래서 성매매 여성들을 군위안소에 들여보냈다. 명실상부한 ‘공창제’의 부활이었다.* 정조가 중요한 여성과 아닌 여성을 국가 차원에서 선 그어 버리고, 일본이 저질렀던 짓을 또다시 자국 여성들에게 저지른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위안부’, 혹은 ‘양공주’들을 기지촌에 집결시켜 나라 차원에서 관리했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외국인 대상의 성매매를 ‘기생관광’이라는 사업으로 추진하며 기지촌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경제성장의 도구로 사용했다.°
* 박정미(2011), <한국전쟁기 성매매정책에 관한 연구:'위안소'와 '위안부'를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27(2), 41.
* 이나영(2010), 위의 글, 178.
° 기지촌 여성들은 대부분 그렇게 번 돈을 일 인당 평균 4명의 가족 부양에 사용했다. 1970년 당시 기지촌 여성의 수를 20,000여 명이라 하면, 적어도 80,000명이 ‘양공주’의 수입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이나영(2010), 위의 글, 185).
이러한 ‘위안소’는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하던 게 아니었다. 나치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소°를 설치했다. 자국 군대를 비롯하여, 강제 노동자, 강제 수용소의 남성들을 위해서도 운영했다. 여기서도 나라가 포주가 되기를 자처했다. 이렇게 전쟁 상황에서 국가 차원으로 여성들에게 강제성노동을 강요하는 것에는 두 가지의 공통된 이유가 나타난다.
° ‘위안소’라 불리지는 않았고, ‘Bordell(보르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원뜻은 ‘막사’이지만, ‘남성들이 성적 서비스를 즐기는 곳’이라는 의미로 쓰인다(정용숙(2018), <나치 국가의 매춘소와 강제성매매-그 실제와 전후 시대의 기억>, 《여성과 역사》, 29, 378).
첫째, 군사들의 ‘위생’을 관리하기 위함이었다. 점령지에서 무작위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을 경우, 군대 내 성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졌다. 군대에서는 아예 여성들을 매춘소에 불러 놓고, 그 여성들을 ‘깨끗이’ 관리하면 성병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공통적으로 여성들에게 성병 검사를 받도록 강제했다는 점에서 이 속셈이 투명하게 나타난다. 성병이 우려된다고 해도 성매매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성욕’을 참다가 결국 동성애가 군대에 퍼질까 걱정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치는 특히 인종주의가 극심했고, 동성애 또한 열성 유전의 표지였으므로 군대에서 동성애자가 나오는 것은 몹시도 두려운 일이었다.*
둘째,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였다. 군인들의 성적 충동 및 욕구 배출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고, 이들을 ‘달래려면’ 여성과의 섹스를 제공해 주어야 했다. 위안소는 병사가 유흥 및 휴식을 취하는 장소였고, 이는 곧 충성심과도 이어졌다. 점령지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만든 것은 군인들에게 ‘정복자’라는 뿌듯함과 함께 보상을 받는 기분을 주었다.*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정당화되었다. 이 논리 속에서 여성들은 철저히 전리품으로 여겨졌다.
* 정용숙(2018), 위의 글, 393.
* 정용숙(2018), 위의 글, 393.
위안소, 혹은 매춘소는 심지어 점령지 측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도 했다. ‘순수한’ 자국 여성들과 성매매 여성을 분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자국 여성들을 ‘지킬 수 있다’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군위안소와 나치의 점령지 프랑스가 그 경우였다. 대체 누가 지키고, 혹은 지켜지고 있단 말인가? 지킬 가치가 있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은 대체 누가 구분하는가? 그럼 납치, 인신매매 등의 이유로 강제로 성노예가 되었다가 돌아온 피해자를 제대로 지킬 수는 있었나? 가부장제의 보수적 사회는 이것조차 실패한다. 여성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피해를 말해도 지워지기 쉽고, 정당한 배상을 받기도 어렵다. 애초에 사회 분위기가 먼저 그들을 ‘창녀’로 낙인찍어 입을 열지 못하게 한다.
