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A Conte #05 : 마크 로스코 이야기
A는 나를 담당하는 갤러리 에이전트이다.
나는 A가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
자연스러운 미소, 힘있는 악수 등을 남몰래 부러워했다.
가끔 협상에 임하는 A를 볼 때면 혹자는 그를
피도 눈물도 없이 예술을 사고 파는 장사꾼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평소에는 그 면모를 훌륭히 숨길 줄 아는 비즈니스 맨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있는 걸 불편해 하고 긴 이야기를 어려워하는 나 조차도
그와는 나름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그는 그런 어색함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A의 세상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solid) 금색으로 넘실댈 것이다.
며칠 전, A가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최근 나의 그림들이 관심을 끌기 시작하며 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친구들이 생긴 모양이었다.
자리에는 뉴욕의 유명인사 B도 함께 했다. A는 아트컬렉터인 B와 오랜 친구라고 했다.
약속 장소는 Le Pavillon이라는 곳이었다. 수년 전 뉴욕에 오픈한 이 프렌치 레스토랑은
명사들의 약속 장소로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식당 입구에서 A가 속삭였다
시베리아, 음절 하나하나가 차갑게 느껴졌다.
자리에 앉아 간단히 인사를 하며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적잖이 놀랐는데, 모든 메뉴가 프랑스어로 써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어머니가 이 곳에 오셨다면 당황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자리에는 6명이 함께 했다. 이런 저런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는, 눈 밑이 퀭한 잿빛을 띄는 브로드웨이의 극작가, 예술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선박 재벌 부부, 최근 뉴욕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의욕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B, 그리고 A와 내가 오늘 모임의 멤버였다.
나는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 만남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집을 나서기 전에는 너무 들떠서 약간 신경질적이 되기까지 했다.
수 많은 걸작을 수집하는 B와 석유 재벌 부부의 심미안, 그들이 작품 속에서 어떤 것을 발견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예술을 바라보는지.. 이야기 해보고 싶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메뉴를 고른 우리는 앙트레가 나오기 전 가벼운 샴페인을 곁들였다. 부부 중 남편 쪽은 대체로 조용했다. B와 아내 쪽이 대화를 주도했다. 최근 인기를 끄는 잭슨 폴록의 작품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 요 사이 폴록의 작품을 봤어요?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요
- 큰 건물은 넘쳐나는데 걸 그림은 없으니 더욱 인기를 끄는거죠. 가까이서 보면 흩뿌린 물감에 지나지 않는데 층고가 높은 공간에 걸어놓으면 압도적인 느낌을 주니까요
- 19번 작을 봤나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 역동성이 그대로 느껴지죠! 최근에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폴록은 천재에요
- 영리하다고도 할 수 있죠, 폴록을 *드립퍼(The Dripper)라고 부르는 거 아시나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그리기 어려운 작품은 아니잖아요
그들은 조용히 웃었고, 나는 아연실색했다.
폴록의 그림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가 영리하다는 말 따위는 뱉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그가 매 순간 살을 베는 듯한 고통 속에서 작업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동적이라던가, 감동적이라던가 하는 말은 마치 ‘빵 냄새가 정말 좋아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뻔하고 진부한 표현으로 잭슨 폴록의 작품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표현은 그들이 그림에 장님과도 같은 문외한이라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폴록은 창작의 고통 앞에서 키득거리는 치들에게 그림을 파느니 목숨을 내놓을 위인이었다.
그들이 정확하게 짚어낸 것은 단 하나, 폴록이 천재라는 것 뿐이었다.
대화는 점점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졌다.
한 작가에게 여러 작품을 미리 계약하는 것이 낫다, 혹은 타블로이드를 통해 가격을 은밀히 올리는 방법과 같이, 나로서는 무관심한, 실용적인 주제가 이어졌다. 양념처럼 곁들여지는 작품에 대한 감상은 말 그대로 뻔하거나 텅텅 비어있는 이야기 뿐이었다. 나는 마치 주식시장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테이블 위의 대화에서 작품을 유망한 회사의 주식으로 바꾸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니 나름 대화가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날 식사를 함께한 눈 밑이 퀭한 작가를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마치 은행에 급한 대출을 받으러 온 사람같았다.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음식을 해치우는가 하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이야기에서 돈이 나올 구석을 파고 들었다. 그를 보며 나는 언제든 선생님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화가로서 완벽하게 실패하더라도 저렇게 굽신 거릴 일은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20년간 별 생각 없이 받은 월급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진 순간은 전에 없었다.
메인 요리가 나올 때 쯤, 어느새 대화의 주제는 폴록에서 나에게로 이어졌다.
- 선생, 저는 궁금합니다. 선생의 그림은 점차 그 형태를 읽을 수 없단 말이죠, 게다가 어떤 움직임이 포착되는 것도 아니구요, 그저 그 곳에 있는(be) 고요한 색채의 덩어리들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 저는 색채니, 형태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오로지 관심을 두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입니다. 비극, 환희, 멸망, 그런 것들이요. 당신이 그림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 덩어리들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B는 질문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설명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최악은 상황은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그림을 보는 이들이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나의 설명에 B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슬프게도 나는 그가 내 그림에서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작업은 하나도 빠짐없이 감정을 전달하는 소재였다. 따라서 이 작품 앞에서 관객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면 그에게 나의 작업은 허접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맥이 빠졌다.
