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렌 epi.2/3

자살미수

by 구도

단어 하나하나, 아니 글자 하나하나에 깊게 박혀 매섭게 바깥을 향하고 있는 날카롭고 긴 가시를

아빠는 느꼈을까.



내가 고3이 되던 해,


엄마도 나와 같은 뇌종양 수술을 받고 퇴원 후 거실에 누워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나보다 종양 크기가 크고, 수술부위가 넓어서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는 그 해 여름이 될 때까지 일상생활이 어려웠고,

그런 엄마를 보며 아빠의 우울감은 점점 더 심연 아래로 깊어졌다.


당시 아빠는 입시 공부를 하는 나를 위해 매일 아침 차로 학교에 데려다줬다.

매일 아침 마주하는 아빠와의 '15분'.


어느 날부턴가 아빠는 나에게 '죽고 싶다.'라고 말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 땀이 났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부모의 '죽고 싶다.'라는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전혀.


어느 날은 '정말 아빠가 없어지면 어떡하지?' 무섭고 두렵기도 했고,

어느 날은 '이런 게 부모라니, 그냥 없어져버리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했고,

어느 날은 '아빠가 없으면 나랑 엄마, 동생은 뭘 먹고살지?'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도 했다.


'내가 대학에만 가면 이놈의 집구석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야지, 죽더라도 내가 나가고 나서 죽든가.'

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빠의 '죽고 싶다.'라는 말은 그 해 내내 등굣길의 나를 옥죄었다.


내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한 것도 아빠의 그 말을 잊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되뇌고 고민하기에 그 말은 나에게 너무 가혹하고 무서운 말이었다.


이듬해, 나는 대학에 갔고 매일 아침 아빠와 단 둘이 차 안에 있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더 이상 아빠의 '죽고 싶다.'라는 말을 안 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했다.

나는 정말 그렇게 아빠에게서 해방된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고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자 아빠는 나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아빠와의 통화는 늘

'요즘 일이 힘들어, XX가 마음에 안 들어.' 등등의 하소연을 늘어놓다 결론은

'죽고 싶다.'로 끝이 났다.


차에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더 이상 없어도,

내가 언제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나는 한 통의 전화와 함께 다시 지옥 속으로 끌어져 내려졌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빠의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두 번에 한 번 꼴로 받던 전화는

세 번에 한 번, 네 번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럴수록 나에게 왔어야 하는 그 화살은 내가 아닌 다른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렇게 1년을 넘어 2년 가까이 시달린 가족들은 더 이상 아빠의 하소연을 들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럴수록 아빠의 행동은 점점 극으로 치달았다.


2008년 12월 어느 날,

외출한 아빠의 부재중 전화 몇 개를 핸드폰을 열어 확인하고 심란한 마음으로 내 방에 있었다.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둘러대지 고민하던 차에 마침 또 울리는 핸드폰.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을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깊고 끈적한 늪 같은 수렁, 거머리 같이 끈질기게 울려대는 핸드폰,

핸드폰 화면에 뜨는 소름 끼치는 이름 '아빠'.


이 모든 이미지와 소리가 한꺼번에 나의 심장을, 나의 중심을 쥐어 잡고 흔들며 온통 뒤집어 놓았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확고하고 강렬한 열망.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죽을 때까지, 영원히 잊히지 않을 순간이다.'


그게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바로 그 순간.


"아빠, 계속 죽고 싶다고 말할 거면 그냥 죽어. 말로만 하지 말고 죽으면 되잖아."


몇 글자 안 되는 문장인데,

한 글자 한 글자가 내 입에서 튀어나와 소리로 바뀌는 그 순간은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단어 하나하나, 아니 글자 하나하나에 깊게 박혀 매섭게 바깥을 향하고 있는 날카롭고 긴 가시를

아빠는 느꼈을까.


그렇게 전화는 답변 없이 끊어졌고, 그 이후 몇 시간 동안 어떤 전화도 없었다.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내 말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음성만 나올 뿐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다,

엄마는 아빠의 몇 안 되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아빠의 행방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는지 물었다.


당시 아빠와 가깝게 지내던 한 아저씨가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안 그래도 제수씨한테 말할까 고민했는데, 어젠가 그저껜가부터 차 트렁크에 소주랑 밧줄이랑 번개탄을 넣고 다니더라고요. XX가 우울증 비슷한 게 있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좀 위험해 보이던데요"


급하게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고, 형사들은 집에 와서 아빠의 인상착의를 물어 수첩에 적어갔다.


몇 시간 뒤 형사에게 아빠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아빠는 시 외곽 어드메에서 소주 한 병을 모두 마시고 차 안에서 자고 있었고,

(아빠는 술을 전혀 하지 못했었다.)

조수석에 밧줄과 번개탄이 놓여 있었다고 했다.


아빠는 형사와 함께 집에 돌아왔고,

아빠의 목에는 밧줄 자국 비슷한 거뭇하고 불그스름한 무언가가 남아있었다.



제 삶의 한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구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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