필리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한국처럼 강제적인 성 착취를 당했다.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이 지난 1990년대에 들어서야 용기를 내 증언할 수 있었으나, 2018년, 필리핀 정부가 마닐라 시내에 설치했던 위안부 동상을 철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정부가 일본의 압력 때문에 피해자들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나치의 매춘소 또한 오랜 시간 비밀에 부쳐졌고, 성매매 여성들이 피해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배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생관광 사업 당시 이용되었던 여성들이 지금에 와서 ‘창녀’로 불리며,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명목으로 그들이 지켜온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가 매주 수요일 정오에 열리고 있다.* 전쟁이 불러오고, 국가와 군대가 주도한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필리핀 ‘위안부’ 피해자들은 타갈로그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롤라’라 불리길 선호한다(크리스티나 램(2022), 『관통당한 몸』, 강경이(역), 서울: 한겨레출판. 415).
* 김동엽, “필리핀에서의 ‘위안부’ 문제와 사회적 인식”, 웹진 <결>.
° ‘미아리 텍사스’라고 불리던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성노동자들을 위한 이주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고, 해당 구역이 철거되면 성노동자들이 갈 곳도 사라지게 된다. 매주 목요일 오전 9시, 성북구청 앞에 모여 이주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수요시위”, 홈페이지.
앞에서 살펴봤듯이 군대에서 군인의 성욕을 관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렇다고 점령지 여성들을 향한 성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군을 위한 군 위안소가 있었지만, 한국전쟁에서 성폭행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전쟁 지역에서 일어나는 강간을 그저 분쟁에서 곧잘 일어나는 일, 혹은 병사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생긴 일 정도로만 치부하면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전시 성폭력은 적극적으로 전쟁의 수단이자 무기로 사용되었다. 적군의 존엄을 부수고, 적군의 가족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전략이자, 효과적으로 적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무기였다.
한국 전쟁 당시, 국군과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전시 성폭력까지 결합한 형태로도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빨갱이로 지목되어 성폭행당하고, 피해자를 도와줬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임산부를 죽이거나, 여성의 성기를 훼손하는 등의 일도 벌어졌다. 학살을 위해 ‘빨갱이’를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들을 강간하거나 죽인 것이다. 여기서 강간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넘어서, ‘빨갱이’를 말살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자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양상은 베트남 전쟁 때도 반복됐다. 미군이 벌인 미라이 학살°이 폭로될 때, 동시에 벌어진 강간 20건에 대해서는 보도되지 않았다. 나중에야 강간이 있었음이 밝혀져 진상조사 보고서에 실렸으나, 끝내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한국군 또한 베트남 전쟁에서의 성폭력에 연관됐다. ‘라이따이한’이라는 말은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지칭한다. 그중 상당수의 아이들이 국군의 매춘, 성폭행, 불륜 등을 통해 태어났다.* 마을 수색 과정에서, 부대에서 잡부로 일하던 중에, 작전 중인 한국군과 마주쳐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증언이 존재한다.*
* 김상숙(2021), 위의 글, 89.
° 미 육군이 ‘미라이’라는 베트남 마을에서 민간인 504명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미군 창군 이래 최악의 전쟁범죄로 꼽힌다(한국일보(2024). “[가만한 당신] 미라이 학살 공식 보고서들이 감춘 진실들”. 2024.10.21.).
* 크리스티나 램(2022), 위의 책, 250.
* BBC News Korea(2019), “베트남 전쟁: '성폭행범 군복을 봤어요. 한국의 백마부대였죠''”, 2019.01.19.
* 한베평화재단, “제1649차 수요시위 참여, 베트남전쟁 전시성폭력 연대 발언”, 2024.05.23., 발언문.
