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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봉선 Aug 08. 2020

정말 내가 아니어도 될까?





해지기 전 동네 아이들과 놀다 저녁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엄마들이 제 자식들을 찾으러 나온다. 


“00야~~ 밥 먹어!”

“네~” 


아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tv와 책을 보며 엄마를 기다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환경을 탓하거나, 친구들을 부러워하지 않았다. 

내 환경보다 더 치열하게 우리를 위해 사시는 엄마가 계시기에 그 고단한 삶에 나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께 애교나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지 못했다.

준비물이 있어도 늦게 들어오시는 엄마 피곤할까 말도 못 하고 다음날 옆 친구 거를 같이 쓰거나 벌을 받는 게 익숙해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누구에게 내 맘을 보이거나 귀찮게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



커가면서 주위 사람들이 나를 찾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 사람이 내게 얘길 한다는 건 나를 믿는다고 생각했기에 그 말들을 헛트루 들을 수 없었고, 그들의 얘기에 공감을 더하며 내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무슨 일만 있으면 그들은 나를 찾곤 했고

이런 것이 조금씩 쌓이며 피로감이 오고 있을 때쯤, 점점 작은 일도 내게 맡겨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오죽하면 나한테 이런 말과 부탁을 할까?'

'왜 나한테 이런 일을?'를 생각하기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것에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게 내 할 일이라 생각했고 그 수고가 나를 점점 힘들게 했다.

더 나아가 상대가 내게 일을 덮어 씌우기까지 하는 일도 있어 이에  따지자 하는 말이 

“넌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지금 내 사정을 이해하니깐.”


배려가 독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내가 필요로 할 땐 그들의 태도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듯 보였던 건 왜일까? 

보였던 것일까?  

보려고 했던 것일까?


“나 좀 힘든 거 같아.”

“그래? 어쩌니? 힘들어서... 근데 말이야…”


하면서 다시 자신의 얘기를 꺼내는 그들을 보면 난 저 들에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왜 나를 찾았던 것일까? 






“선생님 제가 이런저런 일을 맡아하니 좀 힘들어요.”

몸살에 힘들어 병원을 찾아가 선생님과 상담했을 때 한 얘기다. 

“일을 놓으세요.”

“제가 아니면 누가 해요? 힘들어도 제가 해야죠.”

“본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하지 마세요. 환자분이 없어도 그 일은 누군가 다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말에

정신 띵~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정말 내가 아니어도 될까?



내가 나서 주지 않아도, 내가 막아주지 않아도, 내 탓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이 생각에 주위로부터 연락을 멀리 했다. 

인위적인 안부를 묻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게 되고 메신저가 와도 답을 짧게 했다.

만나자는 연락에 몸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나가지 않았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쪽만의 열정은 곧 식게 마련,  점점 내게 오는 연락이 뜸했다.


여자 조카가 한참의 사춘기에 혼을 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그 아이의 잘못을 얘기해주고 왜 그런지 이해시키려고 아이 앞에서 얘기하고 있을 때 가만히 지켜보던 조카가 한마디 했다.


“고모 요즘 책 안 읽으세요?”

“왜? 표 나니?”

“네 나요.”

“왜? 어떤 것에서?”

“예전엔 고모가 예도 들어주셨는데, 지금은 말이 좀 막히시는 거 같아요…”


맞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조금씩 내서 책을 읽기를 좋아했다. 

종이의 활자에서 느껴지는 감이 좋았고, 좋은 글귀가 나오면 밑줄까지 쳐가며 읽고, 그것도 모자란 듯이 노트에 따로 적어 형광펜으로 글귀에 색을 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일 저일 하다 보니 내 시간이 없어졌고, 책 읽는 시간마저도 없었던 것이다.


조카의 말을 상기해 책장 한켠을 차지하는 스프링 노트를 꺼내 펼쳤다.

꼼꼼하게 적은  한 글자 한 글자가 어쩜 그리 맘에 와 닿는 얘긴지…

기억하고 싶은 글귀를 잊지 않으려 별표까지 쳐가면 적어 내려갔다.


다시 한번 그 노트를 읽기 시작했다. 

기억나는 구절도 있고,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구절도 있다.

밥 안 먹어도 그 책장에 조금씩 쌓이는 노트를 보면 배가 부르고,

내 부족한 면을 그 노트가 조금씩 채워가는 것 같은 기분...

그때 그렇게 배를 채웠던 열정이 사라지고, 그 책장 한켠을 잊고 있었다.

자만이었을 것이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고,

멋진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읽으며 감동받아 노트에 깨알같이 적으며 느꼈던 벅찬 감정,

그걸 잊고 있었다.

나를 찾던 그들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몇 년을 사귄 남자와 헤어져 너무 힘들다는 그녀에게 


“니 기분 뭔지 알아. 기운 내…”


내게 금기어였다. ‘니 기분, 네 맘 뭔지 알아’라는 말…

난 그의 기분, 마음이 뭔지 모른다. 오로지 추축만 할 뿐... 천 번, 만 번 느껴도 그가 지금 느끼는 마음은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듣기만 했다.

그에게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을 해주고 싶어 책에 나온 치유가 되는 말들을 수고스럽게 노트에 적어 내려간 것이다. 

내 부족이 그에게 더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살면서 주위 각자의 관계가 중요하지만,

그렇게 아등바등 관계를 맺으며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대로의 모습의 나를 생각하자.

나부터 챙기고,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자.

누군가 내가 필요하면 손을 내어주되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오늘부터 책장에 먼지를 먹고 있던 노트를 하나하나 닦으며 읽기로 했다. 

예전의 그 열정을 다시 갖고, 나를 찾아 새롭게 나를 위한 관계를 맺어야겠다.

나를 숨기고 하는 행동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기만이다. 

자신의 상처만 아프다고 하지 말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상대의 상처를 곱씹어보고 자신의 상처를 내 보인다면 어떨까...


무슨 일이든 출발점은 있다.

그 출발점에서 나를 위한 자그만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 두려고 한다. 

나를 사랑하는 건 남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는 걸... 그래야 남도 날 사랑해줄 수 있다는 걸…


나를 제일 잘 알고..

나를 제일 아껴주고..

나를 제일 걱정하는 건…

남이 아니고


나 자신이라는 걸…


나를 사랑하는 여유를 가지자.

너무 촉박하게 나를 몰아세우며 채찍질하지 말고...

이 아름다운 삶은 한 번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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