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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A Aug 09. 2021

[넙치를 죽이는 방법]

KUA Conte #01 : 베르나르 뷔페 이야기



1999년 9월 30일

 






“아나벨은 이 그림을 마주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집안의 모든 날카로운 것을 치워버렸다”




늦은 점심으로 넙치와 감자 요리를 먹었다. 

버터에 구운 감자는 적당히 바삭하고 맛있었지만 나는 음식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 이를 닦으며 한 결심이 아나벨을 괴롭히리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나벨에 대한 미안함 조차 나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다. 



<생선 정물화> 1953




 이 끈질기고 지독한 병이 시작된 이후부터 나는 오랜 시간을 앉아서 쉬게 되었다. 

휴식과 권태, 여유를 즐기는 축복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여백의 시간은 나를 끊임없이 침잠시키고 가장 고통스럽고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데려간다.




 최근 들어 자주 떠오르는 것은 아주 오래 전, 어머니와 둘이 떠났던 부르타뉴 여행이다. 

한없이 고요하고 반짝이는 바다의 움직임, 섬세한 태양의 색채, 젖은 돌에서 나는 따뜻한 냄새까지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아쉬울 것 없이 행복했던 순간이 고통으로 바뀌는 것은 찰나이다. 행복은 너무 짧았고, 나는 아무래도 어머니가 떠난 후 그 공허함을 평생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부르타뉴 Bretagne, France





 부르타뉴에서의 시간이 그리워 자주 그곳을 그리고는 했는데, 최근의 그림에는 아무래도 전과 다른 느낌이 담긴 것 같다. 누구보다 예민한 아나벨은 얼마 전 그린 브루타뉴를 마주하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며 집안의 모든 날카로운 것을 치워버렸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넙치를 뭉뚝한 빵칼로 잘라 먹어야 했다) 



나로서는, 전보다 풍경의 세세한 부분을 거칠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손의 상태가 아쉽고 화가 날 뿐이었다. 




<부르타뉴 Bretagne> 1961
<부르타뉴 해변 Plage de Bretagne> 1988
<부르타뉴 Bretagne> 1999







1999년 10월 2일






“넙치를 죽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의 사랑, 여전히 아름다운 아나벨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제의 결심은 비로소 나를 해방시켰다. 


나는 하루 아침에 찾아오는 영감을 믿지 않는다. 다만 매일같이 끊임없이 그리고 또 그리는 행위만이 나를 자유케 하고, 숨쉬게 하는 것이다. 


 어제 먹은 넙치를 죽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넙치에게서 물을 뺏는 것이다. 어제 아침, 나는 더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운명은 나에게서 그림을 뺏어 갔고, 나의 죽음은 이에 따르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평생 그림을 그려왔다. 내 손과 머리는 늘 하나로 움직였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재즈 클럽의 댄서 듀오처럼 서로에게 최고의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은 머리를 배신하기 시작한다. 붓은 두터워지고, 과거의 예리하고 정확한 표현은 불가능해진지 오래다. 


 스물 여섯살 무렵 그렸던 <주사위 놀이 정물화>와 같이 손과 머리가 완벽하게 함께 움직이는 작업을 다시 할 수 있다면, 그간 벌어들인 보잘 것 없는 수익을 미련없이 모두 바칠 것이다



<주사위 놀이 정물화> 1955





1999년 10월 4일





“나는 영원한 현재를 산다"



 삶은 대체로 고통스러웠고 때때로 아름다웠다. 죽음을 마주하는 오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 삶을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점심을 마치고 잠시 아나벨과 산책을 나섰다. 가을에 접어든 하늘의 풍광과 옅게 색깔이 빠진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아름답고도 공허한 순간이었다. 오는 길에 마을의 농부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들은 알았을까, 내 입은 웃으며 일상을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이 허무를 끝내 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는 것을.



 아나벨에게 입을 맞추고 올라와 마리아 상에 작은 장미꽃을 놓았다. 인생의 매 순간을 느끼고 사랑하게 해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며. 작업실에 올라오니 내년 전시를 앞둔 <죽음 시리즈>가 보인다. 마지막 순간에 갤러리와 약속을 지킨 것에 안도를 느낀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나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배처럼 매 순간 새로운 파도를 만났고, 삶의 마지막에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세상을 떠난다. 


나는 사랑받았고, 사랑했으며 그림을 그리며 영원한 현재를 산다. 




- 베르나르 뷔페, Tourtour의 집에서








⋇ 위 글은 프랑스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의 작품과 삶을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 and More..

