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봉선 Dec 03. 2020

아까워 못 먹는 김치




결혼 6년만에 시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살아생전에도 남에게 폐끼치는걸 못하셨던 분이셨고,

젊으셨을때는 미군부대서 미용을 하셨던 분이라 나이 들어서도 식구들 머리는 본인이 하실 정도로 실력도 좋다.

안부 전화드리면 했던얘기 또하시며 1시간을 거뜬히 넘기실만큼 얘기하는걸 좋아하신 분...

3번째 또 들었던 얘기가 나와 

"그 옆집 아주머니 말씀이시죠. 아들 이번에 장가갔다면서요."

"아니 너 어떻게아니? 재주도 좋다."

며칠 전 똑같은 얘기 하신걸 잊으시고는 용하다며 웃으셨던 어머니다. 

그런분이 암에 걸리셔서 6개월만에 돌아가셨다.


"우리 어머니 어떻게 하나. 우리 어머니 어떻게 하나..."

울며 녹두죽을 끓여 드렸을때, 

"병원에 있는데 녹두죽이 그렇게 생각이 난다."

본인이 암인줄 모르셨다.

가족은 어머님이 충격받으실까 얘기하지 말자고했고, 그렇게 두달만에 어머니는 피를 토하시고 쓰러지셨다.

병원 간병은 아버님과 번갈아가며, 병원에서 숙식을 했다.

잠귀가 밝아 병원에서 잠은 겨우 1시간 정도로 자는 성격이라 어머니 부시럭거림에 일어나면,

"어머니 피곤하지 않으세요?"

"낮에 자서 괜찮다. 너나자라."

"잠 깼어요."

그럼 어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4인실을 써서 다른 환자와 보호자가 있어 커튼을 치거나, 병실밖 휴개소에서 조용 조용히 담소를 나눈다. 90% 어머니 혼자 하시는 말에

"어머, 정말?"

"와~"

"아 그러세요?"만해도 어머님은 아침밥이 나올 때까지 이야기를 하실 만큼 본인 얘기하시는걸 좋아하셨던 분이시다. 그런던 어느날

낮에 아버님과 교대를 하러 병원을 갔을 때, 어머님은 침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뭘 보고 계세요?"

"아니... 그냥... 이 좋은 세상 조금 더 살다갔음 해서..."

말문이 '턱'하고막혀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몰라 다른말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하지만 그날부터 그말은 계속 내머릿속에 맴돌았고, 지금도 가끔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시고 상황은 더 않좋아져 복수가 차오르며 어머니는 점점 마르셨다.

입원하시고 침대누워 복수를 빼고 있을때, 

"아 어쩌냐, 그 김치 아까워서."

"무슨 김치? 어머니 김치 왜요?"

"아니 동네 사람이 밭에서 배추 뽑았다고 갔다줬는데 그걸 어떻게하냐."

"놔두세요. 주는건 반갑지만 지금 그 배추 어떻게 신경써요.? 어머니 혹시 김치 담그셨어요?"

"아니 몇포기 안되길래 아까워서..."

그 몸으로 이게 무슨 일이냐는 잔소리에

"얼마 안되는거 같길래 누웠다가, 비비다가 했지. 한통인데 김치냉장고에 있어."

그때는 그 말이 화가 났었다. 누워 있는것도 힘드신 분이 그 김치가 뭐라고 쉬다 담다를 했나 하고...


그렇게 2달 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오이와 방울토마토가 먹고 싶으시다기에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갈아 드렸더니 한수저 드시곤 피곤하다며, 색깔이 너무 이쁘다고 아껴 입으신 밝은 진달래색 가디건을 찾아 덮어 달라시던 어머니는... 다음날 돌아가셨다.

아침 연락을 받고 부랴 부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님은 침대 옆에 처연하게 앉아 계셨고, 다른 가족들도 제각각 어머니 주위에 서있었다.

어머니를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어머니, 어제는 괜찮았잖아요. 어머니." 어머니 손을잡고 소리내 울었다.

그 소리에 어머니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서 내귀에 힘없이 한마디하셨다.

"울지마라. 울지마"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목소리지만 온힘을 다해 천천히 한마디, 한마디 하셨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 너무 많이하셨고, 가족위해 사셨어요. 감사해요."

내 말을 들으셨는지. 어머니 눈에 눈물이 한방울 흘렀다.

"음..."그렇게 대답하신곤 다시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가족의 인사와 기도를 받고 어머니는 몇시간뒤 아버님의 손을잡고 눈을 감으셨다.


장례식을 마치고, 온 식구가 집안 정리를 했을때, 냉장고에 어머니가 말씀하신 김치통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님 김치 않드셨어요?"

"김치가 맛없다. 먹으려면 너나 갖다 먹어라."

"그래도 어머님이 담근 김친데..."

"갖다 버려. 자리만 차지하고."

그 말에 화가 났는지 남편은 김치통을 차에 실었다.

집 냉장고에 김치통을 넣고, 남편을 바라봤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은 사람인데 오늘은 더욱 그렇게 보였다. 

어머니 짐 정리에 갖고 온것은 어머니가 갖고 계셨던 파마를 마는 롯드3개와 어머니 증명사진이 다였던 사람이다. 작은 상자를 장롱에 고이 넣어두며 손으로 눈물을 몰래 훔치던 사람...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두분다 치매에 중풍일때도 어머니는 혼자 일을 마치고 집에와서도 두분을 챙기셨다 했다. 10년동안 폭력성 치매여서 맞기도 많이 맞았지만, 그때는 요양병원이 없어 그저 집에서  그화를 다 감내하셨던 분...


저녁을 차리며 어머니가 담근 김치를 접시에 뒀다.

"어머님이 담근 김치야. 저 한통 다먹으려면 김치만 먹어야겠어."

우스개 소리를 한내게 남편은 접시를 보며 한마디 했다.

"아까워서 어떻게 먹어."








돌아가신 지 10년이 됐지만, 김장철 시장에 쌓여있는 배추포기를 보면

어머님이 생각난다. 무거운 몸으로 가족먹일 생각에 누웠다가, 앉기를 반복하며 담근 김치...

그리고 못내 하신 말씀이 오롯이 생각난다.


"이 좋은 세상 조금만 더 살다 갔으면..."





작가의 이전글 공자님 말씀은 두번 들어야 이해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