제2차 세계대전에도 강간은 존재했다. 스탈린의 ‘붉은 군대’는 베를린으로 진군하며 수많은 여성을 강간했다.° 역사학자인 앤터니 비버는 스탈린의 군대에 ‘최소한 200만 명’이 강간당했을 것으로 추정했고, 소비에트 종군기자였던 나탈리야 게세는 “여덟 살 어린아이부터 여든 살까지 모든 여성이 강간당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은 나치에게 열등한 종족으로 분류되어 잔학 행위를 견뎌야 했다. 보복의 기회가 왔을 때, 그들은 독일 여성들을 폭력적으로 다루길 서슴지 않았다. 소비에트 군사들이 독일 여성들을 나치에 대한 보복의 수단으로 쓴 것이다. 암묵적으로 그들의 강간에 동조했던 군 지휘부의 분위기는 폭력을 더욱 부추겼고, 독일 여성들을 넘어 동맹국 국가의 여성들, 수용소에서 그들에게 구해진 유대인 여성들까지 성폭행당했다. 앤터니 비버는 시간이 흐르며 강간이 점차 적을 모욕하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전략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 연합군에 의한 강간, 나치에 의한 강간 등 수많은 성폭행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붉은 군대가 특히 두드러진다.
* 크리스티나 램(2022), 위의 책, 234
* 시사저널(2011), “‘강간’을 무기로 삼는 미친 전쟁”, 2011.01.24.
방글라데시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파키스탄은 인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갈라졌고, 동파키스탄이 현재의 방글라데시가 되었다. 1971년, 동파키스탄에서 이루어진 선거를 받아들이지 못한 서파키스탄에서 공격이 시작되었고, 곧 학살로 이어졌다. 숙청은 수도 다카에서 시작되어 방글라데시 전역으로 퍼졌고, 그 과정에서 2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파키스탄군에게 강간당했다.* 방글라데시 초대 정부는 이 여성들이 존중받길 원했다. 그래서 ‘용감한’을 뜻하는 ‘비르bir’에서 따온 ‘비랑고나birangona’라고 불렀다. ‘용감한 여성 전쟁 영웅’이라는 뜻이지만, 결국 이 호칭은 멸칭으로 전락했다. 여성들에게 ‘강간당한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준 것과 다름없었다. 비랑고나들이 마을에서 쫓겨나고, 남편에게 살해당하고, 강간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살해되었다.
* 이효정(2020), “전쟁과 여성의 삶 – 비랑고나 이야기”, 2020.10.08., 웹진ACC 칼럼.
이로부터 40년 뒤, 방글라데시에 비슷한 전쟁을 겪은 난민들이 이주해 왔다. 버마(지금의 미얀마)에 살고 있던 소수종족인 로힝야족이었다. 영국이 편리한 식민 지배를 위해 버마족이 사는 곳에 로힝야족을 강제 이주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각각 일본과 영국을 대신해 싸우던 버마족과 로힝야족은 결국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이 커졌다. 버마 독립 이후, 군부가 권력을 잡으며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소수종족은 시민권이 박탈되었고, 불법 이민자로 규정되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주 역할을 맡은 아웅 산 수 치°가 선출되었을 때도 로힝야족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탕 작전’으로 인해 9만 명이 난민이 되었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군인들에게 많은 여성들이 성폭행당했다. 여기서 일어난 집단 강간은 로힝야족이 달아나도록 공포심을 심어주는 무기였다. 2019년 발표된 유엔 국제미얀마진상조사단의 보고에 따르면, 로힝야족 74만 명 정도가 방글라데시의 난민촌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아직 60만 명이 위험에 노출된 채로 미얀마에 남아있다.* 국제형사재판소°에 집단 학살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로힝야족 마을에 가해지는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 199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 미얀마의 인권 및 민주화 비폭력 투쟁으로 상을 받았으나 로힝야족 학살은 계속해서 부정했다.
* 연합뉴스(2019), “유엔 조사단 "미얀마 로힝야 탄압 아웅산 수치 책임도 따져야"”, 2019.09.18.
°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심각하고 중대한 국제범죄를 저지른 개인의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 세워졌다.