- 프랑스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는 2000년을 두 달 앞둔 1999년 10월 4일, 투르투르의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 수년간 그를 괴롭힌 파킨슨씨 병으로 인해, 그는 더이상 작품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1999년 그가 마지막으로 그린 부르타뉴를 본 아나벨은 베르나르의 죽음을 직감하고 실제로 집안의 모든 날카로운 집기를 치우기도 했습니다. 뷔페가 그린 1999년 부르타뉴는 종종 반고흐의 최후작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 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죽음을 택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는 사랑하는 부인, 평생의 뮤즈 아나벨과 오후 산책을 마친 뒤, 작업실로 올라가 베르나르 뷔페라고 서명한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 쓰고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 20대 때부터 큰 성공을 거둔 그의 작품은 죽음 이후 더 큰 화제를 끌었습니다. 특히 그가 죽은 다음 해 열린 전시회 <죽음 시리즈>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함께 생의 희망과 끓는 열정을 보여주는,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죽음' 시리즈> 1999, 베르나르 뷔페



<아나벨 Annabel>, 베르나르 뷔페









베르나르가 마지막을 보낸 남프랑스 Tour Tour






베르나르 & 아나벨 뷔페








Bernard Buffet(1928~1999)







[How to kill a Halibut]




September 30, 1999

“As soon as Anabel encountered this painting,

She burst into tears and she removed all the sharp things from the house.”



We had halibut and potatoes for a late lunch.

The buttered potatoes were crispy and delicious, but I couldn't focus on the food. Because I could not stop thinking about the decision I made this morning while brushing my teeth would put Annabel into despair.



But even my deepest love for Annabel cannot change my decision. 

 Since this persistent and terrifying disease came onto me, I have had to sit and rest for a long time.



There are people who are blessed to enjoy rest and boredom, but I am not one of them.

The spare time constantly silences me and takes me to the most painful and beautiful memories.



 Recently, the trip to Bretagne often came up to me, where my mother and I went together a long time ago. The calm and sparkling move of the wave, the delicate colors of the sun, and the warm smell of wet stones come to mind as vividly as if it was just yesterday.

Sadly, the moment of full happiness turns into pain instantly. Happiness was too short, and I don't think I could ever overcome her emptiness after my mother passed away.

 

I miss my time in Bretagne, so I often paint there, but my recent painting seems to contain a different emotion compared to other ones. Annabelle, the most sensitive person I have ever met, as soon as she encountered my recent painting of Bretagne, she cried and cleared away all sharp objects from our house. (That’s why we had to cut halibut with a blunt bread knife today.)



For me, the condition of my hands, which left me no choice but to express the details of the landscape more wildly than before, was unfortunate and only irritating.









October 2, 1999

"It's easy to kill a halibut"





 I'm sorry for my love, Annabel, who is still beautiful, 

but yesterday's decision finally set me free.



I don't believe in inspiration that comes overnight. However, only the constant act of drawing again and again every day sets me free and allows me to breathe.



 The way to kill the Halibut we ate yesterday is simple. You simply have to take water from the halibut. Yesterday morning, I realized that I could no longer paint. My fate took the painting from me, and my death is the most natural thing to do with it.



  I've been painting all my life. My hands and head always moved as one, and they had been the best partners for each other like a dancer duo in a jazz club who move as one. But at some point, the hand began to betray the head. It has been a long time since the brush has become thicker, and the sharp and precise expression like before has become impossible.



 If I could redo the work in which the hands and head move perfectly together like the <Dice Still Life> I drew when I was 26 years old, I would give all of the money I had earned so far without any regrets.







October 4, 1999

“I live in the eternal present”




 Life was mostly painful and sometimes beautiful. As I face death, ironically, I get the feeling that I will miss this life forever.

 After lunch, I went for a short walk with Annabel. The scenery of the sky and the trees that had lost their colors to autumn caught my eyes. It was the most beautiful and empty moment. On the way home, the farmers waved toward us. Would they know that my mouth was smiling and talking about my daily life, but my heart was still crying out for an end to this emptiness.

 I kissed Annabel, came up to the upstairs, placed a small rose on Maria's table. Expressing  gratitude to her for allowing me to feel and love every moment of my life. 


When I go up to the studio, I saw the <Death Series>, which is about to be exhibited next year. It's quite interesting that I felt relieved that I was able to keep my promise to the gallery at the last minute of my life.



 I hope my death does not bring too much sadness. I have met new waves at every moment like a small boat sailing the vast sea, and I chose the most natural way to end my life.

I was loved, I loved, I paint, I live in the eternal present.



- Bernard Buffet, at Tourtour's house




⋇ The above article is a fiction reconstructed based on the work and life of the French painter Bernard Buffet.


⋇ and more..

-French painter, Bernard Buffet (1928 - 1999), two months before the year 2000, on October 4th, 1999, at his home in Tourtour, committed suicide.

- Due to Parkinson's disease, which bothered him for years, he was no longer able to paint.

-When Annabel saw his last painting of Burtagne, in 1999, she had a gut feeling of Bernard's death and even actually cleared all the sharp knives from their house. Buffet's 1999 Bertagne is often compared to Van Gogh's final work, <Wheat Fields with Crows>.

- He habitually said that he would choose death if he could not paint. After he took an afternoon walk with his beloved wife, his lifelong muse, Annabel, he went up to his studio and was found dead, overturned in a black plastic bag signed by Bernard Buffet himself.

- His work, which has been a huge success since he was in his twenties, has attracted more attention after his death. In particular, the exhibition <Death Series> opened the year after his death, along with Memento Mori (Remember Death), is a work that can look into the heart of the artist, showing the hope and boiling passion of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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