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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도연 Apr 13. 2021

빈 캔버스를 채운다는 건

몽상은 또 다른 감각을 만나 새로운 길을 낸다

림을 다시 그리기로 한 건 퇴사를 결심할 즈음이다. 퇴사 후 나는 이직이나 사업 구상 따위 하지 않고 백지에 나를 던지기로 했다. 아무런 편견 없이 다시 밑바닥부터,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들이 뭔지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다. 그 작은 가능성 중 하나가 그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장차 만화가가 돼 디즈니에 들어가겠다 말했다가 아버지에게 귀싸대기를 맞은 기억이 난다. 그 때문인지 내가 게을러서인지 곧 만화가의 꿈은 접었지만 낙서하는 천성은 어디 가지 않아서 늘 연습장이든 교과서든 빈자리만 보이면 곧장 그림으로 찍찍 채우곤 했다.

중 2 때 담임 이시 선생님이던가. 영어 수업 중 낙서에 몰두하던 나를 보고 혼내려다, 그림 실력이 좋다며 다음날부터 다른 반 수업에서 자랑하고 다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부터 각 반의 만화 덕후들이 찾아와 친구가 됐다. 다만 훗날 진 미술 숙제를 대신해 주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유년의 장래희망 따위에 큰 의미를 두는 건 아니다. ‘다이하드’를 보고 나서도 경찰이 되고 싶다 말했다 혼쭐이 났고, ‘나 홀로 집에’ 캐럴 립싱크를 한껏 뽐내던 때 아버지의 한심해하던 표정도 잊을 수 없다. 아버지는 그저 내가 ‘좀 더 그럴싸한 세계’에 들어가 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 역시 언제부턴가 ‘그럴싸한’ 일자리가 없었다. 나 역시 기자 명함을 갖거나, 대기업 홍보실에 오래 근무하면서도 대체 ‘그럴싸한 세계’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어떤 일도 깊이 들여다보면 과연 그럴싸하지 않았다. 누추한 일상과 사람, 정치의 연속이었다.

어차피 누추할 바, 어차피 그 누구도 누구를 그럴싸하게 봐줄 여유가 없을 바에야, 차라리 좋아하는 일에 나를 던지는 게 나을 것이었다. 밥벌이가 되느냐는 나중 문제. 몇십 년을 아버지, 또는 사회가 정한 ‘그럴싸한’ 울타리에 얽매여 있었으니 지금이라도 그 상자 밖 세상을 직접 경험해야 했다.

퇴사하자마자 와콤 ‘신티크’ 액정 태블릿을 질렀다. 집에 오래 태블릿이 있었지만 후지기도 하고, 오래 손 놓았더니 도통 그림이 손끝에 담기지 않았다. 신티크를 잡고서야 소리 질렀다. 손맛이 그대로 태블릿에 전해졌다. 손목 돌아갈 때까지 놀아 보자, 하고 긴 동거를 시작했다.

틈틈이 크로키로 손 풀고 고수들 그림을 베꼈다. 재미 삼아 좋아하는 웹툰 콘티를 옮기던 날은, 아아 작가들 정말 미쳤구나 싶었다. 보기만 할 때와 달리 가히 살인적인 분량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르고 오늘 우연히 펜 태블릿을 쥐었는데, 오옷 이제 펜 태블릿도 손에 감겼다. 꽤 했나 보다.

신나서 머릿속 얼굴들을 그리던 중, 어느새 마스크 아래서 활짝 올라가 있는 입꼬리를 발견했다. 빈 캔버스에 내 상상을 그대로 채워 나가는 일, 시작도 끝도 내가 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 그리고 꽤 마음에 들게 손이 움직여 주는 순간이란 건, 과연 행복이었다. 펜을 놓지 않길 잘했어.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음식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글이, 어떤 맛이 나올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글감과 메뉴도, 머릿속에서 한참 손질하던 재료가 손끝의 작업을 거치는 순간 전혀 다른 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게 몽상과 작품의 차이가 아닐까.


캔버스는 다만 몽상의 투영일 뿐만 아니라, 그 몽상이 또 다른 감각과 만나 정반합을 거치면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이루게끔 돕는다. 그 밀당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이 충만한 감정이 비단 캔버스뿐 아니라, 마주치는 시간, 사람, 사건들 앞에서도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쓰고,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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