전시 강간은 그야말로 무차별적으로 일어났다. 이것을 ‘성적’인 일로만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아주 오랜 과거에서부터 반복되어 온 일임은 분명하지만, 전쟁 도중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강간이 전쟁의 부차적인 결과라고 두루뭉술하게 결론짓는 것은 게으르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콩고 전쟁을 겪으며 여러 민병대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들은 무차별적으로 콩고의 여성들을 강간했다. 콩고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오래도록 치료해 온 무퀘게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강간에는 성적인 면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는 강간이 다른 사람을 무너뜨리는 수법으로써, 피해자가 사람이라는 느낌을 빼앗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폭력으로 다른 사람을 공포감에 굴복하게 하는 것이다.
* 크리스티나 램(2022), 위의 책, 339.
전시 강간은 특히나 그렇다. 전시 상황에서의 살인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맥락에서 정당화될 여지가 있지만, 성폭력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일어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그 기저에는 체화된 가부장제 사회의 규율이 깔려 있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적(남성)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모욕이며 공동체를 파괴하는 무기가 된다는 가정하에 전략적으로 채택된 것이다.* 따라서 전시 강간은 공개적으로, 또 집단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폭력은 여성이 속한 집단에 대한 수치나 불명예로 인식되고, 강간 피해자는 쉽게 외면받으며 그 과정에서 공동체가 와해된다. 즉, 여성이 그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는 것을 활용한 군사전략이다.* 전쟁에서 여성의 몸은 개인의 몸이 아닌, 나라의 상징이 된다. 여성을 강간한 것이 점령지를 강간한 것이 되고, 따라서 그 땅의 주민들을 모조리 파괴하는 것과 다름없어진다.
* 김현아(2004), 『전쟁과 여성』, 여름언덕, 57.
* 김현아(2004), 위의 책, 57.
전시 성폭력이 전쟁의 도구로 쓰였음을 강조할 때, 항상 따라붙어 나오는 단어가 있다.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 학살)이다. 전쟁에서 적을 ‘종족’으로 칭하고, 그 구분이 허상이든 아니든 그 ‘종족’을 완전히 말살시켜 버리려는 시도다. 어떠한 종족이나 집단을 말살할 때, 여성들의 존재는 그 작전에 위협이 된다. 언제든 그들의 아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적’들의 아이를 임신시키는 대신, ‘우리’의 아이를 임신시켜 인구 구성을 바꾸려는 의도도 드러난다. 즉, 전시 강간은 가부장제 사회가 재생산의 수단으로 여성을 바라보기 때문에 학살의 효율적 도구로 쓰일 수 있다. 전시 강간에 학살이 동반되면, 단순히 여성들의 섹슈얼리티가 공격받는 것을 넘어,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여성들의 재생산에 초점을 둔 억압이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서 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을 때도, 방글라데시에서도, 미얀마에서도 같은 지역에 살아가는 공동체를 완전히 파괴하려 전시 강간을 무기로 썼다. 르완다에서 일어난 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르완다에서 살아가는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갈등은 제국주의자들이 들어와 제멋대로 종족을 구별하면서 시작됐다. 르완다를 식민 지배했던 벨기에가 투치족을 우대하는 종족차별정책을 시행하며 투치족과 후투족 사이의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 독립 후에도 이 갈등은 점차 심화되었고, 결국 후투족이 투치족을 학살하기 시작하면서 르완다 내전이 발발했다. 르완다 인구 800만 명 가운데 80만 명이 100일 동안 살해되었으며*, 동시에 수많은 여성이 강간당했다. 같은 마을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살아가던 이웃들이 그들을 공격했다. 동시다발적이고 체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은 살아남았고, 목소리를 높여 세계 최초로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전시 강간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는 제노사이드의 수단으로 강간이 인정된 최초의 사례였다.
* 한겨레(2024), “르완다 대학살 30년…“1994년, 세계가 르완다를 저버린 날””, 2024.04.08.
* 크리스티나 램(2022), 위의 책, 148.
