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A Conte #02 : 프란시스 베이컨 이야기
# 비명
대부분의 런던 날씨가 그렇듯 오늘도 잿빛 구름 사이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고 스튜디오로 돌아오는 길가 귀퉁이에서 귀를 찢는듯한 울부짖음을 마주했다. 귀퉁이를 돌아 걸으니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아이가 미끄러운 빗길 때문인지 넘어져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바로 일으켜 세웠지만, 아이는 놀 란마음과 상처가 가시지 않는 듯 계속 울어댔다.
길가에 넘어진 아이처럼 어린아이들은 고통스럽거나 놀랐을 때 주저하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소리 지르는 행위를 어려워하고 '소리 지를 만한' 상황을 선택하는데도 신중해진다. 어른이 된 우리는 정말 극심한 고통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울부짖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삶을 시작할 때도, 죽을 때도 절규하거나 소리를 치지 않는가?
#감정의 통로
아일랜드의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열여섯에 집을 떠났다. 그리고 스무 살, 베를린과 파리를 거쳐 이곳 런던에 정착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내가 그 조그만 도시에서 아버지의 채찍질을 견디며 버티고 있었다면 뭉크의 ‘절규’나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을 보진 못했겠지.
그리고 그 전율과 신선한 충격을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나는 캔버스와 스크린 속 인물들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삶의 고통과 절망이 내 피부 끝까지 다가오는듯한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입’의 형태, 움직임, 치아,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색들에 늘 매료되었다.
# 교황의 이면
근 몇 개월 간 나는 별 다른 일이 없으면 스튜디오에 머물며 1650년쯤 완성된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의 그림을 습작해왔다. 벨라스케스 그림의 교황은 사랑과 평화의 상징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그의 눈썹과 눈빛, 굳게 다문 입은 절대적인 권위를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교황의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다문 입은 열어 경악을 그렸다. 교황이 지닌 자애, 사랑, 평화와 반대되는 고통, 슬픔, 분노를 보여주고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긍정적인 감정들만 찾아 헤매며 부정적인 감정들은 쉽사리 외면한다.
하지만 삶은 절대로 긍정적인 감정들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밝음의 이면에는 늘 어둠이 존재한다. 모네가 ‘일출’을 그리듯 나는 ‘입'을 그려 삶의 진짜 모습, 가장 깊은 감정을 나타내고 싶다.
⋇ 위 글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과 삶을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 KUA about
프랜시스 베이컨은 190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1992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베이컨은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으며,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어머니의 속옷을 종종 입었는데 이를 발견한 아버지에 의해 그의 나이 열여섯에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는 1933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고, 1944년 <십자가 아래 인물들을 위한 세 습작>으로 주목받는 화가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1952년부터 ‘절규하는 교황’의 작품 시리즈를 시작했으며, 대표적으로 “머리에 대한 연구 (1952)”,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 연구(1953)”, “교황 : 제목 없음 (1954)” 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