양파 수프, 홍합 요리, 올리브를 곁들인 비둘기, 램 스테이크, 체리쥬빌레로 이어지는 식사 시간은 다양한 이야기로 꽉 차있었다. 대화의 분위기는 품위있었고 주제는 풍부했으며 음식은 (과하게) 아름다웠다(음식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대화도, 음식도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다.
식탁위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입술은 단 한번도 심연을 건드리지 못했고 그 안에는 다정한 마음도, 숭고한 고통도, 삶을 향한 애정도 찾을 수 없었다.
테이블 위를 오고 가는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는 너무 피상적이고 뻔한, 번지르르한 말이라 그들이 단어 위에 마치 버터라도 잔뜩 발라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끊임없이 예술을 이야기 했지만 이들은 실은 건조한 은행가와 다를 바 없었다.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은행가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들은 탐욕에 솔직하니까.
요리는 독특했고 처음 보는 방식의 조리법으로 기교를 부렸지만
집에서 무심하게 구운 스테이크와 매시드 포테이토의 반만큼도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B와 재벌부부는 배고픈 작가를 교묘하게 대화에서 배제시키는 냉정한 속물이었고, 나를 위해 이 자리를 만든 A는, 그 특유의 자연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이야기에 참여시켰다. 아마도 나의 작품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려는 의도였겠지만 나는 이미 흥미를 잃어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최소한으로만 대답했다.
그렇게 장장 4시간에 걸친 식사가 끝나자 나는 완전히 진이 빠졌다.
팔의 각도라도 잰 듯 격식을 차린 딱딱한 자세와 차가운 이야기를 마주하고 별 의미 없는 대답, 억지 미소들로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그 공기에 완전히 압도되고 눌린 느낌이었다. 이렇게 불편한 식사라니. Le Pavillon을 나설 때, 처음 가졌던 기대는 위를 답답하게 하는 기름진 양고기처럼 전혀 충족되지 못한 채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장장 4시간에 걸친 이야기 중에 마음 속에 남는 말이 단 한 마디도 없었다니.
다음 날 A가 전화했다.
- 어제 식사는 대성공이었어요! 물론 그 작가를 부른 건 실수였지만, 모두 선생의 직관과 통찰에 깊이 감명 받았더군요, B가 새로 짓는 건물에 선생의 작품을 걸고 싶다고 하네요,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대성공이라,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늘 내부자가 되기를 갈망했지만
한번 내부자(insider)의 시간을 겪어보니
실은, 그 것이 아무 의미 없는 텅 빈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B의 의뢰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곳을 찾은 속물들, 영혼이 텅 빈 자들의 모습을 비웃고 속을 뒤집히게 하는 명작을 그려야지.
내 그림들은 나 대신 벽의 높은 곳에 걸려 그들을 마음껏 경멸할 것이다.
⋇ 위 글은 미국의 화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과 삶을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 And more...
- 1958년 마크 로스코는 저명한 건축가이자 아트 컬렉터였던 필립 존슨(Philip Johnson)으로 부터 Seagram 빌딩의 Four Seasons 레스토랑을 위한 작품 의뢰를 받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그는 일생 최초로 선급금 커미션을 받게 됩니다.
- 당시 커미션은 $35,000로, 1950년대 시세로 현재 기준 약 3-4억원에 달하는 큰 금액이었습니다. 약 2년간 공들여 벽화를 그린 로스코는 돌연 커미션을 돌려주고, 계약을 파기합니다.
- 그 이유는, 원래 고급 빌딩에 그림을 걸어놓고 속물적인 부자들을 조롱하고 역겹게 만드려고 했던 의도와 달리, 아무도 그 공간에서 그림에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그림들을 그런 곳에서 단순한 장식품으로 홀대받게 둘 수 없어 파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이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연극 [레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작품은 2010년 64회 토니상 최다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 로스코는 예술을 사치의 대상으로 여기는 자본주의적 시각을 싫어했고, 속물적인 근성을 가진 이들을 경멸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작품은 본인의 현실 인식과 감정을 세상과 나누는 통로였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작품 앞에서 느끼는 관객의 감정을 무엇보다 중요시 여겼습니다.
- 1920년대, 20대의 로스코는 생계를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합니다. 그 중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브루클린 유대인 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으며, 이 일은 1929년에서 1952년까지, 즉 그가 화가로 경제적 독립을 이룰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즐겼는데, 그 이유는 그가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현실에 대한 인식을 단순한 이미지로 전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주 말했습니다.
- 로스코는 많은 이들이 그의 그림 앞에서 우는 이유가 그가 작업할 당시 느꼈던 그 감정을 그대로 대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한 그는 만약 자신의 그림 앞에서 색과 움직임 정도만 포착한다면, 작품의 정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로스코는 머릿속과 캔버스 위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한가지를 제외한 나머지를 지워가는 작업을 즐겼습니다. 이를 통해 그의 작품은 가장 강력한 하나의 감정을 전달하게 됩니다.
- 또한 그는 자신의 작품을 45cm 앞에서 볼 것을 주문했습니다. 거대한 작품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되면 마치 그림 속에 들어간 듯이 느껴지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 미국 휴스턴에는 ‘로스코 채플' 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로스코의 작품을 마주 하는 명상을 통해 그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심연을 들여다보는 내밀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잭슨폴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그의 작품을 비아냥 거리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들은 물감을 흩뿌리는 그의 기법을 비꼬며 그를 “The Dripper(흘리는 사람)”이라고 조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