1990년대 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하며, 보스니아에 함께 살아가던 무슬림, 세르비아인(정교도), 크로아티아인(가톨릭)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때, 세르비아인들이 무슬림을 보스니아에서 쓸어내려고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수많은 무슬림이 살해당했고, 여성들은 ‘캠프’에 감금되어 반복적으로 성폭행 당했다. 적의 여성에게 모욕을 주고, 무슬림들이 두려움에 떨며 고향 땅을 버리고 도망가기를 유도하고, 그들에게 세르비아계 아이를 임신시키기 위해서였다. 앞에서 언급되었던 것과 모두 같은 맥락의 목적이다. 사람들을 땅에서 몰아내겠다며 그 땅을 수많은 피와 폭력으로 물들였고, 이 과정에서 여성은 가혹하게 희생됐다. 르완다의 제노사이드성 성폭력 유죄 판결 선례에 따라, 보스니아에서 자행된 성범죄는 반인륜적 범죄°에 해당하는 강간으로 판결받았다.
° 반인륜적 범죄(crime against humanity)는 민간인 살인, 학살, 노예화, 추방 또는 비인간적인 대우, 정치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면목으로 삼은 박해로 정의된다(“범죄를 어떻게 정의했는가?”, 《홀로코스트 백과사전》).
이렇게 직접적인 성폭력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재생산권 박탈 또한 학살의 도구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이 그 예시이다. 지금의 학살이 벌어지기 이전부터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을 탄압했다. 유엔 인구 기금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94,000명의 여성이 기본적 성 및 생식 건강 관리에 대한 접근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 수치는 10월 7일 분쟁 시작 이후 5개월 동안 100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스라엘은 강제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자지구에 몰아넣으며 그들을 모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가자지구의 병원, 학교, 언론사, 등을 가리지 않고 폭격을 퍼부었다. 동시에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구호품을 막아 의도적으로 기아 및 의료 자원 공백을 유도했다. 이스라엘은 임산부들, 아이들, 그리고 여성들이 의료적 자원에 접근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성폭력이 확대되고 있다는 보고도 존재한다. 이스라엘군이 구금한 여성들은 혐의 없이 체포되거나, 구타당하고, 옷 벗기를 강요당한 채 수색받았으며 강간 위협, 강간, 알몸 사진 촬영 등을 겪었다고 한다.*
* Martone, O.M., et al.(2025), “SORVO Case Study: Israel, Zionist Entities, & Palestine”, 2025.09., Sexual Violence Prevention Association (SVPA) Report, 29.
* Martone, O.M., et al.(2025), 앞의 글, 24.
이처럼 제노사이드에서 여성의 피해는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다. 전시 강간과 더불어 기본적인 의료, 위생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성의 삶에 큰 위협을 초래한다. 이스라엘에 포위된 지역의 여성들은 생리대를 구할 수도 없어 텐트를 찢어 생리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들의 감염 및 독성 쇼크 위험을 높인다. 또한 2023년 10월 이후, 가자지구의 유산율이 300% 급증했다.* 여성들은 전시 성폭력을 당할 위험에 언제든 노출되고, 동시에 필수적인 위생용품조차 구할 수 없으며, 아이들을 낳을 수도, 지킬 수도 없다. 성폭행을 당한 뒤 원래의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란 확신도 할 수 없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 또한 그렇다. 종족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여성의 삶 모든 부분을 옥죄어 온다.
* Liloia, A.(2024), “War on Gaza: How reproductive rights are under siege”, 2024.03.31., Middle East Eye opinion.
여성을 대상으로 한 학대가 반복적으로 일어났음에도, 현재 ‘강간’이라는 죄목으로 이들을 처벌하기 쉽지 않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인 IS는 그들이 악마라 생각하는 신을 섬긴다는 이유로 이라크 북부에 정착해 살고 있던 야지디족을 학살했다. 야지디족의 마을에 쳐들어가 사람들을 죽이고, 어린 여자아이부터 아이가 있는 여성까지 ‘성노예’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IS 대원끼리 여자들을 사고팔았으며, 가혹한 성 학대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원은 오로지 이라크 법정에 ‘테러 혐의’로 기소되었다. 테러 혐의로 기소되면 그 처벌은 사형이다.* 『관통당한 몸』의 작가 크리스티나 램이 강간 혐의를 왜 포함하지 않느냐고 묻자, 판사는 강간도 테러 행위 중 하나이고, 테러 죄는 곧 사형이니 무엇이 문제냐고 반응했다.
