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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도군 Dec 31. 2017

사진으로 돌아보는 2017년

사람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지난 2016년의 마지막 날에, 나는 연말 정산을 사진으로 대신했었다. 이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뭔가 제대로 된 정산을 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시간은 단 하루밖에 없고, 게다가 또 점심 약속도 있단 말이지.

웬걸, 정확히 1년 뒤인 오늘, 똑같은 걸 또 하고 있다. 사람은 역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인가 보다. 이렇게 된 이상 이걸 시리즈로 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겠다.


무튼, 올해도 해본다. 사진으로 돌아보는 2017년.


1월

촬영일: 2017년 1월 6일

장소: 서울 노호 스튜디오

카메라: 소니 RX1


연초가 되자마자, 일에 휘말렸다. 당시에는 개업 6~7개월 차였던 따끈따끈한 신생 미디어 디에디트의 "리뷰요정 에디터H" 하경화 기자님을 만나기로 한 약속은 정신 차리고 보니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상황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아마 이번에도 그럴 거 같은 기분이다 이 날, 우리는 두 시간 정도만에 무려 다섯 개 제품의 리뷰 촬영을 해치웠다.


위 사진은 캐논 EOS M10의 페이스 커버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테스트 용도로 찍었던 샷이었다. 페이스 커버에 맞는 색지를 가져오긴 했지만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던 차에, 저렇게 각각의 색지를 늘여놓고 그 위에 커버를 놓아 찍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물론, 모두에게 카메라를 붙여서 찍으면 좋았겠지만, 그때 빌린 카메라는 단 한 대였기 때문에 그냥 페이스 커버만 놓고 찍었다. 촬영이 끝난 후에는 라이트룸과 원래 잘 건드리지도 않는 포토샵(내 보정은 보통 라이트룸 선에서 끝난다)까지 동원해 최종 결과물로 줬다. 이미 보수를 그 날 저녁 양꼬치와 칭다오로 받아놨기 때문에 사후 서비스까지 철저히 해줬다. 저 테스트 샷에서도 보면 알겠지만, 빨간색 색지가 끝까지 뻗어있지 않았는데, 이 부분을 나중에 포토샵에서 칠해서 채웠다.


이 사진이 그 결과물

2월

촬영일: 2017년 2월 27일

장소: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카메라: 소니 RX1


세인트루이스의 올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눈은커녕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일도 거의 없었다. 이러니 우리 학교의 공대 건물에 있는 벚꽃나무의 개화 시기가 크게 앞당겨졌다. 예전 사진 기록을 보면 보통 3월 말은 되어야 개화할 벚꽃들이 2월 말에 이미 개화해버린 것이다. 한 달이나 일찍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때 이른 벚꽃놀이를 즐겼다.


3월

촬영일: 2017년 3월 11일

장소: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니스 비치

촬영 카메라: 소니 RX1


이번 사진 모음 중 유일한 셀프샷이다. 고등학교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만났을 때 찍었다. 이때 LA를 방문했을 때는 해무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된 바닷가 감상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최소한 날이라도 따뜻했으니...


4월

촬영일: 2017년 4월 5일

장소: 미국 미주리주 어딘가

카메라: 소니 RX100


이날은 친구가 제퍼슨 시티라는 곳에 면접이 있다고 해서 기사를 자청했다. 제퍼슨 시티는 세인트루이스에서 2시간 반 가량 떨어진 미주리주의 주도인데,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만약에라도 되면 너 여기서 어떻게 사냐 ㅋㅋㅋㅋㅋㅋㅋ"라고 놀리기도 했다. 결국 안 됐지만.


이 사진은 돌아오는 길에 잠깐 쉬면서 찍었다. 갈 때는 급하게 고속도로로 달렸지만, 돌아올 때는 여유가 있어서 그냥 시골길로 천천히 왔다. 이런 드라이브는 확실히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나한테는 말이다.


