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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A Aug 13. 2021

[망나니]

KUA Conte #06 : 잭슨 폴록 이야기


16년 전, Lee를 처음 만날 때도 나는 망나니였다.


‘예술을 하는 망나니’ 곁엔 아이러니하게도 늘 여자가 있기 마련이다. 종종 술에 취해 늘어놓는 예술 이야기는 근거 없는 환상과 동경을 불러일으켜 나는 어렵지 않게 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잭슨 폴록 


처음엔 Lee도 그간 만난 여자들과 별다를게 없이 느껴졌다. 그녀는 뉴욕의 화가들이 모인 첼시의 어느 바에서 스치듯 만난 내게 내가 그린 그림이 보고 싶다며 불쑥 작업실에 방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Lee가 과도한 자의식에 취해 그림을 끄적이며 그저 예술을 이해하는 척하는, 미술계의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하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짧게 끝날 줄 알았던 그녀와의 관계는 부부로 발전해 지금까지 계속됐다.

잭슨 폴록과 리 크래스너


난 그때도 알고 있었고, 지금도 알고 있다. 그녀의 작업실이 나의 작업실보다 작았던 이유, 집에 처박혀 그림만 그리는 내게 갤러리에서 본 그림들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았던 이유,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소규모 갤러리 직원이나 이름 모를 예술 잡지의 에디터들을 만나는 이유, 오랜 나의 후원자이자 남성편력으로도 유명한 아트 딜러 Peggy와 돈독하게 지내며 지금도 유럽에 같이 가있는 이유들을 말이다.

작업 중인 잭슨 폴록과 리 크래스너



Lee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내가 화가로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혹자는 나의 성공이 최고의 아트 딜러인 Peggy가 나를 선택했기 때문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나의 이름과 작품이 라이프지에 실린 덕분이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모든 것은 Lee가 없다면 불가능했다. 내 작품의 시그니처인 드랍핑도, 전면 구성도 그녀가 준 영감 덕분에 가능했다.


페기 구겐하임


페기 구겐하임이 잭슨 폴록에게 의뢰한 그림, <벽화> 1943
 매거진에 실린 잭슨 폴록 기사, 1949 년 8월


잭슨 폴록 <No. 1> , 1948
잭슨 폴록 <No.5>, 1948



하하..

이런 생각들을 되짚는 것이 우스워 갑자기 실소가 터진다.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놓아버린 망나니가 아니던가?


언제부턴가 그녀의 격려가 잔소리로 들렸고, 우려가 비아냥과 비판으로 다가왔다. 분명 날 위해 하는 말과 행동이라는 것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해하고 있는데도 쉼 없이 짜증이 났고, 우울했고, 술을 다시금 많이 마시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신이 나서 그녀와 작품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다가도, 그녀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나와 다르면 갑자기 화가 나서 들고 있던 술잔을 벽에 던져버렸다.



그뿐이랴. 최근 몇 년 간은 그림이 참으로 안 그려져서 그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며 소리친 시간, 그림을 그려내던 캔버스를 갈기갈기 찢어 그녀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 그 시간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스쳐 지나간다. 그녀를 만난 후 벗어나는 듯했던 알코올 중독은 더 고약해졌다. 술이 없으면 힘들었다.



내가 더 망나니인 것은 지금 Lee와 같이 유럽으로 떠나 있는 Peggy 와도 잠자리를 몇 번이나 했고, 지금은 내 앞에서 술을 홀짝이는 스물여섯 살의 젊고 아름다운 Ruth와 불을 태우고 있다. 내가 중독된 것은 술뿐만이 아니다. 불쌍한 Lee는 Peggy와 내가 지속적으로 잠자리를 하는 사이라는 것도 모르고 함께 유럽에 가있다. 지금 내 앞에서 술을 홀짝이는 스물여섯 살의 아름다운 Ruth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여전히 술을 마시고 새로운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순간의 환희를 외면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편에서 불타오르는 감정은 나의 심연을 메마르게 한다. 깊은 내면은 이 망나니 같은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소리 지르고 있다.


1956년 8월 11일, 루스 클리그만과 잭슨 폴록


다시 붓을 들고 제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다시금 Lee 의 격려와 조언을 듣고 싶다.
새로워지고 싶다.


8월이 지나면 이 더위가 사그라들듯, 엉망진창인 지금의 감정들도 사그라들 것이라 믿는다.



Lee가 보고 싶다.



오늘은 Ruth를 집에 데려가지 않고 차로 데려다줘야겠다.


밤이 늦었다.













⋇ 위 글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작품과 삶을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 KUA about



- 1950년대 미국 미술계를 풍미했던 추상표현주의의 대표 주자이자 캔버스에 물감을 튀기고 뿌리는 ‘액션페인팅’의 창시자인 잭슨 폴록은 1956년 8월 11일 밤, 44세의 나이에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합니다. 동승하고 있던 폴록의 친구 Edith Metzger도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으나, 내연녀 Ruth Kligman은 살아남습니다.



- 1912년 미국 와이오밍 주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잭슨 폴록은 18세가 되던 해, 그의 형인 찰스 폴록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해 미술교육을 받기 시작합니다.



- 1942년, 그는 본인의 작품을 전시한 맥밀런 갤러리에서 Lee Krasner (리 크래스너) 를 처음 만났으며 Lee는 이후 예고 없이 폴록의 작업실을 방문합니다. 둘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어 1945년 결혼을 해 잭슨이 죽기까지 부부관계를 유지했습니다.



- 1943년 잭슨 폴록은 Peggy Guggenheim(페기 구겐하임)의 눈에 띄어 그녀의 전시에 작품을 선보였고, 몬드리안의 눈에 들었습니다. Peggy는 그때부터 잭슨 폴록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후원자가 됩니다.



- 1949년 미국 최대 대중 화보지 <Life> 매거진에 잭슨 폴록의 이름과 작품이 4페이지에 걸쳐 대서특필되면서 유명세를 떨치게 됩니다.



- Lee는 잭슨 폴록의 후원자이자 바람둥이 아트 딜러로 유명한 Peggy Guggenheim 과의 외도는 물론 잭슨이 죽기 전 만난 Ruth Kligman 과의 내연 관계를 인지하고 있었고, 잭슨의 이런 잦은 외도와 폭력성, 알코올중독을 외면한 채 1956년 유럽으로 잠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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