* The New York Times(2018), “A 10-Minute Trial, a Death Sentence: Iraqi Justice for ISIS Suspects”, 2018.04.17.
학살 과정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생존한 여성들은 그 뒤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가해자가 강간이라는 행위로 처벌받지 않으면 피해자의 경험은 다시 한번 부정된다. 이미 받은 피해는 되돌릴 수 없고, 죽은 사람이 되돌아올 수 없다. 그럼에도 판결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배상과 정의를 보여주고, 다시 삶을 꾸려갈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정의는 피해자가 살아 나갈 발판이 되어준다. 그러나 성폭력으로 기소되는 것은 수많은 범죄자 중 소수일 뿐이다. 국제 엠네스티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보스니아 법원에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사건 중 판결이 내려진 사건은 단 123건에 불과했다.* 심지어 2004년부터 재판이 진행되었음에도, 아직 피해자 여성들의 1%만이 법정에서 증언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느려도 너무 느리다.
* 국제엠네스티(2017),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쟁 중 성폭력 생존자 2만 명의 정의를 위한 마지막 기회”, 2017.09.15.,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뉴스.
이러한 한계로, 국제법이 명시하는 제노사이드 및 강행규범°의 범위가 더 명확해지고 넓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48년 제정된 제네바 협약 제2조는 제노사이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국가적,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의도로 저지른 다음 행위 중 하나": (a) 집단 구성원을 죽이는 것; (b) 집단 구성원에게 심각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것; (c)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의 물리적 파괴를 초래할 수 있는 생활 조건을 고의로 강요하는 것; (d) 집단 내에서의 출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부과하는 것; (e) 집단의 자녀를 다른 집단으로 강제로 이송하는 것.* 그리고 강간이 제노사이드의 수단으로 쓰일 때 이 모든 요건을 충족한다. 르완다와 보스니아에서의 판결에서는 모두 국제사회의 강간에 대한 경각심이 드러나지만, 강간과 동시에 다른 학살 사례가 있어야만 제노사이드로 기소될 수 있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성폭력이 체계적으로, 특정 집단을 없애려 의도적으로 일어나는 경우, 그 자체로 제노사이드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성폭력이 강행규범의 범주에 포함되어 어떠한 범죄의 구성요소가 아닌, 독자적인 범죄 행위로 인정받아야만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 국제사회 전체가 수용하고 인정하여 어떠한 예외도 허용되지 않는 규범으로, 이는 비엔나 협약(Vienna Convention) 제53조에 정의되어 있다.
* Sitkin, R. A., et al.(2019), “To destroy a people: Sexual violence as a form of genocide in the conflicts of Bosnia, Rwanda, and Chile”, Aggression and violent behavior, 46, 220.
* Sitkin, R. A., et al.(2019), 위의 글, 220.
* Sellers, P. V.(2002), “Sexual violence and peremptory norms: The legal value of rape”, Case W. Res. J. Int'l L., 34, 287.
전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흔을 남기고, 이때 일어나는 범죄는 처벌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강도 높은 폭력이 대량으로 한꺼번에 일어나기 때문에 국제법으로 처벌할 때 범위가 모호한 지점이 있으며, 애초에 명확한 진실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수록, 진실을 밝히기는 더욱 요원해지고, 가해자의 처벌을 보고 정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의 수도 줄어든다. 2025년 5월, 이옥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총 240명 중 6명으로 줄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러나 그 수많은 범죄를 아우르려면 국가 내 사법부만으로는 버겁고, 국제법 상으로는 아직 정의가 모호하거나, 강제력이 없다. 애초에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권은 기본적으로 조약의 형태를 띠고 있어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를 수사하려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소추가 있어야 한다. 국제법은 기본적으로 인권을 보장하자는 양심에 호소하고 있는 법이다. 그런데 어째서, 양심에 따른 법을 시행하는 게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 경향신문(2025), “이제 남은 생존자 6명…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별세”, 2025.05.12.
°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권을 인정하기 위한 다자조약이다(“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 《위키피디아》).
