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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A Aug 09. 2021

[1972, 팔레소의 나날들]

KUA Conte #04 : 김창열 이야기


#1 : 어쩌면 지금은 때가 아니라서



내가 만나본 세상 최고의 괴짜, 백남준 덕택에 프랑스에 온지도 3년 째다. 해방을 거쳐 남과 북이 찢어지는 끔찍한 6.25 전쟁으로 내 중학교 동기 반절이 죽어나가는 것을 본 내가 미국을 거쳐 용케 여기까지 왔다. 십대 때 붓글씨로 시작한 그림들이 해외 물을 먹으면서 좀 더 빛을 발하길 바랬건만, 문은 있으나 마나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들고양이들이 제 집처럼 뛰어다니는 이 마구간을 아틀리에로 쓰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백남준과 김창열

여기까지 온 것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미국을 간 것도, 그 곳에서 장학금을 받은 것도, 뉴욕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히 버티다 우연찮게 남준의 도움으로 파리 페스티벌에 참가해 이 곳에 정착한 것도 다 뜻이 있는 거라 믿고 싶다. 내 그림들은 ‘빛'을 마주하고 받아낼 준비가 안된 것 뿐이라 믿고 싶다.




#2 : 마르틴 질롱 Martine Jillon



“식사는 했어요?”


나와는 달리 큰 눈과 곱슬머리를 갖고 있는 마르틴이 아틀리에에 들어서며 묻는다.


“아니 아직.”



실은 배가 고픈 참이었지만 먹을게 없기도 했고, 나가서 무얼 사오자니 수중에 있는 몇 프랑으로는 또 똑같은 빵쪼가리 밖에 살 수 없었을 것이기에 그녀의 질문이 조금은 서글프지만 반갑기도 하다. 그녀의 손에는 갓 구운 고기파이가 들려있다.


“이것 좀 먹으면서 해요"


“고마워, 참 맛있어 보이네"


김창열과 마르틴 질롱 

마르틴을 만난 것은 일년 전 즈음이다. 조각가 친구를 통해 팔레소의 작은 모임에 참가했는데, 그 때 이 프랑스 여인, 마르틴과 사랑에 빠졌다. 예술을 한답시고 거처도 제대로 꾸리지 못한채 매일 끼니 걱정을 하는 처지의 나보다 더 나의 끼니를 걱정하고, 나의 작품을 사랑해주는 그녀를 조선의 정반대인 파리 끄트머리 이 작은 동네, 팔레소에서 만나리라 상상조차 못했지. 남들처럼 번듯한 옷 한 벌, 풍족한 밥 한 끼 챙겨주지 못하는 애인이라 마르틴의 집에서는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난 그녀가 있기에 처절한 가난과 결핍이 있는 이 마구간을 그나마 버텨나가는 것 아닌가 싶다.







#3 : 깨달음




요즘 부쩍 밤을 많이 지새운다. 가슴 한 켠에 있는 불안감 때문일까? 마르틴 곁에서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여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정말 미친놈처럼 그리고 있다. 와중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서 마대를 캔버스삼아 그림을 그리는데, 이마저 아끼려 다 그린 그림이 맘에 안들면 마대 뒷면을 물로 적셔 묵힌 후 물감을 떼 내어 사용한다. 마구간에는 수도가 없어서 물을 길어다 캔버스를 담구는데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오늘도 그림과 함께 밤을 지새우다 며칠 전부터 맘에 안들고 꼴보기 싫어진 그림 하나를 빨리 물에 묵혀놔야겠다 생각하고 새벽부터 그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동이 터버렸다.



물을 길어 나르는 바람에 지쳐버려 멍하니 물을 뿌려 놓은 캔버스를 바라보는데 그 위로 아침 햇살이 퍼져 나갔다.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캔버스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더니 곧 캔버스 위에 뿌려놓은 물방울 사이사이로 빛을 내뿜었다.



내가 그렸지만 보기 싫어 물 뿌린 그림의 캔버스 전체가 갑자기 다르게 보였다.



물방울이 캔버스에 완전히 흡수되기 전 송글송글 맺혀있는 그 모습에 존재의 충일감을 느끼며 온몸이 떨리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다. 그렇게 몇년을 찾아 헤맨 ‘빛'이 저 물방울에 퍼지듯 나에게 다가왔다.









⋇ 위 글은 김창열의 작품과 삶을 소재로 재구성한 픽션입니다


⋇ KUA about



- 김창열은 대한민국의 미술가로 1929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2021년 1월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 그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를 겪으며 월남하였으며 이후 한국을 떠나 국제무대로 일찍이 눈을 돌린 작가입니다.


- 서예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와 함께 자라며 붓글씨를 통해 회화를 접했고, 고교시절에는 외삼촌으로부터 데셍을 배우며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미국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 Students League)를 통해 세계미술계에 대한 도전의식을 키웠으며, 1969년 미디어아티스트의 대가 백남준 의 도움으로 파리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뉴욕을 떠나 파리에 정착합니다.


- 1972년 김창열은 우연히 캔버스에 흩뿌려진 물방울을 본 것을 계기로 이후 ‘물방울'을 주제로 40년 이상 이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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