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안 Sep 20. 2022

내가 사랑하고 미워하는 가족의 총합

내가 어찌 감히 그들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총합을 사랑하고 미워한다고 했다.

그 인간은 친구이기도 하고, 애인이기도 하고, 가족이기도 하다. 앞선 글에서 가족에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집을 나왔다고 했지만 가족이 미워서는 아니었다. 같은 핏줄이라도 겪고 보는 것들에 따라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 평생 본 부부 사이도 애증하면서 사는데,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고 모든 걸 알 수는 없을 거다. 자식은 당연히 부모를 알 수 없고.


나는 이해한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면서 사느라 자식들을 챙기며 살 수 없었다.


개그콘서트의 <밥 묵자>라는 프로그램이 나왔을 때 웃으면서도 씁쓸했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대화 한 마디 없는 집이 우리집이었기 때문이다. 성적은, 네 친구는 어디 사노, 네 친구 아버지 뭐하신다노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걸 또 개그로 보며 웃는 우리 집을 보면서 이게 코미디를 보는 코미디, 메타 코미디인가 했다.


그리고 감사한다.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을 때면, IMF를 잘 넘기고 학비 걱정 없이 대학까지 보내준 공무원 부모님께 감사했다. 이제 막 대학 학자금을 다 갚았다는 친구들이 있는데, 아직까지 도전이랍시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건 부모님의 긴 몇십 년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해한다.


부모님이 경찰이었기에 안 좋은 것들만 보고, 예방과 감시를 최선으로 살아왔다는 걸 안다. 그들에게 공부와 운동이 아닌 모든 것은 죄악이었다는 걸, 여자 친구와 함께 있었단 이유로 쌍욕을 박았던 것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 대학에 가지 않으시고 직장생활을 하셨기에 적성과 진로 따위는 상관없이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싶었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감사하다.


초등학교 때 조금은 안 좋은 친구들과 어울려 슈퍼에서 술도 훔치고 담배도 주워 피웠다. 그때 부모님이 그 친구와 어울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또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엄청 잘난 사람도 엄청 못난 사람도 되지 않게 만들어주셨음에 감사하다. 그 덕분에 당장의 생존에 급급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이해한다.


많은 이들이 가진 부모 자식 관계는 코끼리 다리의 밧줄 같은 문제다. 어느 순간 이미 다 해결할 만큼 성장했는데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풀지 못한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이건 부모도 마찬가지다. 90살 부모에게 70살 노인인 자식은 여전히 애기고, 서울대 출신 트레이더인 슈카월드도 그의 아버지에겐 유튜브 주식쟁이들보다 못한 전문가다.


자주 학교로 불려 갔던 형 때문에 울었던 아버지의 눈물을 기억하고, 어머니의 칼춤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잊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거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소주를 마시던 아버지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그때 아버지는 너희 형처럼은 살지 말라고 했고, 그래서 나는 지금의 아주 순박하고 담담한 자식이 됐다. 모나지도 잘나지도 않은 그런 스펙과 그런 성격의 인간이 됐다. 그렇지만 자취하면서부터는 몇 개씩 아르바이트를 했고, 코피가 날 때까지 무언가 했고, 아침이 올 때까지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성격이 만들어졌다. 조금은 공격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했다. 귀찮게 구는 사이비들에게는 꺼지라고 말하거나 꽥하고 소리 지르는 사람이 됐다. 그렇지만 부모님에게는 여전히 17살의 그 유순하고 말 못 하는 아들이다. 서로가 서로의 발목에 밧줄을 걸고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이젠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는 건데, 통한다고 믿으니 통한다.


그래서 감사하다.


안 좋은 성격은 부모님과 함께 하면서 만들어졌지만, 좋은 성격은 나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유로움과  유머는 누구에게도 물려받은 게 아닌 내가 만들어낸 거다. 열심히, 잘, 성실, 예방, 원칙 등을 외치며 살아온 부모님과 하나라도 안 겹치기 위해서 다르게 살아왔고 그게 아직까지는 먹히고 있다. 사고 하나 안 치고 10대와 20대를 보냈다. 부모님의 그 엄살과 감시 덕분이다. 감사하다.


어머니처럼 성당 따위 다니지 않지만 그들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어머니처럼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프로를 보며 눈물 흘리지 않지만 눈물 흘리는 이들보다 많은 심리책과 육아책을 읽었다. 아버지의 젊은 날보다 힘겹지는 않겠지만 강인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들을 엄청 사랑하지는 않지만, 또 엄청 미워하지도 않는다.


부모가 나를 신뢰하지 않는, 비판하는 말을 하는 것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말에 기분 나쁘면서도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다. 말이 아닌 행동을 보면 그들은 30년 가까이 나를 키워주었고 내가 다쳤을 때 뛰어오며 내가 보고 싶어 눈물 흘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이 나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끝.


고시원 생존기가 좋은 출판사를 만나, '돈은 없지만 독립은 하고 싶어'로 깔끔한 디자인과 멋진 표지로 재탄생했습니다. 많관부탁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샤워장이 사라졌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