3. 맺으며
한국 여성평화운동이 전개될 때, 이런 말이 들려왔다고 한다. “여자가 전쟁에 대해 뭘 알아?”라는 질문이었다.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전쟁을 알고 있었는가? 전쟁은 역사적 체험인 동시에 개인 체험의 총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최전선에 있던 사람들의 경험도 물론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각자의 자리에서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의 증언도 소중하다. 전쟁의 진정한 모습을 마주하려면 전쟁이 끌고 온 참상을 똑바로 봐야만 한다. 그 참상이 격전지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님을, 또한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군인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전쟁을 겪은, 그 시대를 살아간 소수자의 시선으로 쓰인 전쟁이 절실하다. 전쟁은 누군가의 영웅 서사도, 타당한 복수극도, 나라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도 아니다. 철저하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그 땅과 환경과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폭음과 함께 묻어버리는 일이다.
전쟁은 특히 여성에게 아주 복잡한 영향을 준다. 가족, 노동, 공동체 등 삶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폭력적으로 뒤바뀐다. 이 글은 그 수많은 억압과 부조리 중 극히 일부만 다루었다. 미처 다루지 못한 피해가 너무나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분쟁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또, 개인의 경험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두루뭉술한 숫자와 간략한 흐름으로만 전했다. 여성 개인이 증언한 이야기들은 너무 끔찍하고 잔혹해서, 간접적으로 그 이야기를 읽기만 한 내가 적절히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만, 반복되는 참상에 마음이 깎여 나가 둔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 종이 뒤에, 숫자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점차 기사와 논문과 책에 쓰여 있는 숫자에 둔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렇게 간절히 바랐다.
이렇게 끔찍한 일을 겪었음에도 여성은 결코 수동적인 피해자만은 아니었다. 여성들은 계속해서 투쟁했다. 전쟁에 직접 참전하기도 했고, 사회 운동을 벌이다가 없애야 할 ‘좌파’로 낙인찍혀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 피해자들도 무력하게 당하기만 하지 않았다. 정의를 위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성과가 르완다이고, 보스니아 재판 판결이며, 계속해서 서로의 손을 연대하고 있는 현대의 평화운동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이 다양한 국제 전쟁 및 분쟁에 연대하고 있다. 수요시위에서는 다양한 전시 성폭력 생존자들과 연대하는 발언이 나온다. 매주 격주 토요일, 이스라엘 대사관 맞은편, SK서린빌딩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와 아파르트헤이트° 문제를 알리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여성들과 이에 연대하는 사람들의 평화운동이 이어져 더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희망을 품게 했다.
° 팔레스타인해방운동에 연대하는 페미니스트 단체인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를 비롯하여, 사회 운동 단체, 노동조합, 종교 단체, 정당, 출판사, 대학 동아리 등 다양한 단체들이 속해 있는 연대체이다.
°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강제 인종차별 정책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현재는 한 인종 집단이 다른 인종을 대상으로 가하는 차별과 억압을 지칭한다.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제대로 된 과거를 마주하지 못하면, 과거는 현재까지 남아 우리를 괴롭힌다. 전시 피해자들은 아직도 전쟁 속에서 살아간다. 전쟁은 끝나도 끝나지 않고, 새로운 분쟁이 일어나면 트라우마는 다시 그 위로 쌓일 뿐이다. 너무 늦기 전에, 전쟁의 기억이 미화되어 휘발되기 전에, 전쟁의 참상을 마주 봐야 한다. 잊혔던 피해를 다시 발굴하고, 피해자들의 손에 마이크를 쥐여주고,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들어야 한다. 그들의 입으로 증언한 전쟁으로 기억해야 한다. 나라와 국가와 남성의 이름으로 대표된 자들의 증언은 이미 너무나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일어나고 있는 참상에 외쳐야 한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내려놓고, 총구를 내리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적도 당신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야 한다. 전쟁은 언제, 어느 상황이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소리 내 말해야 한다. 결국 모두가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명제를 말하려 여기까지 달려왔다. 전쟁을 그만두어야 한다. 기왕이면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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