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생존기
저번 글이 제목 어그로 덕분인지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열심히 사세요'였고 또 하나는 '그게 무슨 숨만 쉬는 거냐'였다.
늘 '나 정도면 열심히 살고 있지'와 '와. 저렇게까지 열심히 한다고' 질투하는 두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무슨 그게 무슨 숨만 쉬냐는 말이 있어서 정말 숨만 쉬고 살 경우에는 어떨지 한 번 계산해봤다. 댓글 단 사람들도 무슨 의도가 있어서 작성한 걸 수도 있지 않은가.
1. 숙소
고시원 월 25만 원.
원룸을 구한다고 하지 말자. 숨만 쉬고 자야 하는데 원룸은 사치다. 25만 원으론 구하지도 못한다. 전세대출이 있다고 해도 요즘 대출이자가 비싸 고시원보다는 많이 나올 거다. 댓글 다신 분들이 설마 지하철에서 자면 0원이라는 의도로 말한 건 아니니 이걸 최소한으로 잡겠다.
2. 식비
편의점 도시락 4500원*2끼*30 = 27만 원.
4천 원 미만도 있고, 5천 원 이상도 있겠지만 적당히 고기가 들어간 적당한 도시락 가격을 4500원이라고 하자. 대기업에서 석박사님들이 열심히 만드신 거라 영양도 적당히 들어가 있다. 조금 짜긴 하던데 밥도 적당히 있어 탄수화물도 채울 수 있고 반찬들도 네 가지 이상은 들어가 있다. 아니면 고기가 듬뿍 들어가 있거나.
한 개에 칼로리가 보통 800kcal인데 성인 남성의 하루 권장이 2000kcal 중반이고 여성이 2000kcal 내외인 걸 생각하면 2끼는 먹어야 한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하루 한 끼도 괜찮다.
만약 하루 한 끼만 먹는다면 하루 1000kcal 정도가 비고, 이렇게 유지만 하면 이론적으론 한 달에 3kg 이상은 뺄 수 있다. 지방이 9kcal인데 하루 1000kcal씩 30일이면 30000kcal가 비고, 지방 270000kcal(3kg) 보다 많다.
초기 20일 정도는 편의점 도시락 위주로 먹었는데 먹을만했다. 예전 회사에서도 고기만 있으면 잘 나온다고 생각하고 먹어서 고기만 적당히 있으면 한 달 정도는 연속으로 해서 먹을만할 거다. 그 이후는 뭐. 생존기인데 무슨 메뉴를 고민하는가.
3. 헬스장
서울에서 한 달에 3만 3천 원이면 정말 잘 구한 거 같은데 왜 헬스장까지 가냐는 말이 있었다. 한 달에 6번 이상 쉬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나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출퇴근 20일 * 2번이면 40번이고 주말에는 1번씩 2일 가면 42번은 간다. 3만 3천 원에 42번을 가면 한 번 가는데 785원이다. 이 비용에 1시간의 운동기구 이용+샤워장+운동복+수건이 있다.
사실 정말 아끼려면 이것도 그냥 방에서 홈트하고 좁은 샤워실에서 샤워하고, 운동복과 수건을 매일 갈아입는 걸로 대체하면 된다. 그러면 수건 값과, 운동복도 매일 갈아입을 거니 여벌로 하나씩 당근마켓으로 구입한다고 하면 또 몇만 원은 든다. 그리고 귀찮은 세탁과정을 거치면 된다.
사진을 잠깐 올려드리겠다. 내 방에서 푸시업은 안 될 거 같다. 책상에 고개를 넣고, 침대에 발을 올리면 고강도의 운동도 잘하면 가능하겠다. 책상 밑에 고개를 넣는 자괴감과 키가 크신 분들이라면 고개를 숙이고 샤워해야 하는 고시원 샤워실의 자괴감을 이겨내고 매일 같이 한 시간씩 운동이 가능하신 분들이라면, 삼사일에 한 번은 2시간의 건조와 세탁을, 누군가 가져갔는지 어디 날아갔는지 모를 세탁물을 걱정하지 않을 분들이라면 홈트도 가능하겠다. 만약 댓글 다신 분들이 정말 그런 정신력과 체력의 보유자라면 직접 만나 뵙고 싶다. 그런 분들이 나를 욕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분들의 조언과 충고를 들을 거다.
하지만 나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785원으로 누릴 수 있는 게 꽤 크기에 나는 남들이 비싸다고 해도 이걸 선택했다.
고시원 생존기가 좋은 출판사를 만나, '돈은 없지만 독립은 하고 싶어'로 깔끔한 디자인과 멋진 표지로 재탄생했습니다. 많관부탁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