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의 인간

by 구도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붉은 나뭇잎을 어여쁜 눈으로 바라보고,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결국 '무'로 돌아갈 존재 앞에서 겸손하고 차분해집니다.



11월답지 않게 따스한 날, 남산 둘레길을 찾았습니다.

평일 점심 무렵인지라 둘레길은 한산했습니다. 남산은 완연한 가을이었습니다.



노란빛, 붉은빛 단풍이 색색으로 산자락을 물들이고,

지나가는 이들은 단풍을 배경으로 멋진 포즈를 취하며 이 순간을 사진에 담습니다.


지난여름 암 진단을 받고 나서 새로 생긴 버릇이 있습니다.


어딘가로 이동을 하든, 산책을 하든 천천히 걷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지금 내가 보고 듣는 것들을 지나치지 않고 내 안에 더 고스란히 담고 싶었습니다.


'붉은색 단풍나무' 정도로 보고 지나갈 뻔한 것을,

자세히 그리고 세세히 시간을 들여 정성껏 봅니다.


짧디 짧은 가을의 단풍나무를 하나씩 뜯어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것입니다.


나무가 살아내는 1년이 11월의 단풍나무에 모두 담겨 있다는 것을요.


먼저 미처 붉은색으로 모두 변하지 못하고 불긋푸릇한 나뭇잎이 몇 있습니다.


그리고 곱디 고운 붉은색으로 흠뻑 물들어 있는 붉은색 단풍잎이 있습니다.



여기서 좀 더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 더 거무튀튀한 것이 보입니다.

잎사귀가 메말라 쪼그라들어 주먹을 쥔 것처럼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는 떨어지기 직전의 단풍잎입니다.

이 상태일 때는 영 단풍잎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 눈에는 바닥에 떨어져 바람에 굴러다니는 단풍잎과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길에 치여 거의 가루가 된 그것입니다.


단풍나무 앞에 서서 이 광경을 한눈에 담으며 묘한 기분을 느낍니다.


만약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신이 있거나

영화 '컨택트'의 외계인처럼 3차원 공간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까지 볼 수 있는 4차원의 존재가 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보일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단풍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사시사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1달, 짧게는 1,2주만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시에 단풍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것 역시

그 아름다움을 짧게만 누릴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필멸의 존재인 저를 4차원의 존재가 본다면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는 저를 어여쁘게 여길까요,

아님 곧 썩어 흙으로 돌아갈 부질없는 존재로 여길까요.


저는 단풍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과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부질없음을 동시에 느낍니다.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붉은 나뭇잎을 어여쁜 눈으로 바라보고,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결국 '무'로 돌아갈 존재 앞에서 겸손하고 차분해집니다.


저는 4차원의 인간은 아니지만,

가을의 정취가 머무르는 당분간은

저 스스로를 단풍잎을 바라보는 눈으로 한번 바라볼까 합니다.




제 삶의 한 순간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구도


[사진 출처]

구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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