5월

촬영일: 2017년 5월 25일

장소: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카메라: 애플 아이폰 7 플러스


5월은 바빴다. 일단 초에는 기말고사와 함께 학기를 마무리짓고, 중순에는 후배들 졸업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고 말부터는 3주의 짧지만 혹독한 계절학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는 게 어려웠다. 워낙 안 찍어서 말이지.


위 사진은 아마 귀갓길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비록 오후 7시임에도 해는 지려면 아직 멀었다. 이제 저 사진으로부터 1년 뒤면 나는 졸업해 있겠지. 아마도.


6월

촬영일: 2017년 6월 17일

장소: 서울 광화문 스타벅스

카메라: 애플 아이폰 7 플러스


광화문 스타벅스가 리저브 매장이 되어 있었다. 물론 바뀐지는 꽤 됐겠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왔었을 때는 없던 거였다. 이날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찍었던 사진.


리저브 데스크(?)의 단점이라면 전원 콘센트가 없다. 아마 의도한 것일 지도.


7월

촬영일: 2017년 7월 16일

장소: 서울 강남 어딘가의 카페

카메라: 소니 RX100V


7월은 2017년형 아이패드 프로의 리뷰 때문에 바쁜 한 달이었다. 먼 옛날 더기어 리뷰에 이어 이번에도 애플 펜슬 리뷰를 친구 주뉼양에게 부탁해 진행했다. 지난번에 자화상을 그렸던 주뉼은 이번엔 코난의 상징인 나비넥타이를 그렸다.


이게 그 그림이다.

8월

촬영일: 2017년 8월 3일

장소: 일본 홋카이도 아오이 이케

카메라: 소니 a7


8월에는 가족과 홋카이도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늘 그렇듯이 듣기와 말하기만 가능한 내 일본어 실력만 무작정 믿고 간 여행. 이번 여행을 위해 특별히 소니의 24-70 GM 렌즈를 a7에 마운트 해 데려갔다.


위에 찍은 곳은 아오이 이케로, 직역하면 "푸른 연못"이다. 아직 정확히는 밝혀지지 않은 이유(연못 안에 있는 수산화 알루미늄이 원인으로 추정되긴 한다)로 비가 오고 나면 호수가 유별나게 푸른색을 띤다. 하지만 비 온 직후는 안 되고, 며칠 지나야 한다고 한다. 이곳은 애플이 macOS의 배경화면 중 하나로 겨울에 찍은 사진을 쓰면서 유명해졌다.


9월

촬영일: 2017년 9월 16일

장소: 미국 세인트루이스 센트럴 웨스트엔드

카메라: 애플 아이폰 7 플러스


작년 아이폰 7 플러스에서 선보인 애플의 인물 사진 모드는 처음에는 난리도 아니었다. 사람이 아니면 배경 분리가 쉽지 않았던 탓에, 앞에 있어야 할 피사체가 흐려지는 등의 문제가 많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나아진 실력을 보여준다. 이 샷도 완벽하지는 않다. 아직도 숟가락의 손잡이 부분이 많이 어색하다. 하지만 1년 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10월

촬영일: 2017년 10월 8일

장소: 미국 일리노이 주 66번 국도 위

카메라: 소니 RX100V


추석 연휴 동안 부모님이 세인트루이스로 오셨다. 주중에는 내가 수업이 있으니 별다른 걸 하지는 못했고, 주말이 되자 시카고에 올라갔다. 시카고로 보내드리고 나서는 혼자 렌터카를 끌고 세인트루이스로 내려와야 했는데, 이때 나는 66번 국도를 타보기로 했다.


66번 국도는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이어지는 첫 미 대륙 횡단 국도였다. 지금에야 고속도로로 쉽게 횡단할 수 있다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66번 국도를 횡단하는 로드 트립을 하곤 한다. 나도 이게 꿈이어서 3년 전에 갓 전역했을 때 이걸 계획했었다가 무리가 많다는 주변 의견을 많이 들어 (그 당시에 혼자 가려했으니 아무래도 그런 이야기가 나올만하다) 계획을 취소했었다.


