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이야기
1. 영업전화를 돌리는 건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라 늘 심호흡을 하고 담배를 하나 피우고 십분 이십 분 딴짓을 하다가 겨우 시작할 수 있다. 게다가 정해진 분량은 다 돌렸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는 아니라 스스로도 좀 민망하다. 대표는 영업을 성공시키는 그 디테일마저도 마인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게 대표와 사원의 차이일까. 약간 지친다. 다양한 일을 해보겠다고 했지만 아직 그 정도 마인드와 실력은 아닌 걸까.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 눈이 감길락 말락, 문체 따위는 신경도 못 쓰지만 일단 쓴다. 그래야 내 상태를 볼 수 있고, 나중에 돌이켰을 때 우스울 정도로 사소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 2015년 23살에 쓴 연애 글을 지금 보면 너무너무 웃긴 것처럼.
2. 팀장을 달았다. 아니 밖에서 볼 땐 팀장이다. 나도 웃긴데, 미팅하고 메일 보내는데 인턴, 사원 이러면 모양 빠지니까 팀장이라고 달아주었다. 아직 실물도 없고 문자와 메일에서만 팀장이라고 불리지만 뭔가 그 무게가 약간은 느껴져 민망하다. 아직 그 정도 실력과 책임감이 없는데 말이다. 사실 팀원도 없고.
3. 영업이야기. 을의 입장에서 무언갈 파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대표가 하는 걸 보면서 그 기세랑 톤을 흉내 내려고 노력하면 조금은 먹히지만, 그마저도 성공률이 좋지는 않다. 대신 나만의 방법이 조금 생기긴 한다. 속도를 높여 대꾸를 들을 것도 없이 내용을 다 전달한다던지. 초반에 어리숙하게 "비용문의가 아니라" 라면서 밑밥을 깐다던가, 홍보의 의미가 상대에게는 안 좋게 들려서 반감을 줄 수도 있겠다던가. 등 몸소 배우고 있다.
어제는 한 중년 남자가 꽤 공격적으로 나와서 굉장히 피곤했다. 우리가 지역 최고인데 너네가 뭘 할 수 있겠냐는 말을 하기에, 해서 손해 볼 거 없다는 말로 대꾸를 했지만 이건 하면서도 느꼈다. 상대에게 먹히는 멘트가 아니다.
하루종일 그 생각을 하다가 집에서 자기 전 멘트가 떠올라 한숨이 푹 나왔다.
그쪽 지역에서만 짱 하실 거예요? 전국으로 노셔야죠 사장님.
지금 저희랑 함께 하는 전국구 짱님도 계십니다
어찌 됐든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남 탓을 하면 순간은 편하지만 분명 또 비슷한 상황에서 좌절할 거다.
4. 응대이야기. 24시간 응대를 하고 있다. 밤 10시든 11시든 웬만하면 답변을 한다. 카카오채널을 잘 활용하고 있다. 아직 홈페이지가 불안정해 오류가 꽤 많아서 거기에 쏟는 에너지와 시간도 상당하다. 단 한 명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천 명 만 명을 만족시키려는 욕심을 버리라고 게리 베이너척은 말했다.
5. 논리. 모든 일에 논리를 따지고 있다. 이 논리는 진리라기보다는, 일단 효율성과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블록 하나다. 평일보다 주말에 음식점 사람이 많으면, 주말에는 영업시간을 늘려야 하는 게 논리에 맞지 않겠는가.
6. 대표 왈 : 잘 나가는 회사는 실무자가 뾰족하다.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일을 하고, 데이터를 보고, 해석하기 때문에 그 현장의 느낌 자체를 잘 안다.
7. 맥북으로 일을 하고 있다. 회사 컴퓨터가 없어서 어떻게 이렇게 됐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마그넷처럼 맥북 기능과 프로그램 등을 일하면서 사용해 그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지만 노트북으로 일을 하는 건 역시 웅장한 느낌이 안 든다. 큰 모니터 2개와 빵빵 돌아가는 본체가 있어야 일하는 맛이 나긴 한다.
8. 한 달 회고 타임을 가졌다. 생각보다 더 길게 가졌다. 약간은 가볍게, 약간은 진지하게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했다. 대표는 꽤 자주 "시간을 정해서 일해요" "내 시간을 버렸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이라 그가 인턴이자 사원이자 팀장인 나를 꽤 지지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9. 퍼블리라는 플랫폼을 애용하고 있다. 주말이면 꽤 많이 몰아보고, 평일에도 일하다 막히면 하나씩 검색해 본다. 이름만 들어봤는데 확실히 써보니 좋다. 이 세상에 아직 써보면 좋은 게 많이 남아있겠지.
10. 정말 사소한 팁들도 대표를 통해 배우고 있다. 줄 간격은 넓지 않은 게 가독성이 좋다. 슬랙은 한 멘션 안에 메시지를 다 담아야 한다. 머리에 있는 내용은 바로 공유하자. 그래야 머리를 비울 수 있다. 물어봐도 되냐는 건 성장의 태도가 아니다. 00 폴더에 공유해라. 바로 모니터에 연결해 보여주는 방법. 메일 쓰기. 등 잡다한 것들.
11. 날카로운 사람이 영감을 준다. 예전부터 사회성이 없는 친구나, 비주류캐릭터들을 키웠던 건 그런 맥락에서였을까.
12. 어려운 과제일수록 먼저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13. 우리는 서로 보스가 아니라 분업이다. 네가 못하는 걸 나에게 주고, 내가 시간이 아까운 걸 너에게 맡긴다. 내가 절대우위지만, 두 사람이니 최대한 긴밀히 일을 해야 한다.
14. 선수들은 사족 싫어한다. 본론만 말하자.
15. 타깃이 다르면 내용과 형식도 달라져야 한다.
16. 쫄지 마라. 회사대 회사로서의 영업이다.
17. 그쪽이랑도 협업했으면 우리랑 협업 못할 건 뭐야. 이게 마인드의 차이예요. 나 같으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서라도 우리 이야기 들어달라고 설득했어.
18. 일의 센스라는 건 태생이 아닐까 싶다. 그건 감각이다. 감각은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마인드고, 주입으로 되는 게 아니다.
19. 이 정도는 해야 시니어가 되고, 이 정도를 하는 사람이 있어야 위대한 회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20. 반박의 논리가 없다면 하지 말라. 나는 웬만하면 논리적으로 말한다. 이기기 쉽지 않을 거다. 말에 근거가 없고 감정만 있다면 서로 피곤해진다. 논리가 없는 건 기준이 없는 거고, 기준이 없는 건 서로 다른 곳에 에너지를 쏟는다는 거다. 이건 결국 에너지를 집중시키지 못해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 내린 지시도 더 상위 목표를 생각했다면 한 두 가지 잘못 이해한 것도 금방 다시 바로잡고 수행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