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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Jun 28. 2020

쟁반 위의 무김치


어느 순간 한가정의 가장이 되어버렸다.

원한것도 아니고, 싫다고 버릴수도 없었다. 자식 셋. 그저 굶지 않도록 밤낮으로 일할수밖에 없었다.

‘모질다.’ ‘억척스럽다.’하는 얘기를 듣고도 ‘힘들다.’ ‘힘겹다.’는 변명도 할새도 없이

하루 3탕, 4탕의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몸은 무쇠인것 마냥 아끼지 않았다.

토큰(버스비) 아까워 용산서 마포까지 걸어 다니는건 일상이 되고, 배에서 소리가 나면 허리띠를 졸라매며 일을 계속했다. 저녁이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팔, 다리가 무감각해져도 집에서 오직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얼굴을 생각하며 재촉하며 걷던 걸음걸이다. 그렇게 도착하는 시간은 항상 10시를 넘기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공간은 행복의 공간이었다.


“엄마 왔다.”

“엄마~”


얼마나 목을 빼고 귀를 세워 엄마의 귀가를  바랐을까..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잠시 쉴새도 없이 연탄불을 보고선 큰솥에 물을부어 끓인다.


그리곤 바로 큰양푼을 들고 장독대로 나가 김장때 남은 양념으로 버무린 큰무를 꺼내려 항아리 뚜껑을 열어 무 두개를 담아 다시 부엌으로 돌아온다.


부엌칼로 4등분해 양푼째 쟁반위에 놓으면, 그 모습을 알고 있다는 듯이 가만히 엄마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는 아이들은 인원수에 맞게 수저와, 젓가락을 쟁반 위에 놓는다.

부엌 부뚜막 위에서 상도 펴지 못하고 달랑 쟁반위에 가져다 놓은 무를 보고 아이들은 침을 꿀꺽 삼킨다.


엄마의 다음 행동은

아랫목 이불에 덮어 놓았던 밥을 가져와 끓는 물을 부어 놓으면, 금세 밥은 뜨거운 물에 뽀얗게 사골국물처럼 색이 변한다. 폴폴 뜨거운 연기를 뿜으며 조금씩 밥은 불어난다.

그럼 엄마는 우리를 향해

“먹어” 하신다.

그 한마디에 물에만 밥을 수저에 뜨고 젓가락 하나에 4등분된 큰무를 찍어들어 한입베어 문다.

곰곰하게 익은 무는 입속에서 알싸한 시원한 즙을 내어 준다. 손으로 잡고 먹지 젓가락으로 먹는지도 모르고 그대로 한입 한입 아삭 거리며 무를 먹는다.

한해 100포기 김장김치와 함께 담가놓은 무김치는 1년내내 우리와 함께한다.

김장을 하고 남은 양념으로 대충 겉으로 쓱쓱 묻혀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어놨던 무는 어쩜그리 시원하고 칼칼한 맛을 내는지…

초라하기 그지없는 물에만 밥과 달랑 무김치 하나뿐이지만,

그 밥을 먹어야 잠이 오고, 하루 일과가 끝이 나는 듯했다.

부른 배를 통통 튀기며 이불 위로 올라가 잘 준비를 하는 언니와 나를 볼 때면 엄마는 지금 이상황이 불행인지, 행복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웃고 떠드는 우리를 보면 행복했지만, 재산까지 갖고 나가신 아버지에 대한 배신과 남겨진 우리를 볼때 이렇게 사는게 불행인지... 모르겠다고…


엄마는 우릴 보고 그런 생각을 하실때,

우린 아빠의 부재에 엄마까지 우릴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하루하루 보냈다,


왜 10시가 되면 목을 빼고, 귀를 세우며 엄마를 기다렸는지...

엄마가와서 그 무하나 놓고 먹었던 밥은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게 아닌,

엄마가 왔음에 버림받지 않았다는 안도였다.

엄마에겐 초라하게 차려진 밥상이 우리에게 미안했을지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그 밥은 행복을 주는 밥이었다.


엄마는 그 밥상이 굶었을 때의 힘겹고, 힘든 밥상의 기억이겠지만,

어린 우리들에게 그 밥상은 부러울거 없는 안도와, 편안한 행복의 밥상이란 걸…



35년 이상이 흘러 같은 양념으로 버무린 무김치는 그때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

“니들이 그때 배고파서 그렇지..”라고 말씀하시는 엄마는 나이가 80이 되셨다.

손맛 좋다고 소문났던 엄마는 나이가 드시면서 점점 간을 잘못 보신다.

나이 탓이라 하지만 엄마는 음식 하는 일에 점점 위축되셨고, 그럴 때면 한번씩 엄마 앞에서 배가 불러도 밥을 먹는다.


 


“엄마 이 무김치 정말 맛있게 잘 익었네. 맛있어!”




이 말에 함박웃음이 되어 다가오신다.

“맛있냐? 그냥 대충 담근 건데. 맛있어?” 제차 물으신다.

“어. 시원하고 간이 딱맞아.”

“그래? 제주무 들어가기 전에 좀더 사서 담가놓을까?” 하신다.

엄마는 예나 지금이나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이 그리도 고맙고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하신다.

마음 표현하며 살던 세대가 아니기에 표현하는게 쑥스러운 엄마는 밥에 반찬을 해주면 맛있어하는 자식들을 보는게, 그게 엄마의 사랑 표현인 것이다.









‘사랑해요. 엄마’라는 말보다, 엄마의 음식이 ‘맛있다’, ‘더 해달라’ 귀찮게하는 것이 엄마가 필요하다는,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과 행동이 된다. 조금만 더 우리 곁에서 행복해하셨으면, 건강하게 좋은 세상 좀더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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