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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도연 Apr 11. 2021

맛있는 자기소개서

지금의 나는 거기 없구나, 나는 또 다른 글이 되겠구나

백수가 됐으니 다시 자기소개서 쓸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는 자꾸만 ‘필패하는 자소서’라는 글을 보여준다. 필승하는 자소서도 있으려나. 이러나저러나 세상에 과연 필, 반드시, 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가수 김필, 영화 필라델피아는 사랑한다만.

가장 최근 읽은 자소서를 떠올린다. 3년 전, 회사 생활 마지막 받은 후배 김 군의 것이다. 당시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자소서를 읽으며 어느 정도 마음을 정했다. 찐이다. 어떤 내용이었느냐고? 화려한 경력을 늘어놓은 것도, 사람을 홀리는 유려한 문장으로 도배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덤덤히,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 일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툭, 투욱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슴슴하니 깊은 맛이 배어 있었다. 배가 고파졌다.

면접은 그를 확인하는 자리였을 뿐이다. 글 속의 슴슴하고 진한 인물이 거기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니, 잘 쓴 시나리오를 맛있게 소화하는 배우처럼, 눈앞에서 보니 조금은 더 실감이 났을 일이었겠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리가 없었다. 더하지도, 감추지도 않은 채로 그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 보였다. 홍상수 영화가 생각났다. 그는 이후로도 함께 일하는 3년간 자소서의 스탠스를 그대로 지켰다. 어쩜 그리 한결같았을까.

그건 그냥, 그였으니까. 글이 김 군이었으니까. ‘필승하는 자소서’ 따위 나로선 알 수 없지만 굳이 정의하자면, 첫째, 담담하게 담은 진실. 둘째, 무리하지 않은 멋. 셋째, 틀리지 않은 문장 정도가 아닐까. 여기 하나 더한다면, 시간의 테스트 정도다. 물론 현실에서는 적용이 어렵고 뒤통수를 맞아야 깨닫겠지만. 이 모든 건, 그저 그게 나 자신이면 된다. 어차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뽑지 않 회사라면, 들어가서도 괴로운 생활의 연속일 니까.

다시 자소서를 쓴다면, 김 군처럼 쓸 수 있을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소서를 쓴 건 2006년이다. 참 오래됐다. 친구들 모두 취업하니 이젠 정말 놀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대학원 준비라는 변명도 약발을 잃었다. 돈 몇 백 원 없어 담배도 못 사던 시절.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니 성격도 파탄 나기 시작했다. 연애도 끝장나고 벌거벗은 느낌이었다. 당시 심오한 감정을 한 마디 시구로 표현하면 이렇다. 쪽팔린다. 그래서 하나의 은유로만 존재하던 자소서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원문을 올릴 생각이었는데 다시 보니 한숨만 나온다. 김 군에게 느꼈던 감정을 추억하자니 더욱 부끄러워졌다. 제목 정도만 기록으로 남긴다. ‘김중배는 이수일보다 감각이 뛰어났을 뿐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필패하는 자소서에 가깝다. 절박하고, 자의식이 과했다. 변변한 이력 하나 없는 청춘으로서는 사이드 어퍼컷을 사방으로 날리는 수밖에 길이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솔직하게 다 보여 주려고 애썼다. 그게 내가 가진 전부였으니까.

오래된 자소서를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거기에 없구나. 그 글이 나였고, 지금의 나는 또 전혀 다른 글이 되겠구나. ‘조리 원리’라는 책 ‘부패와 발효는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달라진 게 다만 부패가 아니라 발효이기를, 좀 더 깊은 맛을 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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