지금 66번 국도를 타보는 건 쉽지는 않다. 단순히 내비를 따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길이 중간에 우회하는 경로가 많아 표지판을 한 번 놓치면 그대로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나도 실제로 1시간 가까이 엉뚱한 길로 가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66번 국도 완주는 하나의 꿈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 가능하려나.


11월

촬영일: 2017년 11월 8일

장소: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

카메라: 애플 아이폰 X


아이폰 X을 받아 들었을 때에는 마침 세인트루이스의 가을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나는 리뷰에 필요한 샘플 사진도 찍을 겸 열심히 사진을 찍고 돌아다녔다. 이때 찍은 사진 중 하나인 이 녀석은 학교 인스타 계정에서도 허락을 받고 퍼갈 정도로 꽤 잘 나온 사진이었다.


12월

촬영일: 2017년 12월 1일

장소: 미국 세인트루이스 T-REX

카메라: 소니 RX1


세인트루이스에서 내가 애용하는 코워킹 스페이스인 T-REX는 개가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심지어 거기서 일하는 커뮤니티 매니저도 개와 함께 출퇴근을 한다. 위의 월터가 바로 그 녀석이다.


월터는 해가 비치는 오후 바닥에 누워 일광욕을 즐긴다. 마침 이 녀석이 내 자리 옆에서 일광욕을 즐기길래 사진을 찍었다. 뷰파인더로 전혀 각도를 잡지 않고 감으로만 찍어서 내 신발도 보인다. 


그 외에...

촬영일: 2017년 8월 5일

장소: 일본 삿포로

카메라: 소니 a7


이 날은 아예 시가지 일부를 폐쇄하고 열리는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아침에 우리도 그 날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호텔에서 아침 일찍 나섰는데, 스톰 트루퍼가 길거리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진풍경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아마 이제 더 이상 쳐부술 반란군 쓰레기가 없나 보다.


촬영일: 2017년 2월 4일

장소: 미국 세인트루이스

카메라: 애플 아이폰 7 플러스


아이맥 27인치를 처음으로 들였다. 택배 집하장에서 직접 받았는데, 크기가 워낙 커서 빌린 프리우스의 트렁크를 전부 채운 게 신기해서 찍은 사진.


이 녀석은 아직도 잘 쓰고 있다. 1TB 퓨전 드라이브가 좀 느리긴 하지만 그거 빼곤 뭐.


촬영일: 2017년 7월 25일

장소: 서울 망원동 루카스초이스

카메라: 소니 a7


아이패드 프로 사진 촬영 도중에 찍었던 사진이다. 이 날은 지인의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인 루카스초이스의 장소 협조를 받고 촬영을 진행했다. 촬영 도중에 생각이 나 그 때 가지고 있던 사과 기기를 전부 모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진정한 사과농부는 이 정도는 돼야죠. (...)


2017년을 보내며...

보통 연말이 되면 온갖 생각이 많아진다. 올해 난 뭘 했나. 어떤 걸 잘 하고, 망쳤나. 이런 생각이 계속 든다. 하지만 올해는 뭔가 달랐다. 그냥 별다를 거 없는 하루 같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서 0시가 바뀌는 순간에는 이미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2018년에는 많은 게 바뀔 거다. 졸업을 앞두고 있고, 그 후에는 새로운 도전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늘 쉽진 않다. 12년 전에 처음으로 유학을 왔을 때는,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도전이 기대되기도 한다. 이제 이 인생에 새로운 거라곤 찾기 힘들어지기 시작해서인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겠지.


무튼, 2017년 잘 마무리하시고, (이 글 쓰는 순간 고작 1시간 50분 남았습니다) 2018년도 힘찬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저도 잘 부탁드리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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