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주위환경에 물이 들곤 한다.
석양을 보며 자신의 삶이 어떻게 이어왔는지를,
비가 오면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에 눈물이 흐르듯,
눈이 오면 한숨만 섞이곤 한다.
낭만이 없어졌다고 할까?
12월 24일에 눈이 내려 화이트크리스마스에 마음이 들떠 있어야 하지만,
'또 눈이 내리네. 도로 미끄러워서 어떻게 하지?'
'질퍽질퍽하겠네. 집에 가는 길에 차 많이 막히겠는데?'
비가 내리면,
'대중교통에 사람 많겠네.'
'우산 들고 왔다 갔다 정말 귀찮네.'
현실적인걸 더 느끼게 된다.
생각이 많아서일까?
할 일이 많아져서일까?
얼마 전 내린 눈에 한 학생은 혼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몸통을 제법 크게 만들고, 그 다음 머리를 만들려고 이리저리 눈 밭을 왔다 갔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입에서 나가는 말은
'에휴, 뭐 저런 걸... 춥겠다. 신발, 양말 다 젖었겠네.'
이틀뒤 내린 비로 인해 그 눈사람은 서서히 형체를 잃어갔다. 그 자리에서...
'저럴걸 손시럽게 뭐 하러'
예전엔 눈이 내리면 쌓이는 눈 속에서 눈 사람도 만들고, 누군가 담벼락에 오리 부대를 만든걸 보면 그저 미소가 지어지고, 맨손이라도 눈을 뭉쳐 보고, 눈 내리는 곳에서 서서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제법 큰 보름달이 뜬 적이 있었다.
20대인 조카는
'와~ 대박! 보름달이 너무 커요.'라며 연신 카메라로 찍었다.
그 모습에 나도 보름달을 보게 됐고 입에서 나가는 소리는
'보름인가 보다. 조금 있으면 초하루겠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낭만이 사라지는,
현실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감정이 된다.
환경에 이입을 못하고 현실적이 되지만,
또 다른 환경에 예민해진다.
부동산에 한숨 쉬고, 나라 안팎의 전쟁소식에 불안해하며,
금리에 귀가 저절로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주위 누군가의 부고 소식에 며칠간 한숨을 쉬며 감정 이입이 된다.
밖에는 비가 내린다.
오늘은 비를 보며 생각나는 건,
대중교통 속의 우산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짧은 겨울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비가그치고 봄이 어서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